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을 것 이 없다!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
머지않은 미래의 어느 한순간 “먹을 것이 없다!”, “먹을 것이 부족하다!”는 상황이 현실로 다가오게 되면
사람들은 어떻게 할까요? 필자는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어릴 적 기억을 더듬어 보면,
서울 인근은 온통 논이고 밭이었습니다. 지금의 동대문구 장안동은 장안평으로 불리는 넓은 논이어서 논두렁을
지나다 고추잠자리를 잡으며 놀던 추억이 있는 곳이고, 겨울이면 논에 물을 대어 얼린 스케이트장에서 썰매나
스케이트를 타고 놀았습니다. 도심에서 멀지 않은 곳곳에 논과 밭 그리고 과수원과 농장들이 즐비했었습니다.
하지만 도로 건설과 아파트 건설 등 도시개발로 인해 불과 30, 40년이 지난 사이에 서울의 모습은 예전과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정부로서는 지역개발과 농지보존을 위해 다양한 정책을 펴고 있지만 경작할 땅이 점점
줄어드는 것은 막을 수 없는 형국이 되었습니다. 나름 절대농지를 고시하여 농사 지을 땅을 보존해 보려고 하지만
농촌 지역에서조차도 이런 저런 명분으로 경작할 농지는 점점 줄어 가고 있습니다. 도시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아파트와 상가, 공장 등이 들어서고 있으며 이에 따라 우리의 먹거리는 점점 더 수입에 의존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은 불과 25퍼센트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 이는 곧 수입에 의존하지 않고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식량으로 우리 국민의 4분의 1에게만 먹거리를 제공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자동차 수출을 많이 하고 IT 강국을 자처하며 반도체 산업이 발전하고 스마트 기기가 많이 보급되어 있어도
또한 세계 제일의 인터넷 네트워킹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고 한들 쌀을 주식으로 하는 우리나라는 식량안보에 심각한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만일 쌀이나 밀을 수출하는 나라들에서 기근이나 홍수,
기후변화 등의 요인으로 식량의 수출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 나라들로부터 쌀을 수입하는 우리나라는
한순간에 매우 위태로운 지경에 이를 수 있습니다.최근 우리나라는 매일 저녁 텔레비전 방송 시간이 되면, 각종 맛집을
탐방하고 맛있는 요리들을 소개하며, 텔레비전 홈쇼핑에서는 쇼호스트들이 각종 다양한 음식을 소개하느라 모든
채널이 점령되다시피 하고 있습니다. 먹을 것이 넘쳐나고, 냉장고마다 먹을 음식 재료가 꽉꽉 들어차 있기 때문에
오늘 당장 먹을 걱정 없이 지내고, 오히려 내일은 또 어떤 맛집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을까 하며 행복한 고민을 하는
사람도 참 많습니다. 그러나 풍족함을 누리는 이 시기에 우리의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 일이 필요합니다.
종종 경제뉴스에 등장하는 용어인 애그플레이션은 농업(agriculture)과 물가 상승(inflation)의 합성어로서 생필품인
곡물 가격이 상승함에 따라 일반 물가도 동반하여 상승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곡물 가격이 상승하는 이유는 곡물의
수요는 늘고 있지만 경작지의 감소,육류 소비의 증가로 인한 곡물 수요의 증가, 농업 인력의 부족, 사람과 가축의
식량인 곡물이 화석 연료를 대체하는 청정에너지의 원료로 전용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전 세계적인 이상고온 현상이나 잦은 산불, 가뭄 등이 국내외 농산물 가격 폭등에 큰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만일 먹을 것이 부족해진다면, 생존에 위협을 느끼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예측 불허의 돌발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식량이 무기다
성경에 보면 기원전 2000년경, 아브라함도 이스라엘에 기근이 들어 먹을 것이 없게 되자 가족들을 이끌고 애굽
(이집트)으로 이주해 갔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먹을 것이 부족하게 되는 것은 역사적인 기록에 남을 일입니다.
또한 기원전 1500년경 요셉 당시를 보면, “요셉의 말과 같이 일곱 해 흉년이 들기 시작하매 각국에는 기근이 있으나
애굽 온 땅에는 먹을 것이 있더니”(창세기 41장 54절)라며 흉년의 사건을 기록으로 남겼고,애굽 인근 나라들은 흉년으로
인해 애굽을 찾았습니다. 이 사건을 보면, 아마도 인류 역사상 최초로 식량을 무기화한 장본인은 요셉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요셉은 애굽 땅에 7년 동안의 풍년에 이어 7년간의 흉년이 들 것을 경고하였고 이를 위해 양식을
비축하였습니다. 이에 반해 이스라엘에 먹을 것이 떨어지자 야곱은 그의 아들들을 애굽으로 보내 먹을 것을 구해 오도록
함으로써 요셉의 형제들이 극적으로 그들의 동생을 만나는 일이 벌어집니다.
