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행복하지 않은 자, 모두 유죄
젊은 신혼부부가 있었다. 남의 집에 세 들어 살던 이들은 아기를 낳기 전에 아담하지만 볕 잘 드는 베란다가 있는 자신들의집을 장만하기로 하고 그때까지 열심히 일하자고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까탈스러운 상사의 잔소리도, 늘 빠듯하기만 한 가계부도, 예쁜 화분들과 근사한 오디오가 놓여 있는 아늑한 미래의 집을 상상하면 얼마든지 견뎌 낼 수 있었다. 몇 년이 흐르고 부부는 드디어 하루 종일 햇살이 비치는 소박한 베란다가 달린 집을 장만하게 되었다. 꿈에도 그리던 멋진 오디오와 코끝을 간질이는 향기 좋은 허브 화분들은 집 안 분위기를 더욱 근사하게 만들어 주었고 베란다 앞에 심겨 있는 감나무에는 박새며 직박구리가 날아와 호젓한 여유를 더해 주었다.
부부는 매우 만족스러웠고 다음에는 조금 더 넓고 조금 더 고급스러운 집을 장만해 보자며 전보다 더 분주하고 더 빠듯하게 살기를 다짐했다. 어느 날, 남편이 집에 두고 간 서류를 챙겨가기 위해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현관 앞에서 머리를 얻어맞은 사람처럼 우뚝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가사를 도와주는 아주머니가 햇살 가득한 베란다 창가에 앉아 오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한없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기고 계셨던 것이다.
아마도 그 순간 남자의 머릿속에는 인기 있는 개그 코너의 유행어인 “누구를 위한 000이란 말인가!”라는 문장이 떠오르지 않았을까? 우리 대부분도 이 부부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수첩 뒤에 고이 적어 둔 ‘위시 리스트’에는 언제가 될지 모르는 미래의 낭만적인 꿈들이 빼곡히 적혀 있다.
은퇴하면 첫 번째로 하고 싶은 크루즈 여행부터 시작해서 언젠가 어머니께 꼭 사 드리겠다는 밍크코트 등. 이 막연한 꿈들은 오늘 하지 못하는 효도와, 소망을 현실로 실행하지 못하는 용기 없음의 변명거리로만 사용될 뿐,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데 한 치의 도움도 주지 못한다.
우리 속담에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많이 먹는다.”고 했던가. 국내 여행이라도 아니, 동네 뒷산이라도 자주 오르는 사람이 크루즈 여행도 나서게 되고, 겨울이 되면 부모님에게 앙고라 장갑이라도 사 드리는 사람이 언젠가 밍크코트도 사 드리게 되지 않을까? 평생 아내를 위해 꽃 한 송이 사 보지 않은 남편이라면 설사 언젠가 정말 다이아 반지를 끼워 준다고 해도 그것으로 남편의 역할을 다한 것인 양 평생 반지 하나로 우려먹으며 생색을 낼 것만 같은 예감은 차라리 근거 없는 비약이었으면 좋겠다.
사랑하는 사람과 사별해 본 사람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그게 마지막일 줄 몰랐다.”고. 우리가 지금 행복해야 하는 이유 중에 이보다 더 근거 있고 중대한 이유가 또 있을까?
먹고사느라 바빠서 연락이 뜸해진 옛 친구에게 언젠가 거하게 한 턱 쏘리라 미루지 말자. 그냥 지금 “잘 지내냐?”고 문자 한 통 보내자. 남은 것이라곤 앙상한 뼈와 커다란 눈망울뿐인, 금방이라도 독수리의 먹이가 될 것 같은 검은 피부의 아이를 보며 언젠가 나도 기부 천사가 되리라는 결심 따윈 하지 말자. 그냥 지금 ARS 전화 한 통을 하자.
우리가 행복할 수 있는, 또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비결은 내 손에 없는 비단 열 필이 아니라 지금 내 손에 들려 있는 무명 한 필을 펼쳐 쓰느냐 마느냐에 달려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것도 그나마 우리의 체온이 따뜻할 때에만 유효할 터이니.“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누가복음 12장 20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