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개는 없다
ebs에 ‘나쁜 개는 없다’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버릇이 나쁜 애완견의 행동을 교정해 주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개 대통령’이라는 닉네임까지 붙은 반려견 행동 전문가 강현욱 씨가 나와서 진행한다.
나쁜 개는 없는데 왜 개가 나쁜 행동을 하는 것일까?
나쁜 개가 없다면 주인 탓이라는 말 아닌가. ‘개 대통령’은 그것을 아주 확실하게 설명해준다.
얼마 전 프로그램에서는 주인의 그릇된 사랑의 표시가 개에게 얼마나 잔인한 일인가를 보여주었다.
이 프로그램은 18년째 개를 키우고 있는 노부부와 늙은 개 사이에 있었던 일을 다루고 있었다.
그렇게 잘 따르던 개가 언제부터인지 노부부를 피하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안아주려 거나 붙잡으려고
손을 내밀면 이를 드러내면서 으르렁거리거나 심지어는 물려는 행동을 보인 것이다.
노부부로서는 기가 찰 노릇이었다.원인을 알 수 없었던 노부부는 결국 개 대통령에게 상담을
의뢰했던 모양이다. 강 씨는 개의 행동을 촬영한 비디오와 노부부가 개에게 접근할 때마다 개가 보인
반응을 살피더니 이렇게 말을 했다. “개도 늙습니다. 개가 늙어서 그런 것입니다. 여기저기 쑤시고
아파서 만사가 귀찮아진 것입니다.” 그 개는 사람의 나이로 치면 70에서 80세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허리도 아프고 무릎도 아프고 눈도 안 보이고 귀도 안 들린다는 것이다.
그런 개를 종전에 하던 버릇대로 번쩍 들어 올릴 때마다 개는 허리가 끊어지게 아팠을 것이라는 것이다.
가까이 오라고 부르면 슬슬 피하는 개를 억지로 끌어당기면 개는 끌려오지 않으려고 버텼을 것이고
그때마다 무릎이 엄청 아팠을 것이라고도 했다.
노부부의 애정 표시는 개에게는 고문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개 대통령은 앞으로 개를 안아 주려면 불끈 상체를 들지 말고
조심스럽게 엉덩이를 받쳐주면서 안아주어야 한다는 충고도 했다.
이 프로그램을 보기 전까지는 나는 개는 그냥 개일뿐 개가 늙는다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개의 나이가 사람으로 치면 70세니 80세니 하는 말에 이르러서는 우스꽝스럽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개도 늙는단다.
나는 이 프로를 보면서 개를 반려견이라 부르는 이유를 알았다.
애완견(愛玩犬)이라는 표현도 있지만 개는 단순한 애완물이 아니다.
가까이 두고 귀여워하거나 즐기는 대상을 넘어 평생을 같이 하면서 늙어가는 생명체인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만 늙는 줄 알았지 개도 늙는다는 사실을 간과해 왔던 것이다.
개는 늘 재롱을 부려야 하고 물건을 던지면 재빨리 달려가 물어 와야 하는 것으로 알았던 것이다.
나쁜 개는 없다.
나는 이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정말 ‘나쁜 개는 없다’는 데 공감하고 있다.
손님은 물론 주인을 물고 마구 짖거나 가구 집기를 훼손하는 따위의 거친 행동을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주인이 그것을 모르고 있었을 뿐이다.
나쁜 개들은 전문가인 강현욱 씨의 예리한 관찰과 처방으로 모두 착한 개가 되었다.
가끔 강 씨는 개보다 오히려 개 주인의 교육에 더 공을 들였다.
나쁜 개의 나쁜 버릇과 행동은 주인 때문에 생기는 경우가 많았다.
달리 말하면 나쁜 개는 없고 나쁜 주인이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지금은 중년이 되어버린 내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어렸을 때 시도 때도 없이 공부하라는 말로 스트레스를 주고, 놀아주거나 이야기를 나누기커녕
일방적으로 꾸짖고 나무라기만 했던, 나는 나쁜 아버지였던 것이다.
나는 지금도 같은 잘못을 저지른다.
중년의 자식들이 노부부의 애완견처럼 아직도 어린아이로만 보이는 것이다.
어렸을 때 성적이 떨어지면 공부를 게을리한 탓이라고 꾸짖기만 했던 것처럼 걸핏하면 잔소리로
기를 꺾는다. 중년의 어려움과 외로움 따위를 헤아리지 못한다.
때로는 속으로 다른 집 자식들과 비교해 가며 섭섭한 마음을 품기도 한다.
애완견은 늘 재롱을 부리거나 맘대로 가슴에 품을 수 있다고 생각한 노부부와 나는 똑같은
‘나쁜 주인’ 일’ 수밖에 없다.
맞벌이 며느리나 딸을 둔 친구들 가운데는 손자들을 돌보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그들 가운데는
손자들을 업었다가 허리를 다친 할머니, 누워서 TV를 보다가 소파에서 뛰어놀던 손자 녀석이
갑자기 배위로 뛰어내리는 바람에 큰 부상을 입었다는 할아버지도 있다. 아이를 돌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아이들을 돌보는 것은 운전대를 잡고 있는 것처럼 잠시도 방심할 수 없는 일이다.
나의 지인 한 분은 손자 둘을 키우느라 몸무게가 어찌나 줄었는지 꼭 환자처럼 보이기도 했었다.
더 고약한 것은 손자들을 떠맡은 노부부에게는 모처럼 쉬어야 할 황혼기에 쉴 자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 친구들을 보면서 나는 자식들도 혹 부모가 늙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고서는 저리 힘든 일을 어떻게 늙은 부모에게 맡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당사자도 아닌 내가 속으로 자식들을 원망하는 마음이 드는 것이다.
부모들은 안다. 맞벌이를 하지 않고서는 노후대책커녕 집도 마련할 수 없고 아이들 교육도 제대로
시킬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손자들을 맡긴다는 것을- 그래서 차마 거절하지 못한다.
그러면서 남은 인생마저 자식들을 위해 희생하고 만다. 무심한 주인을 만난 늙은 개와 모순투성이의
세상을 만든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늙은이들은 어쩌겠는가,
그냥 혼자 낑낑 댈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