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글 모음

돌보지 않으며 돌보기

은빛지붕 2024. 7. 31. 00:02


돌보면 500만 원의 벌금
 

사람이든 동물이든 정성껏 돌본다고 바르게 돌보는 것이 아니라, 돌보지 않으며 돌보는 것도 바르게 돌보는 것일 수 있습니다. 올 여름, 미국 캘리포니아 주 요세미티 국립 공원(Yosemite National Park)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빙하와 강물의 침식 작용에의해 형성된 3,000미터 높이의 화강암 절벽(일명, 하프돔 :Half Dome)과 구름조차 쉬어 간다는 구름휴게소(Clouds Rest, 3,025미터)가 있는 요세미티 공원 곳곳에서 쏟아지는 거대한 폭포를 바라보노라면, 대자연의 위대함 앞에서 한없이 작고 미약한 인간의 모습을 깨닫게 됩니다. 굽이쳐 흐르는 거센 물살을 품은 계곡을 따라 늘어선 빽빽한 침엽수림의 웅장한 풍경은 경탄을 자아냅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넋을 놓고 대자연의 풍광을 감상하다 문득 허기가 느껴져서 공원 내 간이매점에 들렀습니다. 식탁에 앉아 점심을 먹는 동안 주변 곳곳에 부착된 안내 표지판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곳에는 다람쥐에게 먹이를 주는 사람의 손과 다람쥐 한 마리 그림이 그려져 있었고,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 있었습니다. “당신의 먹거리가 야생 동물의 건강에 유익하지 않습니다. 야생 동물에게 먹을 것을 주지 마세요.” 그리고 그 아래 조그마한 글씨로 “야생 동물에게 먹이를 주면 5,000달러(약 500만 원)의 벌금을 부과합니다.”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다람쥐에게 먹이를 줬다고 벌금을 500만 원이나 내야 해?” 제 눈이 의심스러워 안내문을 몇 번이나 다시 읽었습니다. 국립 공원 측에서 야생 동물들이 자칫 사람에 대한 경계심을 늦추고, 야생 동물이 가진 야생성을 잃을까 봐 관광객들에게 주의를 주기 위해 게시한 문구였습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야생 동물들이 스스로 먹이를 찾아 야생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돌보지 않으며 돌보기’ 위한 국립 공원 측의 노력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동물을 돌보며 훈련하는 데 있어서, 무조건 먹이를 잘 먹이는 것만이 제대로 돌보는 것이 아니라 때에 적절한 절제 훈련을 하는 것이 바르게 성장하도록 돕는 돌봄(care)입니다. 자주 안아 주고 너무 귀엽고 예뻐서 잘 때도 함께 자는 것이 진정으로 돌보는 것이 아닙니다. 최근 실내에서 개를 기르는 가정이 부쩍 많아졌습니다. 예전에는 개를 돌보고 훈련하는 데 있어서 때와 장소를 가리도록 대개 배변 훈련을 시켰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짖거나 무는 버릇을 가진 개의 습관을 교정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대개 이런 원인은 견주의 과잉 보호에 기인한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종종 개를 개집에 가두면 개가 답답해하고 개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라고 착각하며 이를 불쌍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생각과는 정반대로 개는 본능적으로 넓은 공간에서 편안함과 안락함을 느끼지 못합니다. 오히려 좁지만 자신만의 공간에서 편안함을 느껴 물거나 짖는 행동을 멈춥니다.

 

견주에게 야단을 맞은 후, 소파나 침대밑 구석진 공간으로 숨어 들어가는 것도 자신만의 공간으로 도망가려는 행동입니다. 처음 작은 강아지를 맞아들여 귀엽게 짖거나 꼬리를 흔들며 주인을 반기는 행동을 할 때 개를 안아 주는 일이 습관이 되면, 개는 모르는 사람이나 낯선 환경을 불안해하고 오로지 주인에게만 집착합니다.개를 안아 주는 것이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고, 개를 행복하게 해 준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개의 생리를 잘못 이해한 것입니다. 개와 함께 놀아 줄 때와 혼자 있을 때를 가려 주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주인이 외출했을 경우, 홀로 집에 남은 개가 계속 짖거나 우는 원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개를 안아 주지 않는다고 해서 불쌍한 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습관을 들여 더 이상 개를 기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개를 유기하는 일이 더 불행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개에 대한 과잉 보호나 잘못된 애정 표현 대신 돌보지 않는 듯 보이지만 적절한 선을 그어 훈련하며 돌보는 것이 사람과 반려견, 모두가 공생하며 행복하게 지내는 비결입니다.

