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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

by 은빛지붕 2020. 9. 4.

                                                                    

                                                                  

 

영화의 주인공은 미모의 여인만을 쫓았다. 여인의 향기가 그의 후각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그는 여인의 향기를 체취하기 위해 흉기를 품고 여인을 찾아갔다. 그리고 살인을 한다. 얼마 전에 본 <향수>라는 영화다. 영상이 충격적이었다. 영화해설자 <홍성진>은 이 영화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1985년 출간되어 전 세계 45개 언어로 번역 1500만부 이상이 판매된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베스트셀러를 영화화한 작품으로 악취 나는 생선시장에서 태어나 버려진 소년이 최고의 향수를 제조할 수 있는 뛰어난 후각 능력에도 불구하고 불우한 환경에 노출되어 무감각해진 윤리의식이 결국 연쇄살인을 낳는 과정을 통해 인간의 다양한 욕망을 다루고 있다."라고.

 

주인공은 최고의 향수를 만들기 위해서 서슴지 않고 살인을 하고 그 시신을 향수를 만드는데 이용한다.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최고의 향기 즉 향수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인간에게는 오감(五感)이 있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다섯 가지 감각이다. 이것은 이목구비와 몸으로 느낄 수 있는 감각들이다.

주인공은 자신이 만들어 낸 향수로 후각을 통해 오감을 아우르는 최고의 경지로 갈 수 있기를 갈망한다.

그래서 그 향기를 만들겠다는 욕망에 사로잡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몸부림친다.

영화는 그 과정을 여과 없이 생생하게 보여주는 한편 그로 인해 타락해가는 한 인간을 쫓는다.

 

영화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자신의 오감을 만족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어쩌면 평생을 노력하는지도 모르겠다.

눈으로는 아름다운 것을 귀로는 맑은 선율을 코로는 그윽한 향기를 입으로는 맛난 것을 몸에는 더 할 수 없이

부드러운 것만을 걸치려고 한다. 그런 가운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새 오감에 빠져 길을 잃고 만다.

후각은 그 중 하나일 뿐이다.

 

논어(論語)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꽃을 쌓던 종이에서는 꽃의 향내가 나고 생선을 쌓던 종이에서는 비린내가 난다고, 당연한 말이다.

그런데도 공자께서 이 말을 기꺼이 했던 것은 가까이 할 것을 가려서 하라는 가르침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무것이나 가까이 해서는 안 된다. 그랬다가는 그 냄새가 우리 몸에 밸 수 있기 때문이다.

좋은 냄새라면 더 할 수 없이 좋은 일이겠지만 좋지 않은 냄새가 문제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안 좋은 냄새를 감추기 위해서 쉬운 방법으로 향수를 뿌린다.

그 향수의 종류는 수 없이 많고 다양하다.

사람도 그와 같다.

사람에게도 각자 저 마다의 향기가 있고 그 향기는 향수의 종류만큼이나 다양하다.

우리는 그것을 인품이라고 부른다. 이 향기는 몸에 뿌려서 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우러나는 것이다.

논어에서는 계속해서 말하기를 아무리 좋은 향기라 해도 그 향기는 바람을 거슬러 가지 못한다고 했다.

하지만 사람의 향기는 바람뿐만 아니라 국경까지도 거슬러 간다. 이 얼마나 대단하고 아름다운 향기인가,

바로 이것이 최고의 향기이다. 사람의 향기는 그토록 지고지순하다.

그래서 지혜로운 옛 선인들은 그 향기를 품기 위해서 평생을 책을 읽고 사색하며 노력했다.

 

이처럼 오래 전부터 향기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대단했다. 영화의 주인공도 그랬다.

그러나 그는 어리석게도 그 향기를 자신의 내면에서 찾아야한다는 것을 모르고 밖에서만 찾으려고 애를 썼다.

그러니 그것을 힘들고 어렵게 구했다 한들 영화에서처럼 허망하고 덧없는 결과를 맞을 수밖에 없었다.

안(內)이 아닌 밖에서 구한 것은 그 어느 것도 영원히 내 것이 될 수가 없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결국은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 밖에서 구한 것이기 때문이다. 본래의 내 것이 아니다.

잃어버릴 수 없는 그 누구에게도 빼앗길 수 없는 것은 오직 밖이 아닌 내안에서 찾아야 한다.

 

요즘 길을 가다 보면 라일락 향기가 자주 코끝을 스친다. 그 향기가 너무 좋다.

그때마다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호흡을 길게 하곤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은 라일락향기가 좋아서 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향기가 내안으로 들어가 내 몸에서 그 향기가 났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서다.

참으로 어리석은 생각이다. 그런데도 그 짓을 하고는 한다.

나의 향기는, 아니 향기까지는 그만두고 냄새는 어떤 것일까?

주변에 사람들이 별로 없는 것을 보면 결코 좋은 냄새는 아닌 것 같다.

그럴 수밖에 인품은 뒷전으로 하고 하루하루를 오감에 빠져 살고 있으니 좋은 냄새가 날 리가 없다.

그렇다고 해도 제발 비린내만은 나지 말았으면 좋겠다. 이제 와서 그리 되기를 원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마는

못내 그렇게 살지를 못한 것이 뒤늦게나마 후회스럽다. 목적이 빗나가긴 했지만 최고의 향기를 만들어

그 향기로 인해 사람들에게 추앙 받고자 했던 영화 속 주인공의 모습과 내 모습이 딱 맞아 떨어지는 것 같아

영화를 보면서도 보고나서도 내내 씁쓸하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