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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꾸기 우는 사연

by 은빛지붕 2025. 5. 31.

외출을 끝내고 돌아오는 귀가 버스에서 막 내리는데 어디선가 뻐꾸기 소리가 들립니다.

아니, 도심에서 웬 뻐꾸기 소리일까를 의아해하며 앞을 보니 거기에 공원이라는 이름의 산이  있었고 

뻐꾸기 소리는 그 산으로부터 오는 소리 같았습니다.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마치 옛 친구를 만난 듯 아득히 멀어진 고향의 옛 풍경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뻐꾸기는 다른 새처럼 집을 짓고 그 집에서 알을 낳아 새끼를 기르는 새가 아니라 남의 둥지에 알을 낳고

(托卵) 그 새로 하여금 새끼를 기르게 하는 특별한 새입니다. 그러니까 붉은 머리 오목눈이나 딱새의 둥지에

슬쩍 알을 낳고 달아난 후 둥지의 주인인 오목눈이로 하여금 새끼를 기르게 하는, 세상에 둘 도 없는 얌체

지만 그 이유를 알 수 없으니 가타부타 이야기를 할 수는 없겠습니다.

예로부터 핑계 없는 무덤이 없다는 속담이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만 사람뿐만 아니라 미물인 새나 심지어

보잘것없는 곤충까지도 생존을 위한 여러 수단이 동원되고 있으므로 그에 대한 평가 또한 함부로 내놓을

없다는 점을 생각하게 됩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뻐꾸기는 오목눈이보다 큰 새이기 때문에 알에서 부화 후 둥지의 주인인 오목눈이의

알과 새끼를 다 밀어내고 혼자 보살핌을 받다가 때가 되면 고맙다는 인사도 없이 가버리는 새여서 

그 생태를 동영상으로 본 사람들로부터 분노의 표적이 되기도 하는데, 도리로 따지면 혐오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지만 나와는 이해관계가 없는 사이라 배척의 대상은 될 수 없을 것같고 그역시 사는 방식 중 

하나라는 점에서 혹시 뻐꾸기가 그 수법을 사람으로부터 배운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합니다. 

몰래 아이를 낳아 남의 집 대문앞에 버리고 가는 모습을 뻐꾸기가 어디서 보고 배우지 않았을까,

그런 엉뚱한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금년 오월은 단오가 들어있는 달입니다만,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고향의 앞산과 뒷산에서 요란스레 뻐꾸기

가 울었습니다. 아직 어린 나이라 뻐꾸기가 왜 우는지도 모른 채 마치 대화를 하듯이 번갈아 주고받는 

소리를 그저 귓등으로 흘리곤 했는데 나중에야 안 일이지만 서로 짝을 부르는 소리라는 것 , 늦기 전에 어서 

짝을 만나 알을 낳고 종을 늘려야 하는 절박한 호소라는 것을 안 것은 그로부터 수 십 년이 지난 후였습니다.

일설에는 탁란으로 성장한 자신의 새끼를 둥지 밖으로 불러내는 수단으로 뻐꾸기가 운다고 하니 인간의

기준으로 보면 참으로 애틋한 면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예로부터 단오는 참으로 뜻깊은 날이었습니다. 때를 맞추어 모를 내며 일을 하다가도 단오절이 오면 동네의 

모든 가구에서 일을 멈추고 모처럼의 휴일을 즐겼습니다. 떡을 만들고 술도 빚어 나누며 동네 청년들은 새끼

꼬아 그네를 만들어 시냇가 고목에 그네를 매어 동네 처녀들을 대상으로 경연을 열기도 하였는데 지금도

생각 나는 것은 내 둘째 누님의 그네 타는 모습입니다. 그 누님은 키도 크고 얼굴도 고와서 인근까지 소문이

자자 했었는데 그야말로 삼단 같은 머리를 날리며 그네를 타는 모습은 동생인 내가 봐도 멋지고 자랑스러웠

습니다. 

 

그런 누님이 당시 국만학교 교사인 타지의 총각에게  시집을 간 후 딸만 내리 셋을 낳고 아들을 못 낳는다는 

이유로 남편과 시부모로부터 핍박을 받다가 그것이 상처가 되어 일찍 영면하고 말았는데 도시에 나와 사느

라 그 소식을 늦게야 전해듣고 얼마나 애통하고 분통이 터졌는지 모릅니다. 

그런 사연을 말씀하시며 눈물을 보이던 어머니 모습도 잊을 수가 없지만 해마다 단오 때가 되면 가슴 설레던

그날의 정경과 함께 일찍 타계하신 누님 생각이 간절합니다. 그러나 오늘은 즐거웠던 추억만 떠올리고 싶은

요, 비록 얌체 같은 새 뻐꾸기 소리지만 그 소리로 인하여 아지랑이 아롱거리는 고향의 정경을 떠올릴 수

있으고맙다고 인사를 해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오늘따라 고향의 뻐꾸기 소리가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