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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해야 산다, 우리는 변화될 수 있다.

은빛지붕 2023. 8. 23. 00:01

 지금 우리 사회와 집단 그리고 국가는 분명 개혁과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에 따라 늘 새로운 정부가,

로 출발하는 모든 집단이  변화와 개혁을 말하고 추구해 온 것도 사실이다. 허나 우리가 답답해 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기대한 만큼 변화와 개혁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최근에는 개혁 하면 오히려 개혁이란 이름 아래 혹 어떤 술수가

진행되지는 않는지 하는 의구심마저 생기므로 아예 개혁이란 이름 자체를 불신하게 되었다.


변화와 개혁의 시대, 사랑의 절실한 필요
그렇다 해도 우리는 반드시 변해야 하며 변해야만 살 수 있다. 좀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해야 변화를 성공적으로 이루어

낼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그런데 개혁은 제도와 구조 및 법률의 개선 이전에 사람이 문제이고 변화와 개혁의 성공과

가능성 또한 사람의 변화, 한 개인의 변화가 우선돼야 한다. 그러므로 어떻게 하면 사람이 변할 수 있는지를 이야기해야

한다. 사람의 변화와 관련해서 꼭 기억해야 할 사실은 엘렌 화잇의 글『정로의 계단』15쪽에 있는 내용이다.

 “교육과 수양과 의지력의 연단과 인간의 노력은 각각 상당한 분한을 가졌으나 마음을 변화시키는 일에는 무력하다.

이것들이 외적 행위를 단정하게 할 수 있다 해도, 마음을 고칠 수 없으며 생애의 동기를 깨끗하게 할 수도 없다.

사람이 죄에서 벗어나 성결해지려면 먼저 마음속에서 동작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곧 위로부터 새 생명을 받아야

한다. 이 능력은 그리스도이시다. 오직 그의 은혜만이 죽은 심령의 기능에 생기를 주어서 그것을 하나님께로 즉 거룩한

데로 이끌 수 있다.”  마디로 그 어떤 것으로도 사람을 전적으로 변화시키기란 불가능하며 변화는 오직 위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은혜로 가능하다는 것이다. 고로 오늘 한국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도 은혜로 인한 사랑의 감동

뿐이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가장 큰 힘은 돈이나 공권력이나 여론이 아니라 사랑이다.그래서 변화의 대가인 예수는

혁명이나 운동을 택하지 않고 십자가를 지신 것이다. 십자가는 사랑의 길이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

하셨느니라”(로마서 5장 8절).즉 십자가의 사랑만이 변화를 가져온다는 사실이다.


변화의 시작과 원동력, 은혜와 사랑
믿음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고 소망은 모든 것을 밝게 하며, 진리는 모든 것을 자유하게 하고 은혜는 모든 것을 변화

시킨다. 즉 변화의 출발점과 원동력은 은혜요 사랑이다. 그런데 성경을 한마디로 줄여서 말하라고 하면‘사랑’이요,

성경을 믿는 믿음의 사람들은 사랑을 믿는 이들로서 그들은 당연히 변화를 나타내야만 한다. 사랑을 체험하여 변화를

타낸 사람들을 성경에서는 중생했다고 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한복음 3장 6절). 또는 하나님의 사랑을 믿어(예수를 영접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사랑으로써 얻은 중생의 결과로 일어난 변화가 진정한 변화이다.

이 변화를 경험한 사람들이 진정한 개혁과 변화를 이룩할 사람들이다. 변화와 개혁은 당연히 이 사 람들의 몫이다.

그래서 변화에서 중생은 아주 결정적이다. 중생은 변화의 출발이요 시작이다. 그러나 중생이 변화의 완성을 의미하지는

는다. 중생 이후에 평생을 두고 성장하고 완성해야 할 부분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중생 이후의 새 사람과 중생 이전의

옛 사람 사이의 긴장과 갈등, 투쟁에서 승리해야 함이 바로 그것이다. 기나긴 투쟁이 될 수도 있다. 성경은 이를 두고

이렇게 표현한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갈라디아서 5장 17절). 이를 두고“즉각적인 성화란 있을 수 없다.

참된 성화란 생명이 유지되는 한 계속되는 매일 매일의 과업이다.”(성화된 생애, 11).

“ 자기 자신으로 더불어 싸우는 싸움은 일찍이 싸운 싸움 중 가장 큰 싸움이다.”(정로의 계단, 36)라고 했다.

 

그러므로 중생한 자들은 중생 이후에도 평생을 계속 은혜로 살아가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중생 이후에 더 악해질

가능성이 있다. 즉 본질적인 변화를 매일의 삶에서 경험적으로 유지, 보존하지 않으면 그러하다는 것이다.

혹 믿음있는 이들 중에서 죄를 짓고 타락한 소식을 듣게 되는 이유가, 그들이 한때 중생을 체험했을지라도 변화를

계속 유지, 보존하지 못해서 그런 것이다. 내면의 변화부터, 밖으로부터 오는 능력에서 이제 이 시대의 가장 격렬한

전쟁터 중 하나인 내면세계에서 벌어지는 전쟁에서 승리하는 길을 언급하고자 한다. 악을 이기고 변화를 끝까지

완성해 가는 길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우선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시간을 확보해야만 한다.“

아침 경건 시간을 지키고 하나님과 단 둘이 하루의 첫 30분을 보내기 위해 확고한 결심을 품는 것만큼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성령의 침례를 구하는 것에 버금가는

일입니다.”라고 한 밴스 하브너의 말을 기억해야 한다. 적어도 인생을 내 죄된 자아에 대해 죽어가는 긴 여정으로

생각할 때 이것은 정말 사실이다. 하브너는 진언한다. “만약에 물러가서 쉬지 않는다면 그는 영원히 물러나게

될 것입니다.”우리가 하나님과 효과적으로 접촉하지 않고서는 결코 죄악에서 승리할 수 없으며 변화의 완성을

이룰 수가 없다. 하나님 면전의식이 있는 사람이 과연 악을 저지를 수 있을까? 결단코 아니다.

하나님이 지켜보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뇌물을 받을 수 없고 성적 범죄를 저지를 수도 없다(창세기 39장 9, 10절 ).

하나님이 계심을 믿는 사람이라면 공공연히 쾌락과 헛된 지위를 탐하지 않을 것이며 거짓을 행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디모데전서 4장 5절)라고 말했다.


봉사와 사랑의 길로
 또한 변화를 계속 유지, 보존하는 길은 평생을 바쳐 내가 할일을 주님이 분부하신“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태복음 28장 19, 20절)라고 하신 일로 삼는 것이다. 동시에 내 변화를 위해 평생 몰두할 일을 주님의 소원을 이루어 드리는 것으로 삼아야 한다. 성경에는 주님의 소원이

나타나 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디모데전서 2장 4절).

이 일에 몰두하면 죄를 떠나 살아갈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일은 남을 섬기고 사랑하고 봉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봉사와 사랑을 나누는 전도가 내 삶이 되면 나는 평생 변화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다. 그러므로 나는 오늘

우리 시대의 변화와 개혁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고 싶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변화와 개혁의 지름길이요 성공인

것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이 변화와 개혁을 위해 민족의 가슴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심고 싶으며 이 일로 나는 오늘도

기도의 장소로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