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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곁을 지키는 것

은빛지붕 2024. 8. 13. 00:03

 

 

곁을 지키는 어미 새
 몇 해 전, 충북 제천에 있는 ‘별새꽃돌과학관’이라는 곳에 며칠을 묵으며 자연 속에 푹 빠져 지냈던 적이 있습니다. 늦은 밤까지 아름답고 신비한 별을 관측하고, 숲 속에 핀 화사하고 예쁜 야생화들을 보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자연탐사 프로그램 가운데 무엇보다 저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망원경을 목에 걸고 숲으로 가 새들을 관찰하는 일이었습니다. 새 사진이 있는 도감을 들고 여기저기서 들리는 맑고 청아한 새소리를 들으며, 곱디고운 색을 띤 새들을 찾아 숲 속을 누볐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붉은머리오목눈이 새의 작은 둥지를 자세히 탐조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그 둥지에는 부화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린 새끼와 어미 새가 있었습니다. 어미 새는 사람의 기척에 바짝 경계를 하면서도 새끼들을 지키기 위해 잠시도 그 곁을 떠나지 않고 둥지를 돌보았습니다. 어미 새에게 더 이상 스트레스를 줄 수 없어서 더 관찰하고 싶은 마음을 접고 조용히 그 자리를 피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둥지를 지키던 어미 새의 모습은 제 마음속에 오랫동안 깊은 감동으로 남았고, ‘사랑은 곁을 지키는 것’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붉은머리오목눈이 새와 헤어지고 얼마쯤 가다 보니, 신록이 짙푸르게 우거진 숲에서 머리에 검은 모자를 쓴 듯한 눈부실 만큼 파란 하늘빛 깃털을 가진 물까치 한 쌍이 서로의 곁에서 멀어질세라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빠른 속도로 날아다니는 모습이 눈에 띄었습니다. 매우 경이로운 광경이었습니다. 밤하늘을 수놓은 보석같이 빛나는 신비로운 별을 보는 일도, 숲 속에 핀 예쁜 꽃들을 관찰하는 일도 좋았지만 변함없이 제 새끼 곁을 한순간도 떠나지 않고 지키던 가냘픈 어미 새의 존재와 잠시도 서로의 곁을 떠날줄 모르던 물까치 한 쌍이 보여 준 숲 속에서의 동반비행은 더 깊은 감동을 제게 선사했습니다.


삶은 곁 이야기
 동물의 세계이건 우리네 인생사이건 간에 누군가의 곁을 지킨다는 것은 매우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둘러보면 우리의 삶은 ‘곁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한 사람의 출생이 기쁜 것은 세상에 태어난 새로운 귀한 생명이 우리의 품에 안기고, 우리 곁에 오기 때문입니다. 엄마 품에 안겨 쌔근쌔근 잠자는 아가처럼 평화로운 모습은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엄마는 아기 곁에서, 아기를 위해, 아기가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 주고 지켜 주고 보호해 줍니다. 엄마는 아기 곁에서 행복을 느끼고, 아기는 엄마 곁에서 편안함을 누립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아이들은 청년으로 성장하고, 곧 사랑에 빠지게 되면 이들 또한 사랑하는 이의 곁을 찾아가고 그 곁을 떠날 줄을 모릅니다.사랑하는 이들이 함께 살기로 약속하고, 결혼에 이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결혼은 부모의 곁을 떠나 사랑하는 남편 혹은 아내 곁에서 한평생을 살며 건강할 때든지 병들었을 때든지 변치 않는 마음을 가지고 그 곁을 지키기로 서약하는 것이지요. 세상을 살면서 사랑하는 이들과 잠시라도 떨어져 지내는 것은 견디기 힘든 일 가운데 하나입니다. 큰아이가 군에 입대하기 위해 머리를 짧게 자르고 보충대에 입소하던 날이었습니다. 자식을 군대에 보내는 모든 어머니의 마음이 그렇듯 제 아내도 늠름한 청년으로 자란 아들이었지만 여전히 자신의 곁을 떠나보내는 것이 못내 아쉬워 눈물을 보였습니다.