예나 지금이나 식량은 언제나 사람들의 생명줄을 쥔 강력한 무기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돈을 주고도 먹을 것을 살 수 없는 날이 올 것입니다. 계속되는 성경의 기록을 살펴보면, “요셉이 나라의 총리로서 그 땅
모든 백성에게 팔더니 요셉의 형들이 와서 그 앞에서 땅에 엎드려 절하”(창세기 42장 6절)였다고 하였습니다.
언젠가는 절을 해도 먹을 양식을 구하지 못할 날이 올 것입니다. 오늘날 젊은이들은 먹기 싫어서 안 먹는 세대이지만
먹을 것이 없어 먹고 싶어도 못 먹던 세대에게 ‘먹을 것이 없다는 공포’는 상상만 해도 아찔한 일로 여겨집니다.
유엔 인권위원회의 식량특별조사관을 지낸 스위스 제네바 대학 교수인 장 지글러(Jean Ziegler)는 그의 책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에서 120억의 인구가 먹고도 남을 만큼의 식량이 생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하루에 10만 명이, 5초에 한 명의 어린이가 굶주림으로 죽어 가고 있는지에 대한 심각하고도 도전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세계식량계획(WFP)에 따르면, 세계 인구의 20퍼센트 이상이 하루 1달러에도 못 미치는 돈으로
살아가고 있으며 지난 5년간 굶주림으로 죽어 간 사람이 지난 150년간 전쟁으로 죽은 사람보다 많다고 보고하였습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2011~2013년) 전 세계적으로 만성영양실조 상태인 인구가 8억 4,200만 명에 이른다고
보고하였습니다.또한 캐나다 요크 대학교 교수인 로버트 앨브리턴(Robert Albritton)은 그의 책 <푸드쇼크>에서
세계적인 기근이 어떻게 전 지구적인 식량 위기를 몰고 올 것인가를 묘사하였으며,
비만(肥滿)과 기아(飢餓)가 공존하는 세상을 통렬히 비판하였습니다.
거안사위(居安思危)
미국의 유명 저널리스트인 톰 스탠디지(Tom Standage)는 그의 책 <식량의 세계사>에서 “전쟁 역사상 가장 효과적인
무기는 무엇일까? 그것은 칼도 아니고 기관총도 아니고 탱크도 아니고 원자폭탄도 아니다.
그 무기는 이런 무기들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을 죽였고 수많은 분쟁의 결과를 가져왔다.
그 무기는 바로 식량이며 더 정확하게 말하면 식량의 공급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일찍이 4세기에 살았던 로마의 군사전략가였던 베게티우스 역시 “굶주림은 전투보다 더 자주 군대를 물리쳤고,
배고픔은 검보다 더 잔인무도하다.”라고 하였습니다. 먹을 것이 없으면 사람의 운명은 끝이 납니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힘 있는 자들은 식량을 장악하기 위해 애써 왔습니다.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에 진나라와 초나라가 서로 패권을 다투고 있었습니다. 초나라는 정나라와 연합하여 진나라의
동맹국이던 송나라를 침공했습니다. 그러자 송나라는 진나라에 원군을 요청하였고, 진나라는 송, 위, 조, 거, 주 등의
나라들과 연합하여 정나라의 항복을 받아 냈습니다. 이때 정나라는 진나라에 항복했다는 의미로 여러 선물을 보냈고,
진나라 왕 도공은 일등공신인 위강에게 정나라로부터 받은 선물을 하사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위강은 이를 세 번이나 사양하면서 왕에게 “저의 공이라기보다는 왕의 위덕과 대신들의 공이 컸습니다.
만일 왕께서 편안함을 느끼시는(居安) 순간에도 위기를 생각(思危)하시고 실제로 대비를 잘하신다면 화를 면하실 수
있습니다.”라고 충언하였습니다. 여기에서 “편안한 때에 위태로울 때를 생각하라.”라는 교훈을 가진 거안사위(居安思危)
라는 고사성어가 유래된 것입니다.식량의 위기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편안한 때에 위기를 생각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