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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담집의 빨랫줄

은빛지붕 2023. 6. 28. 00:02


늦은 나이에 결혼해서 미국에 살고 있는 부부가 오랜만에 전화를 했다. 결혼 주례를 해 주었는데 아들을 낳았다고

글벙글이다. 그러고는 엉뚱하게도 아기 기저귀를 할 천을 사 보내라는 것이다. 요새처럼 좋은 아기 기저귀가

그곳에도 지천일 텐데 그러느냐고 했더니 옛날식으로 빨아서 쓰는 천으로 기저귀를 하겠다는 것이다. 희디 흰 천을

포장하면서 오래전 섬마을의 추억이 떠오른다. 그녀도 그 섬마을이 고향이라고 했다.
섬마을의 봄은 육지에 비해 훨씬 짧았다. 눈발을 섞어 뿌리며 불어대던 북서풍이 사월까지도 이어진다.

그러다가 어느 날 바람이 잦아들면서 문득 보리밭 가에 찔레가 핀다. 안면도의 한 해는 늘 그렇게 겨울에서 여름으로

가면서 마을앞을 지나는 완행버스처럼 봄을 어물쩍 지나치곤 했다. 30여 년 전 그곳 중학교에서‘섬마을 총각 선생’

노릇을 하고 있었다. 수업이 파하고 나면 습기를 잔뜩 머금은 나른한 바람을 맞으며 해변 이곳저곳을 구경하는 것이

질긴 겨울바람에 시달려 온 목감기를 마저 털어내는 데 더없이 좋은 약이었다.새산지, 숭어둠벙, 새모랭이, 깊은갈매기,

높은갈매기, 산개, 조랑지, 달곶이 등등 이름이 정겨운 마을들을 찾아서 그 이름의 유래를 찾아보는 것은 여간 재미있는

일이 아니었다. 해변의 언덕배기에 찔레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저녁 나절이었을 것이다. 선창이 있는 영목 쪽으로

가다 보면 신작로가 가르마처럼 산등성이를 가르고 길 양쪽의 경사진 언덕배기에는 보리밭이 바다에 닿기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얼마 전만 해도 마른 겨울바람 속에 황토 먼지를 뒤집어쓰고 납작 엎드려 있더니 두어 번 내린 봄비에 누웠던

송아지 일어서듯 이랑마다 불쑥 자라서 벌써 잘 익은 열무김치 색으로 누르스름하게 여물어가고 있었다. 그 언저리의

평평한 억새밭에서 한 젊은이가 지루한 초여름의 하루해와 내기라도 하듯, 있는 대로 게으름을 피우며 흙을 파고 있었다.

높이의 해송(海松)에 지게를 기대 놓고 삽으로 억새도 캐고 칡뿌리도 파내면서 느리게 붉은 황토를 고르고 있었다.

 

긴 여름 낮 동안 바닷물 한 번 밀려왔다가 나가는 것 말고는 지루하기 그지없는 바다를 가끔 바라 보며 보리밭 가에

으로 파내는 집터는 며칠이 가도 멍석 하나 넓이를 벗어나는 것 같지 않았다. 그러다가 간척지 무논에 개구리가

밤새도록 자지러지게 우는 유월 언제쯤 제법 넓어진 터 위에 황토를 이겨 만든 흙벽돌이 층층이 쌓여가는 것을 보았다.

붕에 이엉을 얹은 토담집 굴뚝에 생솔가지를 태우는 것인지 흰 연기가 흩어지는 것을 본 것은 아마 그해 늦가을쯤

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집 마당 빨랫줄에 황토색 짙은 작업복과 함께 울긋불긋한 치마저고리도 짧은 가을 햇볕을

쬐고 있었다. 다시 그 긴 북서풍의 계절이 지나고 늘 그랬던 것처럼 짧은 봄도 찔레꽃과 보리 밭 위를 빠르게 스쳐

지나가 버렸다. 여름이면 등에 청바지 빛 푸른 멍이 든 꽃게를 잡으려고 몇십 리인지 모르게 줄을 지어 밤바다의 해변을

밝히던 횃불도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찌륵찌륵 등줄기를 간질이며 흘러내리던 땀이 개이고 아침저녁으로 제법 서늘한

바람이 불던 어느 날 그 토담집 마당에는 난데없이 수십 개의 흰 깃발이 나부끼고 있었다. 바지랑대에 느긋하게 걸린

빨랫줄 위에 그 순백의 아기 기저귀가 마음 놓고 펄럭이는 것을 보면서 밀물 같은 감동이 가슴에 차올랐다.

