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과학과 영원한 생명 5
생명은 자생(自生)하는 것이 아니다. 생명은 얻어지는 것이다. 생명을 얻지 못하면 무엇이든지 자기 안에서 스스로 생명을 발생시킬 수 없다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자명하다. 우리는 예외 없이 부모에게 생명을 얻었다. 생명뿐 아니라 신체도 얻었다. 자신의 체질이 저절로 생긴 사람은 없다. 이런 사실은 사람은 자기 외의 누군가로부터 형성되는 존재라는 것을 뜻한다. 몸과 생명만이 아니다. 인격도 스스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배움으로 형성된다. 그러므로 누구를 만나서 무엇을 어떻게 배우는가 하는 것은 그 사람을 형성하는 데 아주 중요한 외부 요소이다.결국 사람이 구성되고 인격이 형성되는 모든 것이 다 외부에서 오는 작용에 의한 것이라는 말이다. 사람은 철저히 외부 의존적인 존재이다.
유의해야 할 것
우리가 살아 숨쉬고 있다고 생각하는 기간에 정말 유의해야 할 것은 영원한 운명에 대한 것이다. 살다가 죽으면 끝나버리는 것이 인생이 아니다. 심판이 있고 각 사람은 그 행한 대로 보응을 받을 것이다. 그 보응은 영생이거나 영멸이다. 사람은 살고 싶어 한다. 만일 참으로 영생이 있다면 영생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영생이 있는지 없는지 불확실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또는 영생은 없다고 단정하기 때문에 영생을 진심으로 추구하고 싶지 않을 뿐일 것이다.불확실한 것을 위해 당장 눈앞에 있는 부귀나 쾌락을 버릴 마음이 없을 뿐이다. 영생이 참으로 확실한 것이라면 아마 그것을 얻기 위해 당장의 고통쯤은 넉넉히 참을 사람들이 부지기수가 아닐까 생각한다.그런데 우주와 그 가운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여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지내도록 하셨다. 이 말은 사람의 생명과 존재는 처음부터 하나님께 얻은 것이라는 말이다. 이 얻은것, 즉 하나님이 창조하여 주신 존재와 생명을 스스로 거절하지 않는 한 이 영생은 취소되지 않는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실과를 먹지 말라고 말씀하시고 그것을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가르치셨다. 선악과를 먹는 것은 하나님이 영생하도록 창조해 주신 것을 거절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그것을 스스로 거절하면 하나님은 그들을 창조되지 않은 상태로 돌아가게 하실 수밖에 없다. 즉 주신 것을 도로 거두어 가신다는 말이다. 그런데 사람은 자의(自意)로 거절하지 않고 사단에게 속아서 선악과를 먹었다. 이런 사람에게 하나님은 한 번 더 그 잃어버린 영생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 성경은 이것을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린도후서 6장 2절)라고 말한다. 이 기회가 시간이다.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시간은 사람이 잃어버린 영원한 생명을 회복하라고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기간일 뿐이다. 이 기간에 사람에게 영생의 생명을 회복시켜 주시기 위해 창조주께서 사람이 되어 세상에 오셨다. 그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는 아담 안에서 죽은 모든 사람의 죽음을(고린도전서 15장 22절)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을 뿐 아니라 사망을 이기시고 부활하심으로 누구든지 예수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도록 모든 조치를 다 취해 놓으셨다.
유일한 기회
예수는 아담의 생명을 이어받아 탄생한 분이 아니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영생의 생명을 주시고 그 생명을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여 땅에 충만하게 하라고 하셨는데, 아담은 다만 여자 한 사람에게만 그 생명을 나누어 준 뒤 여자와 함께 선악과를 먹고 그 생명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아담에게서 태어나는 사람은 다만 육체가 되어 육체의 생명만 가지게 되었고 하나님의 생명 곧 영생하는 생명은 없어져 버렸다. 육체의 생명도, 사람이 사탄에게 속아서 선악과를 먹은 것을 아시는 하나님이 영생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기 때문에 허락받는 것일 뿐이다. 이것이 한 번 죽도록 되어 있는 임시 생명이다. 그래서 성경은 사람이 육체가 되었다고 말하고(창세기 6장 3절), 육체의 생명을 가졌으며(레위기 17장 11, 14절), 육체뿐이라 가고 다시 오지 못하는 바람 같은 존재라고 말한다(시편 78편 39절). 그러나 이 육체의 생명을 가진 동안이 영생의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다. 이 기회에 영생을 회복하기 위해 예수님이 오셨는데, 그의 생명은 아담으로 말미암은 생명이 아니라고 이미 말하였다.
그래서 예수는 남자를 경험하지 아니한 순결한 처녀에게 탄생하셔야만 하셨다. 그의 생명이 아담으로부터 이어받은 생명이 아니라는 것이 증거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예수는 근본적으로 생명 자체이시다. 그 생명으로 여자의 태에 잉태되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의 생명은 아담의 후손들의 육체뿐인 생명이 아니다. 하나님의 생명이요, 영생의 생명이다. 이 예수가 아담의 죽음을 대신 죽으시고 당신의 영원한 생명으로 부활하신 것이다. 그래서 아담 안에서 죽은 누구든지 예수 안에서 영생을 얻을 수 있게 한 것이다.
이 영생을 얻으려면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야 한다. 성경은 이렇게 가르친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요한복음 1장 12, 13절).하나님께로부터 나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이며, 하나님의 생명이 영원하기 때문에 다시 얻은 그들의 생명은 영원한 것이다. 이것을 다른 말로 중생 또는 거듭남이라고 한다. 예수를 믿고 거듭나면 영생을 얻는 것이다.
간단하고 쉬운 일
영생의 길은 참으로 간단하고 쉽다. 예수를 믿고 거듭나면 된다. 처음 말한 대로 생명은 자생하는 것이 아니고 외부에서 얻는 것이다. 영생도 역시 그렇다. 영생이신 예수께 얻는 것이다. 이렇게 쉬운 길을 사람들은 외면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진짜 같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이 아닌 것 같기 때문이다. 사실 아닌 것 같아 보이는 그것을 위해 현실을 희생할 마음이 없다. 그러나 그들은 그 현실이라는 것이 죽음으로 끝나는 것을 가볍게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번쯤 도박을 해 볼 만하지 않는가? 밑져야 본전이다. 누구든지 다 죽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참으로 영생이 있다면 얼마나 엄청난 이득인가! 영생, 그것도 하나님과 함께하는 행복한 영생이 아닌가! 하나님은 참으로 계시고 예수는 참으로 부활하셨다. 그 부활을 증거로 우리에게 믿으라고 하신다(사도행전 17장 31절). 믿으면 우리도 예수 안에서 예수의 부활한 그 생명을 얻어서 예수와 함께 영생한다고 약속한다. 그 일을 위해 하나님이신 분이 사람이 되어 오셔서 극진한 사랑으로 봉사하고 자기의 영원한 생명을 아담과 그의 죽을 수밖에 없는 후손들 대신에 죽음에 내어 주셔서 사망을 처리하시고 부활하심으로 영원한 생명의 실상을 드러내신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이것을 믿으라고 초청하신다. 누구든지 우리를 위해 이런 일을 하신 예수를 믿으면 예수의 그 부활하신 영원한 생명이 믿는 그 사람의 생명으로 주어지고, 그 생명을 현실화하기 위해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처럼 부활하여 예수와 함께 영생하는 것이다. 이 복된 기별을 독자들은 받아들이지 않으려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