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안목과 시야를 지닌 내가 단지 노인이 되었다고 젊은이들에게
‘인생지남(人生指南)’이 될 만한 덕담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어불성설이다.
내가 젊었을때 좀더 진취적인 생각을 갖고 살지 못했다는 미련이 남는다.
바야흐로 젊어서 우리가 조롱하던 ‘꼰대’ 세대에 바로 내가 진입해 있다.
나이가 들수록 늘 배워야 한다는 것은 생활의 진리다.
‘귀가 어두워지기 전에 더 많이 들을 것을’이란 후회도 든다.
노인들의 주장이 외면당하고, 존재감이 퇴물 취급을 당하는 것은 자기 아성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아직 젊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사실 노인이 되면 자연스레 원로(元老) 소리를 듣는데,
그건 나이에 따른 ‘어르신’ 대접에 불과하다.
진정으로 존경하는 마음이 없는 원로란 호칭은 아무개란 이름처럼 무의미하다.
정말 나이가 들었다고 모두 원로인가?
내 생각에 원로란 단지 나잇값이 아니라 인생의 무게에 대한 연륜과 희생에 따른 명예여야 한다.
원로의 싹은 이미 청년시절부터 드러난다.
훌륭한 청년만이 반드시 훌륭한 노인이 되는 법이다.
그러기에 원로가 될 준비에 소홀했던 내 젊은 시절이 안타깝다.
앞만 보고 살면서 시대의 변화에 둔감했던 중년 시절이 아쉽다.
점점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자신의 색맹 상태를 깨닫지 못했던 장년 시절이 퍽 유감스럽다.
돌아보니 내게도 눈부신 변화를 재촉하던 부름이 여러 차례 있었다.
비록 늦었지만 당당한 노인으로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한다.
당연한 듯 완고함, 불통, 의심이란 경험의 무기로 자신을 무장한 채
미래 세대에 무임승차하는 그런 노인은 사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선 세대 덕분에 우리는 익숙하면 익숙할수록 직시하는데 실패하고,
잘 알기 때문에 치명적인 맹목이 될 수도 있다는 교훈을 얻지 않았던가?
우리 역시 반면교사를 반복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노인의 시각은 구시대의 안목이 아닌 제3의 눈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 경험의 우상을 섬기는 사제가 아닌
마치 과거의 유물을 헤아리는 박물학자의 지혜가 필요하다.
그래야 미래 세대에게 진실이란 유산을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손자녀석 사진을 받아보기위해 오래도록 손에익은 폴더폰을 버리고
새로 산 스마트폰을 손에 익히기 위해 밤낮 씨름하듯
미래 세대의 현실에 대해 눈뜨기 위해 진실한 돋보기를 써야 할 것이다.
고령화 시대에 백발의 노인에게 거는 기대는 거창한 비전이 아니다.
다만 그런 소박한 성찰과 후회일 것이다.
우리 어렸을 적, 할아버지들은 무더위가 가시고 해가 기우는 초저녁에
느티나무 아래 멍석을 깔고 여치집도 꼬아주시고 수수깡 안경도 만들어주시곤 했다.
불행하게도 우리 세대의 할아버지들은 그런 손재주가 없다.
게다가 주변에서 밀짚도, 수수대도 찾아보기 어렵다.
맑은 눈으로 투명하게 세상을 볼 수 있었던 그런 수수깡 안경이 그리워지는 한여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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