붉은 황토벽과 새로 이엉을 얹은 누르스름한 지붕과 깃발처럼 설레는 수십 개의 흰 천이 어우러진 마당이 그렇게

평화로울 수 없었던 것이다. 들여다보지 않았어도 서쪽으로 난 봉창에서 쏟아지는 저녁 햇빛을 받으며 방싯거리는

아기를 가슴에 끌어안고 젖을 먹이는 새댁과 방금 마당에 짐을 부리고 들어와 마냥 흐뭇해 싱글벙글 어쩔 줄 모르는

아기 아빠의 얼굴이 가을 하늘을 향해 환호하듯 마구 펄럭이는 흰 깃발 속에 자꾸 겹쳐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렁찬 아기 울음소리를 들으며 헛간 지붕의 박이 흰 이마를 들고 방문 쪽을 엿보고, 마당에 어정거리던 암탉도 여남은

마리의 서릿배 병아리를 데리고 종종걸음을 치는 것이 저만큼 서서도 들여다보였다. 무엇이 부러우랴! 무엇과 바꾸랴!

토담집의 그 힘찬 아기 울음소리를! 그날 이후로 그 집 굴뚝 연기는 더욱 세차게 솟아오르고 거칠어지는 바람에

빨랫줄의 흰 기저귀는 더 힘차게 춤을 추고 있었다.

안면도의 추억은 늘 그 토담집의 기운차게 펄럭이는 아기 기저귀와 함께 떠오른다.



아이가 태어난다는 것은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신다는 가장 구체적이고도 결정적인 증거이다.

생명체가 아니고는 생명을 탄생할 수 없다. 그리고 그 생명은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선물이다.

아기가 태어나지 않는다면 정말 큰일이다. 이 세상의 모든 희망은 끊기고 기쁨도 슬픔도 사라진 공동묘지만 남게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아이를 낳아서 기른다는 것은 세상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보물을 내 가슴에 안는

행운을 누리는 것이다. 아이를 바라보면 가슴이 설레고 뛸 듯이 기쁘고 가슴이 울렁거린다. 아이의 찔끔거리는 눈물이

내 가슴에서는 소리를 내는 강물이 되고 그의 기쁨이 내게는 금방 노래가 되는 것이 자식에 대한 사랑이다. 꿀꺽꿀꺽

시원하게 젖이나 우유 넘어가는 소리를 들으면 삶의 모든 갈증이 깨끗이 씻겨 내려가는 것을 목이 근질근질하도록

느끼는 것이 자기 자식에 대한 부모의 마음이다.

그래서 김광섭 시인은‘새 얼굴’이라는 동시에서 아기 얼굴을 이렇게 노래했을 것이다.


아기가 들어와
아침을
연다.
아기는
울고 나도 새 얼굴
먹고 나도 새 얼굴
자고 나도 새 얼굴
하늘에서
금방 내려온
새 얼굴.


이런 세상을 상상해 보셨습니까? 전철 안에 주눅이든 아이들 서너 명이 한쪽 구석 노약자석에 앉아 있고 일반석에는

노인들만 가득 앉아 있는 포스터가 여기저기 붙어 있다. 그리고“이런 세상을 상상해 보셨습니까”라는 카피가 눈길을

오래 끈다. 눈앞에 직면해 있는 노령사회를 경계하는 포스터이다. 우리나라 노령화가 현재의 추세라면 앞으로

20~30년 후에는 노인 인구가 현재보다 3배가 늘어나 다섯 명 중 한 명은 65세 이상의 노인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렇더라도 가장 큰 문제는 여성들이 아기 낳는 것을 두려워하고 기피한다는 것이다. 직장을 잃을까봐, 양육 및

육비가 너무 많이 들까봐 걱정되기 때문이다. 이런 걱정을 덜어 주려면 임신하고 출산하는 일에 어려움이 없는 환경을 

조성하고 아이를 기르면서도 직장생활을 계속할 수 있도록 노동 조건이나 사회 문화 여건 조성에 힘쓰는 등 할 일이

산처럼 많다. 이제 아기를 낳아 기르는 일이 한 가정의 일이 아니라 국가적인 일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이제는 아이를 낳아 기르는 일이 그렇게 소중히 여겨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부가 이혼을 할 때 얼마

까지만 해도 자녀를 서로 맡아 기르려고 재판을 했는데 이제는 서로 아이를 맡지 않으려고 법정에서 싸운다.

낳아 기르는 일이 먹고 사는 일에 장애가 될성부르면 아이 수를 가차 없이 줄이거나 아예 낳지 않는 사람도 드물지

않으며 심지어 독신주의로 나가는 것이 현재의 풍조이다. 그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그 정도가 너무 심하다는

것이다. 지금쯤 안면도의 그 토담집에는 아기를 낳아 몸조리를 하느라고 친정에 온 딸이 널어놓은 아기 기저귀가

펄럭이고 있을지 모르겠다. 바닷물은 여전히 마을의 턱밑까지 밀려왔다가 나갈 것이고 그 집 마당에는 어미닭의 뒤를

따라 병아리들이 종종걸음을 치고 있을지 모른다. 굴뚝 연기가 심하게 흔들리는 날 안면도를 다시 한 번 찾아가면

빨랫줄 위에 흰 천이 힘차게 나부끼는 것을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