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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밝은 밤

은빛지붕 2024. 7. 30. 00:02

추억 속의 밤
밤은 원래 어두워야 진짜 밤이고, 밤은 본디 칠흑같이 어둡고 캄캄해야 진짜 밤이다. “캄캄한 밤하늘의 별을 헤아려 본 게 언제였을까?” 자문해 본다. 어렸을 적에 아버지와 함께 기차를 타고 시골 할아버지 댁에 간 적이 있다. 해거름을 한참 지나 늦은 밤에 도착한터라 작은 기차 역사(驛舍)만 불을 밝히고 있었다. 가로등은 고사하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시골길을 따라, 돌이 발부리에 차여 몇 번을 넘어질 뻔하며 꽤나 먼 길을 걸었던 기억이 있다. 바로 그때, 밤하늘에 반짝이는 수천 개의 영롱한 별들, 하늘을 수놓은 쏟아질 듯한 별들, ‘밤하늘의 보석(寶石)들’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겠다. 손에 잡힐 듯한 그 별들을 만난 ‘추억의 밤’이 큰 감동의 시간으로 아직도 내 가슴속에 남아 있다.


누구나 한 번쯤은 바닷가 모래사장에 누워 밤이 깊도록 밤하늘의 은하수를 감상하고, 별이 총총한 까만 밤하늘에서 간간이 떨어지는 별똥별을 보며 소원을 빌었던 추억들이 있을 터이다. 나로서는 최근 인상 깊게 별을 본 일이 지난해 여름 안면도에 갔을 때 꽃지 해변에서 보았던 별이고 보면, 꽤 오랫동안 별(星) 볼 일 없었던 듯하다. 빛은 지구 상에 있는 거의 모든 생명체에 에너지를 공급한다. 또한 빛은 식물을 성장하게 하고, 열매 맺게 하는 등의 역할을 한다. 사람은 낮에는 햇빛으로, 밤에는 전등 따위의 불빛으로 사물을 볼 수 있다. 이처럼 빛이 동식물과 인간에게 제구실을 할 때는 좋은 빛이지만, 빛이 시도 때도 없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빛을 밝히면 그 빛은 해로운 빛이 되고 만다. 도시에 살면서 우리는 대낮같이 밝은 밤에 살고 있어 매일 너무 밝은 밤을 맞고 있다.


빛 공해
밤이 너무 밝다. 도시의 밤은 너무 밝아 더 이상 별(星)볼 일이 사라져 버렸다. 밤이 깊어 가도 도시는 오히려 더 휘황찬란한 불야성(不夜城)을 이룬다. 수많은 빌딩과 길가의 가로등, 자동차와 네온사인의 불빛 등이 도시의 밤을 환하게 밝히고 있다. 도심에서는 과한 빛 때문에 그 자체로 공해가 된다. 종종 방 안의 불을 다 껐는데도 바깥에서 스며들어오는 빛 때문에 밤잠을 설치기도 한다. 산업화의 부작용으로 인해 생긴 필요 이상의 인공 빛이 식물과 동물의 생태계를 위협한다. 인공 빛은 햇빛, 달빛, 별빛 등 자연의 빛에 적응하여 살고 있는 동식물들을 혼란에 빠뜨린다. 예전에 경기도 여주에서 목회하던 당시, 어느 날 밤 한 논둑길을 걸었는데 논 한 켠은 밤새 켜 있는 가로등 불빛을 받아, 벼가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고, 낱알도 풍성하게 결실하지 못한 걸 보았다. 지렁이와 달팽이는 가끔 밤에 지면으로 올라오는데 인공 빛으로 인해 밤이 되어도 땅속에서 나오지 못한다.

 

올빼미는 어둠 속에서도 잘 보고, 작은 소리도 민감하게 들을 수 있는데 오히려 환한 불빛 때문에 먹잇감을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인구가 밀집한 도시, 공업 도시 등에서는 빛 공해가 더욱 심각하다. 서울대병원 정기영 교수와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구용서 교수 연구팀은 경기도 지역에 거주하는 10,000여 명을 대상으로 우리나라 지역별 야간 야외 조명 밝기 자료를 분석한 결과, 조명이 밝은 지역의 주민은 수면 시간이 6시간 48분에 그쳐 어두운 지역 주민(7시간 18분)보다 짧았다. 그리고 밝은 지역에 사는 주민이 잠드는 시간은 평균 밤 11시 15분인 반면에, 어두운 지역에 사는 주민은 평균 밤 10시 18분에 잠자리에 들어 비교 대상보다 1시간 가까이 일찍 잠자리에 들므로 불면증의 위험이 더욱 낮게 나타났다. 우리 몸의 생체 시계는 낮 시간대에 빛에 노출되고 밤에는 빛에 노출되지 않아야 고유한 건강 리듬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잠을 자야 할 밤에 너무 밝은 빛에 노출되면 생체 리듬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게 된다.


