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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 모음

冬版畵

by 은빛지붕 2023. 2. 13.

 

 

창가에 나를 닮은 여자가 다리를 포개고 커피를 마신다
얼음바늘 같은 햇살이 탁자를 톡톡거리며 관통한다
창문 밖엔 영구차(靈柩車)를 닮은 걸음걸이들이 거리에 판 박힌다
커피 샾의 단조로운 음계(音階)로 행진을 반복한다

"리필(Refill) 좀 해 주실래요"

식어버린 목소리 끝에 반쯤 비워진 잔은 다시 채워지고,
그녀는 창문이 틀을 이루는 하얀 초상화가 되어간다
세상의 한 귀퉁이에서 또 한 귀퉁이로 밀려가는 것처럼
목이 긴 여인의 정지된 모습이 되어간다
문득 창 밖의 풍경이 적나라(赤裸裸)해진다
갑자기 흩날리는 눈(雪)때문에 눈(眼)꺼풀처럼 깜박이던
미심쩍던 계절도 선명한 겨울이 되어간다
그녀도 나처럼 기쁨보다 먼저 아픔에 친숙해진 것일까

겨울보다 차가운 세상 속에서 홀로 든든한 외로움이 되는 일

그건 사람이라는 흔하디 흔한 절망을 온몸으로 뼈저리게,
아프게, 통과하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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