이처럼 인간의 삶은 출생이나 결혼과 같은 기쁜 일도 있고더 나은 성장과 발전을 위해 사랑하는 이와 잠시 그 곁을 떠나있는 일도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이 경험하는 가장 슬프고 고통스러운 일은 죽음으로 인해 사랑하는 이를 곁에서 떠나보내는 것입니다. 죽음을 통한 이별이 슬픈 까닭은 더 이상 사랑하는 이의 모습을 곁에서 볼 수 없고, 더 이상 사랑하는 이의 목소리를 곁에서 들을 수 없고, 더 이상 곁에서 만지고 느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세월호 참사가 슬픈 것은 가장 소중하고 사랑스런 자녀가 더 이상 ‘곁에’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비통한 절망 중에서도 유족들이 살 힘을 얻게 되는 것은 누군가 여전히 그들의 ‘곁에서’ 그들을 위로해 주기 때문입니다.


곁을 지켜 주는 사람들
 우리는 살아가면서 절망의 때에라도 우리 곁을 지켜 주는 이가 많이 있어 여전히 희망을 바랄 수 있습니다. 세월호 일부 희생자 유가족들은 자식의 장례를 치르고 진도까지 다시 내려와 아직까지 희생자를 찾지 못한 실종자 가족을 위로하였습니다.이들은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이 양반들 심정을 너무 잘 아니까. 와 있는 자체만으로, 그냥 곁에 있어 주고 자리만 메워 줘도 위로가 된다는 걸 아니까. 소외당한다는 느낌이라도 안 들게끔 하려고. 조금이라도 덜 아프라고 곁에 온 거지.” 이처럼 세월호 참사로 자신도 귀한 딸을 잃은 한 아버지는 갈수록 비어 가는 진도 실내체육관을 찾아 곁에 있어 주는 것만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위로이기에 먼 길을 마다 않고 달려왔다고 하였습니다.
 한 실종자의 어머니는 “점점 관심도 사라지는데 희생자 유가족 분들이 찾아와서 억지로 밥도 먹이고, 어떻게 도와줄지 몰라 미안해하면서 저희 곁을 지켜 주는 것이 큰 힘이 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렇듯 누군가의 곁을 지켜 준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며 의미 있는 일입니다. 이제 우리도 할 수 있는 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의 곁을 지켜 주면 좋겠습니다. 절망의 현실 속에서 희망을 잃지 않도록 그 곁을 지켜 주어야 합니다. 내곁의 가족, 내 곁의 친구, 내 곁의 이웃, 내 곁의 동료는 너무나 소중한 존재들입니다.


우리는 종종 떠나고 난 그 자리가 커 보일 때, 비로소 그것이 얼마나 내게 소중한 것이었던가를 뒤늦게 깨닫습니다. 건강할 때 곁에 있어 주고, 행복할 때 곁에 있어 주고, 즐거울 때 곁에 있어 주고, 아플 때 곁에 있어 주고, 넘어질 때 곁에 있어 주며, 슬플 때 곁에 있어 어깨를 내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곁에서 함께 아파하고, 곁을 떠나지 않고, 곁에서 도와주며, 곁에서 일으켜 주며, 곁에서 위로해 주며, 곁에서 보호하고, 곁에서 격려하고, 곁에서 용기를 주고, 곁에서 희망을 북돋워야 합니다. 주의할 것은 우리가 힘겨운 상황에 처해 있는 이들을 격려할 때, 좋은 의도를 가지고 그 곁을 지켜 주며 충고해 주려고 하지만 이는 오히려 상대방에게 부담과 상처를 줄 수도 있으므로 경우에 따라서는 차라리 묵묵히 그저 곁에 있어 주는 것이 더 나을 수 있습니다.


곁은 사랑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속성을 사랑이라(요한일서 4장 8절)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곁을 지키시는 분입니다. 그분이 우리의 곁을 지키시는 이유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다른 이름은 ‘임마누엘(Immanuel)’입니다. 그 뜻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마태복음 1장 23절)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의 죽음이라는 값비싼 희생의 대가를 치를 것을 아시고도 우리 곁에 오신 것은 우리를 너무도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곁은 사랑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므로 하나님은 우리 곁에 오셨습니다. 기도는 바로 우리 곁에 와 계신 하나님과 사랑의 대화를 나누는 소중한 통로입니다. 엘렌 G. 화잇은 그녀의 책 <생애의 빛>에서 “기도는 친구에게처럼 하나님께 마음을 펴놓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곁에 계셔서 우리의 숨소리까지 들으시는 하나님께 속마음을 내어놓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십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곁을 가장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내 곁의 가족, 내 곁의 친구, 내 곁의 이웃, 내 곁의 동료는 너무나 소중한 존재들입니다. 우리는 종종 떠나고 난 그 자리가 커 보일 때, 비로소 그것이 얼마나 내게 소중한 것이었던가를 뒤늦게 깨닫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