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대와 60년대는 가난과 싸우고 있던 우리 모두에게 유교의 어른 공경 사상과 이웃 간 대화가 있던 시절이다.
한 집에서 떡을 하면 그대로 한 조각씩 이웃들과 나누어 먹던 시절, 배고픔을 이웃의 정으로 극복하던 시절이다.
내 어릴 때, 내가 살던 동네에는 크리스천이 몇 가정 없었다. 당시 교회에 나가는 사람은 예수쟁이라 불렸다.
그리고 관심의 대상이 됐다. 말로는 예수쟁이라 놀림을 받았지만 내심으로는 존경을 받는 시대였다.
예수쟁이라고 놀림은 받았어도, ‘예수쟁이는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는 신뢰감,
‘예수쟁이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공통적인 인식이 있었다.
당시에는 주일 아침, 저녁과 수요일엔 교회의 종소리가 온 동네에 울려 퍼졌다.
그래도 시끄럽다고 항의하는 사람이 없었다. 새벽 종소리가 요란해도 너그러이 여기던 시절이었다.
그 종소리에 잠을 깨도, 그 소리를 아름다운 소리로 받아들였던 이웃이었다.
그만큼 기독교가 사람들의 마음속으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았고, 그로 인해 기독교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예수쟁이에게는 구멍가게에서 외상도 잘 주던 시절이다. 그래서 전도가 아주 잘 되었다.
예수쟁이의 정체성은 정직하고 근면하며 남과 더불어 다투지 않는 착한 사람으로 되어 있었다.
영국에서는 크리스천에게는 은행에서 담보 없이 대출을 해주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 기독교인에 대한 사회 인식은 어떠한가.
술·담배 하지 않는 사람, 말이 좀 많은 사람으로 인식될 뿐,
정직한 사람,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인식은 아예 없는 것 같다.
교인에게 정직하고 신뢰받는 기독교인이 되라고 설교하는 교회가 얼마나 있는지 모르겠다.
좋은 교인은 전도 잘하고, 십일조 잘 내고, 목사님 말씀에 순종하고, 교회에서 봉사 잘하는 이 가 좋은 교인이다.
한국의 교회는 좋은 교인을 만드는 데에는 성공했으나, 좋은 크리스천을 만드는 데에는 실패했다는 외국
신학자들의 충고가 현실감 있게 와닿는 것은 왜일까?.
그러나 아직 품성이 착한 크리스천도 많이 볼 수 있다.
일부 목회자와 교회의 문제로 그 빛이 가려지고 있을 뿐이다.
아직도 주님만 바라보고 정직하게 사는 성실한 기독교인이 많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도 구원이 있다고 주장하는 목회자는 있지만
한국의 교인 중에는 이것을 받아들이는 교인은 거의 없다.
오히려 WCC 문제가 불거지자, 교인이 목회자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점점 증가하고 있다.
우리에게 아직도 성령이 떠나지 않고 계신다. 이것이 한국 기독교의 희망이다.
아직도 동성애를 찬성하는 교인은 매우 적다. 건전한 기독교인의 정체성이 있다는 증거다.
그리고 아직도 새벽 예배에 주님께만 의지하는 기도의 목소리가 드높다.
교회가 한국의 성도들을 잘 이끌어야 한다. 정직한 성도, 청지기 정신을 가진 기업가,
주님의 뜻을 문학 작품과 음악을 통해 바르게 전하는 예술가, 올바른 기독 정신으로 국가의 미래를 이끄는
공직자와 정치가가 나오도록 교회는 새로운 시각에서 훌륭한 기독교인을 배출해야 한다.
교회 생활을 강요하고 헌금에만 눈독 들이는 교회가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주님의 이름을 높이는 기독인을
양성하는 교회로 돌아가야 한다. 잠언에서 말씀하시는 물질관도 한번 생각해 볼 기독교인의 중요한 정체성인 것 같다.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하게 하시고 나로 가난하게도 마시고
너무 부자를 만드시지도 마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을 내게 먹여주시옵소서.
내가 너무 부유해서 하나님을 모른다고 할까 두렵습니다.
또 내가 너무 가난하여 도적질 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렵습니다.”
이런 기독교인의 정체성이 우리 삶의 현장에서 ‘존경을 받고 쓰임을 받는 기독교인’이라고
인식시켜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기독교인은 믿을 만하고 같이 일할 만하다’는 인식은
구태여 전도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아도 주의 백성의 수를 차고 넘치게 만들 것이다.
'좋은글 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참고 견디는 것 (0) | 2023.03.29 |
---|---|
리더의 권한은 책임감에서 나온다 (0) | 2023.03.28 |
좋은 교인, 좋은 크리스천 (0) | 2023.03.26 |
말처럼 쉽지 않은 것이 세상만사 (0) | 2023.03.25 |
용서란 자기를 위한 선물 (0) | 2023.03.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