침대에 들어온 스마트폰
하루 동안의 피로를 풀고 다음 날에 일할 에너지를 충전하기 위하여 쾌적한 숙면을 취해야 하는데 밤이 너무 밝으면 수면 호르몬인 멜라토닌의 분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멜라토닌은 스트레스로 인한 피로를 풀어 주고 면역력을 강화해 주는 호르몬이다. 이 호르몬은 주로 주변 환경이 어두운 상태일 때 분비된다.
스마트폰에서 새어 나오는 작은 불빛에도 멜라토닌의 분비가 억제되는데, 창문을 뚫고 들어와 방안을 환하게 뒤덮는 빛 공해는 멜라토닌의 분비를 더욱 방해한다. 고려대학교 빛 공해 연구팀의 자료에 따르면 “빛 공해가 멜라토닌의 정상적인 분비를 막아 수면을 방해하고, 잠을 자도 깨어 있는 상태와 다름없는 ‘수면 중 각성’을 평소보다 50% 이상 증가시킨다.”라고 보고하였다. 빛 공해로 인해 각종 질병에 걸릴 확률도 높아진다. 사람이 아침에 일어나면 우리 몸은 체온이나 혈압이 상승해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게 준비한다. 이에 반해 저녁부터 밤까지는 체온이나 혈압이 낮아져 휴식하는 시스템을 갖게 되는데 이런 생체 리듬을 ‘써캐디안 리듬(Circadian rhythm)’이라고 한다.

 

낮에는 활동적인 호르몬이 좀 더 많이 분비되고, 밤에는 심신의 안정을 위한 호르몬이 더 많이 분비되기 때문에 밤 시간이 되면 인간이 보다 감성적이고 차분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성장기 어린아이들이 밝은 빛으로 인해 깊은 수면을 방해받게 되면, 성장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요즘 많은 사람이 잠자리에 들어서도 스마트폰을 그들의 손에서 떼 놓지 않는다. 스마트폰 등의 전자기기에서 나오는 *블루라이트 역시 우리의 숙면을 방해하는데, 블루라이트가 수면에 나쁜 영향을 끼치는 이유는 우리의 뇌가 계속 깨어 있는 상태로 만들고, 실제로는 밤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낮이라고 착각해서 계속 활동적이게 만들어 좋지 않은 수면 습관을 유도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수면 장애 및 불면증 환자가 계속 증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길 잃은 밤
밤이 밤을 잃었다. 밤이 캄캄함을 잃었다. 밤에게 밤을 되찾아 주어야 한다. 그래야 동물과 식물의 생태계가 건강해지고, 사람들도 더욱 건강하고 행복해질 수 있다. 최근 우리나라도 여러 지방 자치 단체에서 ‘행복한 불끄기’ 시민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매월 22일을‘행복한 불끄기’의 날로 정해서 한 달에 1번, 1시간(저녁 8~9시) 동안 실내 전등이나 경관 조명을 자율적으로 소등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이와 유사한 전 세계적인 운동으로 ‘다크 스카이(Dark Sky, 어두운 하늘)’ 운동이 펼쳐지고 있다. 야간의 조명이 안전 유지와 범죄 예방에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조명의 과용과 오용으로 인해 인간과 생태계에 미치는 심각한 피해를 막자는 취지로 활동하고 있다. 캄캄한 밤은 무섭고 두렵기도 하지만, 바닷가에서 캄캄한 밤하늘을 바라보며 반짝이는 별을 보는 것은 팍팍한 도시의 삶, 도시의 일상에 지친 이들이 동경하는 또 다른 그리움이다. 밤에게 어둠을 돌려주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창세기 15장 5절)라고 말씀하셨을 때, 아브라함이 올려다본 밤하늘엔 도대체 얼마나 많은 별이 빛나고 있었을까 상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