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없이도 살 사람, 법에 매인 사람
법 없이도 살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은 사람을 속이거나 상해하거나 해칠 가능성이 적은 사람이다. 타인에게 손해를 끼치거나 해를 주지 않는 사람이다. 타인에게 친절을 베풀고 이웃을 생각하는 마음의 여유를 갖고 있다. 그런 사람은 법을 지키는 일이 몸에 배어 있다. 법과 윤리와 생활에 별로 간격이 없다.
정직한 사람
법 없이도 살 사람은 정직한 사람이다. 오늘날 정직한 사람을 찾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은 것 같다. 사회 지도층 인사에게 더 엄격한 정직이 요구된다. 밝은 거울 앞에 서면 어두운 그림자가 꼬리를 물고 드러나는 거짓된 파일이 얼마나 많은가. 땅속에 숨어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두더지와 캄캄한 동굴 속에 살아가는 박쥐 같은 인생들이 많지 않은가?정직에 대해서 묻는다면 누구나 감추고 싶은 부분이 있다. 남들에게 알려지기를 두려워할 것이다. 법 없이도 살 사람은 깨끗한 양심으로 정직을 실천하는 사람이다.양심의 가책이 든다면 그래도 선을 추구하는 성향이 강한 사람이다. 양심 때문에 고개를 숙이고 얼굴을 가리고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소유했다면 그는 꽤 좋은 사람이다. 부끄러움을 인정하고 새롭게 살기를 바라고 행동하는 사람이 많은 사회는 미래가 밝은 사회이다. 양심의 소리를 배척하고 둔탁하게 받아들이며 세미한 소리에 문을 닫아 버리는 행동이 반복될 때 정직과는 거리가 점점 멀어지는 행동으로 꼴지어지게 된다.
집 근처에 단골 주유소가 있다. 고객들을 환영하는 플래카드가 바람에 살랑거린다. ‘저희 주유소는 정직합니다! 정품, 정량의 주유를 제공합니다.’그 주유소를 이용하게 된 지도 2년이 넘었다. 자동차 기름을 주입할 때마다 주인의 얼굴과 종업원들을 보게 된다. 주인은 매우 정직한 사람이다.꼭 필요한 말만 하고 항상 친절하고 고객들을 따뜻하게 맞이하는 사람이다. ‘저희 주유소는 정직합니다!’라는 플래카드는 정직하지 않는 주유소가 있다는 것을 말한다. 소비자들을 속이고 적당히 넘어가고 정량을 채우지 않고 눈금을 속이는 업체가 있다는 말이다.법 없이도 살 사람은 열쇠를 맡겨도 불안하지 않은 사람이다. 재정을 맡겨도 걱정이 없는 사람이다. 장부를 보면 정확하게 수입과 지출이 명확하고 결산이 깨끗하게 정리된다. 언제 어디서라도 맡겨진 장부를 확인받고 투명하게 보여 줄수 있어야 한다.
애굽의 시위대장 보디발은 노예 상인에게서 요셉을 샀다. 요셉은 형들의 시기와 질투와 분노와 노여움으로 애굽으로 팔려간 이력이 있다. 요셉은 주인인 보디발을 정직과 순종으로 섬겼다. 주인은 요셉에게 가정의 모든 살림살이를 맡아 주관하는 가정 총무로 삼았다. 자기 소유를 요셉에게 모두 위임했다. 그 노예는 주인에게서 부여받은 재산을 하나도 뒤로 빼지 않고 정직하게 계산하고 운영했다. 요셉은 양심의 거울에 비춰 부끄러움이 없는 맑은 생활을 하였다.법에 매인 사람은 법 때문에 법을 지키는 사람이다. 법이 없다면 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다. 사람보다는 법이 우선순위가 된 사람이다.
이해타산으로 사는 사람
법에 매인 사람은 사람의 양심과 도덕보다는 법의 영향력과 법의 효력을 우선시한다. 법규를 위반했을 때 금전적 손실과 시간적 손실의 이해타산으로 하는 사람들이다. 남의 눈이 보고 있을 때는 법을 지키고 보는 눈이 없을 때는 법과 동떨어진 생활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법은 사람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법이 우선이 아니고 사람의 존엄성과 생명 사랑이 먼저이다. 법에 매인 사람이 될 때에 사람의 정서와 사랑과 인격이 사라지게 된다. 법은 사람의 생존의 필요를 돕고 사람답게 살도록 가치를 부여받고 정정당당하게 살도록 보호하는 장치이다. 그런 정정당당함에 중요한 것이 도덕성이다. 그래서 최고 경영자(CEO)들의 최고 덕목 가운데 가장 중요한 첫째가 도덕성이다. 목적 달성을 위해, 이해득실에 의해 도덕성이 파기되는 현장을 온 국민이 바라보고 분노의 얼굴과 비난의 화살을 퍼붓는다.
그가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고 수많은 업적을 성취하고 전문 분야에서 사람들의 박수갈채를 받고 선망의 대상이 되어도 도덕성과 양심을 잃으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된다. 그저 이해타산에 매여 사는 사람으로 남게 된다. 그러나 누가 이해타산에 매이고 싶겠는가? 누가 정직하지 않고 싶겠는가?그저 생존이라는 굴레에, 체면이라는 굴레에 매여 사는 자신의 모습에서 누가 벗어나고 싶지 않겠는가? 법의 궁극적 정신을 구현하기보다는 법망을 피할 길이 먼저 보이는 자신이 변화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누가 갖고 있지 않겠는가?“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로마서 7장 21~24절).
마음으로는 선을 행하기 원하지만 행동으로는 선보다는 악한 마음이 더 지배한다.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순종하기를 원하지만 현실은 죄의 법에 매여 스스로 빠져나올 수 없는 상태를 보게 된다. 죄의 짐에 눌려“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라는 울부짖음은 인류의 탄식 소리이다.마음과 생각으로는 선을 추구하고 선하게 살기를 원하지만 죄가 끌어당기는 힘이 나를 사로잡아 죄의 늪에서 스스로 빠져나올 능력이 없다. 죄 가운데 살기 때문에 선으로 악을 이기려면 스스로의 힘으로는 불가능하고 외부의 힘이 꼭 필요하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죄와 사망의 법에서’고통을 받고, 마음의 상처를 받고 근심과 염려로 좌절하는 사람들에게“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라고 선언하신다. 그로 인해 사랑이 법이 된다. 이제 법에 매이지 않고 사랑에 매인 사람이 된다. 법에 매인 사람이 이제 사랑에 매여 법 없이도 살 사람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