엄마가 다 해 줄게 

어린 생명이 세상에 태어나면, 부모로서 젖을 먹이고 아기의 잠자리를 돌보며, 필요를 채워 주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리고 아이가 자라 가면서 적절한 자기 통제와 절제, 인내심을 위한 훈육 과정을 통해 아이는 성숙한 인격을 갖는 데 필요한 초석을 쌓을 수 있니다. 종종 우리 주변에서 자녀를 과하게 보호하는 부모들의 모습을 봅니다. 돈이 필요하다면 흔쾌히 돈을 주고,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녀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헌신적으로 제공합니다. 이처럼 자녀는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자녀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부모가 다 제공해 주면, 이것은 아이를 망치는(spoiled) 지름길입니다. 자녀의 주위를 계속 맴돌며, 자녀의 일에 지나치게 간섭하고 자녀를 과잉 보호하는 엄마를 가리켜 ‘헬리콥터맘(helicopter mom)’이라고 부릅니다. 이들은 자녀가 성인이 되었음에도 일일이 통제하고 간섭합니다. 초등학교 때는 학교에 수시로 연락하며 학교 일과 숙제는 물론 교우 관계까지 챙기고, 중·고등학교 때는 학교 성적과 입시 문제, 대학에서는 수강 신청과 학점 문제에도 관여하고 심지어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취업을 알아봐 주고, 연애나 결혼 상대자를 알아보는 일까지 적극적으로 나서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이런 극성스런 엄마의 모습을 뛰어넘는 ‘잔디깎기맘’까지 등장했습니다. 이 엄마들은 아이의 장래에 걸림돌이 되는 것들은 잔디를 깎듯이 알아서 처리해 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문제는 이 아이들이 실패에 적응하지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완벽한 상황에서 완벽한 결론을 내리도록 훈련받아 온 아이들이 대학에 진학한 후, 더 뛰어난 친구들과 경쟁하면서 실패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까지 생겨났습니다. 미국의 명문 펜실베이니아 대학에 다니던 메디슨 훌러란이라는 학생도 뛰어난 미모와 운동 실력으로 학생들 사이에 인기가 많았지만 대학에 진학한 후로, 더 뛰어난 친구들과 경쟁하면서 받는 압박감을 이기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소셜미디어의 발달로 SNS에 게시된 다른 학생들의 ‘미화된 일상’에 열등감을 느끼고, 자신만 불행하다는 절망감과 우울감을 호소하는 학생들이 늘고 있습니다. 자녀들은 실패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교훈을 얻어야 하고, 스스로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교육받아야 합니다. 자녀들이 자신의 일을 스스로 책임지고 감당할 수 있도록 부모의 도움을 베풀지 않는 것도 자녀를 위한 ‘진정한 돌봄(care)’입니다.

돌보지 않는 듯하나… 

하나님은 과거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실 때에 광야에서 먹을 것과 마실 물이 전혀 없었지만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Manna)를 공급하시는 기적적인 방법(출애굽기 16장 참조)으로 그들의 모든 필요를 채워 주셨습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그들로 인내심을 갖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다리게 하셨습니다. 심지어 그들에게 큰 시련을 주심으로 마치 하나님께서 그들을 외면하거나 돌보시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더 성숙하게 만드는 하나의 과정이었습니다. 한때 하나님을 향한 그들의 믿음이 흔들리기도 했지만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돌보심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종종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더 성숙한 인격과 인성을 갖춘 사람이 되도록 당장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고, 우리의 소원을 채워 주시지 않고, 기다리게 하시며, 오히려 어려운 상황에도 처하게 함으로 우리를 돌보시지 않는 듯하나 돌보시고 계십니다. 돌보시되 처음부터 끝까지 돌보십니다.우리는 인생길에서 난관을 만나 절망할 때에라도 낙심하지 말아야 하며, ‘돌보지 않으며 돌보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생각 너머의 섭리로 끊임없이 돌보시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확신이 세상의 시련을 견디고 이기는 힘이 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