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성이는 봄
사람들은 오지 않고 사람들이 떠난다. 오직 오래 산 사람들만 남은 마을. 골목길에 그 많던 아이들의 목소리는 온 데 간 데 없고 이따금 나타났다 사라지는 고양이들, 옛 동무들처럼 반갑다. 이젠 이 텅빈 마을의 공기는 누가 채워 줄까. 검은 밴스의 장례차가 또 한 명의 오래된 마을을 싣고 동네 마당을 휘 한 바퀴 돌더니 정든 마을을 떠나갔다. 뒷산의 오래된 소나무들이 일제히 울어댔다.
최후의 死線을 지키지 못하고 요양원으로 끌려간 봉식이. 그는 봄에 싹이 올라오는 고사리순처럼 아들을 사랑했다. 논 밭 전지를 팔아 전 재산을 쏟아 부어가면서 아들의 공부를 위해 자신의 전부를 걸었다. 남의 땅을 붙이기 시작하고는 봄부터 가을까지 그는 논둑에 편히 앉아 본 적이 없었다. 마을앞 논두락은 거지반 봉식이의 소작농이어서 집 앞에 손바닥 만한 밭떼기를 빼고는 하루 종일 논에 나가 있을 정도였다. 용케 애비의 뜻에 부응이라도 하듯 지방 9급 공무원에 합격이 되어 시청에 근무한다는 소리를 바람에 들었다. 애비는 봄처럼 즐거워 했다.
나이가 들자 뼈마디가 시큰거리고 어깨죽지가 찢어지듯 아파서 시내에 있는 정형외과를 다니기 시작했다. 80이 넘어가니 온몸은 종합병원이 되었고 점점 움직임이 둔해지더니 이따금 동네에 앉은뱅이 휠체어를 타고 골목길을 돌아다니는 걸 귀향해서 신기하게 바라본 적이 있다. 그렇게 외동아들 하나에 일생을 바치더니 이제 늘그막히 몸까지 바치게 되었다며 일그러지는 그의 모습을 얼핏 본 적이 있다. 우리네 세대야 다 자식들을 위해 일생을 살다 가는 것이 관습처럼 생각들이야 하지만 말년이 비참한 건 인간으로써 참으로 서러운 일이었다. 거기에 자식마져 나 몰라라 하면 그 설움이야 짐작이야 하겠는가. 사실 봉식이는 자식의 이런 태도에 삶을 송두리째 팽개침을 당한 듯 괴로워 했다. 형님! 요즘 자식들이 다 그렇습니다! 다 잊으시고 형님 살 생각이나 하세요! 하면 아! 이놈이 요새 나를 요양병원에 집어 놓으려고 안달을 하네! 하며 역정을 낸 게 지난달이었다.
요양병원에 입원한지 한 달 만에 봄빛이 감도는 마을에 검은 세단을 타고 그가 돌아왔다. 울어줄 이도 없고 보내줄 이도 없는 오래된 사람들만 사는 고요한 마을에 그가 돌아왔다. 주책없이 내리는 긴 봄비가 오래된 이들의 마음을 적신다. 몇몇이 돌아서서 우는듯 했지만 모두 산 귀신처럼 서 있었다, 마을에 남자라고는 봉식이 하고 나하고 뒷집 홍로 뿐이었는데 이제 달랑 둘이 남았다. 500년도 넘은 마을이 서서히 가라앉고 있다. 서성이던 봄이 휘저휘적 갈 길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