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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삶과 소망

by 은빛지붕 2010. 2. 16.

 

 

 

사람이 살아가면서 한 살 두 살 더 먹을 수록

세상과 그만큼 멀어지고 저 세상과 가까워진다.

사람이 사는 세상이란 좁게는 가족과 친지들의 관계일 것이며

넓게는 사회와의 범위일것이다.

자신과 가족 친지, 자신과 사회의 관계에서 우리는 신뢰와 사랑 그리고 도덕과 윤리라는 하나의 법칙에 의존해 그 관계를 유지하고 살아 오지만 때가 이르러 육신도 남긴체 영혼은 어느 곳으로인가 떠난다.

 

사람이 태어나 죽는 날 까지 살아 가면서 생각하고 지혜를 내고 온갖 사유와

사상이란 지상에서 인간이 살면서 필요한 인본주의적 생각일뿐

내세에 대한 것은 오로지 신앙에 의지 하는것 밖에 없다.

늙으면서 고독하고 상실의 념을 떨쳐 버릴 수 없는 것은

인본적 세상살이에서 그만큼 멀어지고 소외되기 때문일것이다.

삶의 자리를 새로 태어나고 또 삶의 주체를 이어갈 다음세대에 넘겨주고

그래서 소외됨을 느끼고 주체할 수 없는 고독에 사로 잡히는 현상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라고 생각되기도 한다.

그래서 나이 먹을 수록 세상사 일장춘몽으로 느끼게 되고

허무만 남게되는게 아닌가 생각이 된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듯 태어나면 언젠가 종말의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당연한데 사람들은 엄연한 이 법칙을 견디지 못한다.

더 살려고 하고 세상의 희노애락의 범위를 벗어나기를 싫어한다.

한마디로 말해 발버둥을 치고 온갖 수단을 다해 더 살아보려고 몸부림친다.

세상과 더 가까이 하려고 애를 쓸수록 더 고독하고

더 허무함의 나락에 빠져든다.

어떻게 살아야 무병하고 얼마나 살아야 장수 하다는 말인가.

 

사람이 태어나고 살다가 죽으면 그뿐인가?

내세란 없다는 것인가?

내세가 있는지 없는지 아무도 모른다.

죽어 저세상에서 살다가 돌아온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저 세상이라는 곳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어떤 곳인지 더더욱 모를 일이다.

인생이 이렇게 살다가 이렇게 끝나는 그런 허무한 것은 분명 아닐것이라는

기대감이 내세에 대한 여러 생각을 갖게한다.

중국의 노장사상은 육신을 떠난 혼은

자연과 합일 (자연으로의 귀의) 을 말한다.

신선이 되어 세상의 고통을 벗어난  신선의 경지에서 즐기면서 살아간다는

도가의 사상이 도교를 낳고있다.

불가에서도 죽어 성불(成佛)이 됨을 최고 경지로 꼽는다.

인간은 본래가 부처인데 세상에 태어나 온갖 미망의 때가 묻었으니

깨달음으로 성불이 될것을 가르치고 있다.

범(凡) 기독교에서는 어떻게 말하나.

속죄를 통해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  영원한 삶의

천국으로 인도됨을 가르치고 있다.

 

노년의 고독과 허무에 빠지지 않고 내세에 대한 영혼의 구원이라는

신앙은 인생의 종말에 신이 인간에게 준 최고의 선물일 것이다.

내세에 대한 소망과 그 가치는 세상의 그것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영원한 안식의 메시지를 주고있다.

어떤신앙을 어떻게 받아드리고 얼마나 노력해야하는지

그것은 사람마다 선택할 일이고 여기서 왈가 왈부할 일은 아닌것 같다.

지금의 고독과 허무에 사로잡혀 절망에 빠져 있을일이 아니라

내세에 대한 믿음과 소망으로 지난날의 나로 부터 벗어나려는 노력을 한다면 반드시 기쁜 맘으로 노년의 즐거움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흙으로 돌아가 한낱 먼지로 변할 육신에 사로 잡히지 말고

영혼을 순수한 모습으로 바꾸어 좋은 곳에 나기를

소망하는 희망의 노년이 되기를 바랄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