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옷 이야기
삼복 날씨도 아닌데 어지간히도 덥다.
연전에 이렇게 더운 날 아들이 결혼을 한다고 해서 아무래도 반바지만 입고 결혼식을 해야 할 모양이라고 농담을
한 적이 있다. 젊은 여인들의 하의가 그야말로 전기 소비량을 긋는 그래프만큼이나 꼭대기까지 치솟아 있다.
짧은 치마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예전 어떤 방송사의 토크 쇼에 나온 기자의 이야기를 듣고 자다가도 웃은 적이 있다. 한번은 젊은 여인들의 하의가 거의 실종에 가까운 것을 보며 어떤 시골 할아버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할아버지, 요새 젊은 여자들 치마가 저렇게 짧아지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아마도 세상이 말세라 그럴 것이라는 탄식을 기대했는데 그야말로 기상천외의 대답이 튀어나온 것이다.
할아버지가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나야 고맙지만서두.” 인터뷰하던 기자나 그것을 촬영하던 기사나 모두 땅바닥에
나둥그러지고 말았더란다.
더운 날씨 덕에 젊은 여인들이 걸치나마나한 짧은 하의를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것을 보니 온 세상이 다 미인 천지다.
그동안 죽기 살기로 다이어트를 하고 심지어 지방 제거 수술이니 성형 수술까지 해서 만든 멋진 몸매와 아름다운 얼굴을
맘껏 드러내 놓고 자랑하고 싶기도 할 것이다. 동네 뒤의 대학교 강당에서 미스 코리아 선발 대회를 한다고 요란한데
굳이 거기까지 가지 않아도 대학가 곳곳에서 미인 선발 대회를 보는 것 같아서 나도 그 할아버지처럼 고마워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다.조선 시대의 한량(閑良)들은 미인의 조건으로 열 가지를 들어 점수를 매겼다고 한다.
즉 살결과 치아와 손은 희어야 하고(三白), 눈동자와 눈썹, 속눈썹은 검어야 하고(三黑), 목과 머리 그리고 팔다리는
길어야 하고(三長), 치아와 귀, 발 길이는 짧아야 하며(三短), 가슴, 이마, 미간은 넓어야 하고(三廣), 입, 허리, 발목은
가늘어야 하고(三狹), 엉덩이와 허벅지, 유방은 두터워야 하고(三太), 손가락, 목, 콧날은 가늘어야 하고(三細), 유두,
코, 머리는 작아야 한다(三小)고 하였다. 그래서 기생이나 소문난 미녀의 점수를 매겼는데 30점 만점을 받는다면
그야말로 절세미인(絶世美人)으로 쳤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이 세상에 있기는 있었는지 모를 일이다.
공장에 주문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골고루 갖췄다면 아마 신품(神品)이라고 할 만한 일이다.
미인에 대해서라면 중국이 빠질 수가 있는가! 그들은 이런 기준으로 미인을 평가했단다.
오발선빈[烏髮蟬嬪] : 머릿결이 까마귀의 깃털처럼 칠흑(漆黑)같이 검은빛을 내야 한다.
운계무환[雲稽霧環] : 여인들이 머리를 잔뜩 부풀려서 구름이 바람에 흘러가는 모양으로 말아 올린 것을 말한다.
아미청태[蛾眉靑態] : 초승달 모양으로 그린 눈썹이다.
명모유반[明眸流盼] : 광채를 발하는 크고 검은 눈과 물 흐르듯 부드러운 눈웃음을 말한다.
주순호치[朱脣皓齒] : 살짝 열린 붉은 입술 사이로 드러난 박속처럼 하얀 치아를 말한다.
옥지소완[玉指小婉] : 손가락의 끝이 뾰족하고 가늘고 길며, 거기에 가는 팔을 곁들인 것을 말한다.
세요설부[細腰雪膚] : 초나라 영왕이 버들가지처럼 가는 허리와 흰 피부의 마른 미인을 좋아했는데,
이 때문에 궁녀들은 왕의 총애를 얻고자 살을 빼느라고 많은 여인이 굶어 죽었다고 한다.
연보소말[蓮步小襪] : 연보는 전족을 한 여인이 아장아장 걷는 걸음걸이를 형용한 말이고, 소말이란 전족을 하여
발이 작아진 여인이 신는 아주 작은 버선을 가리킨다. 작은 발에 외씨버선을 신은 전족 때문에 얼마나 많은 여인이
불구에 가깝게 지냈는지 모를 일이다.
홍장분식[紅裝粉飾] : 얼굴에 흰 분을 바르고 연지를 찍는 것을 말한다.
기향패훈[肌香佩薰] : 기향은 살갗에서 향내가 나는 것을 뜻한다.
패훈이란 사향노루의 향처럼 향낭을 몸에 차고 그 향기를 뿜어내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이런 미인의 기준이 언제나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시대에 따라 변한 모양이다.
중국의 왕릉에서 나온 도용(陶俑)의 모양과 복식을 보면 지역과 시대에 따라 미인의 판별 기준이 달라져 왔다고 한다.
수나라 시대에는 날씬한 체격에 미소를 띤 갸름한 얼굴을 선호했고, 당나라 시대에는 양귀비 형의 풍만한 체격과 통통한
얼굴을 선호했으며, 위나라 초기나 원나라 시대에는 북방 유목 민족 특유의 둥글고 살이 오른 얼굴 모습을 선호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아름다운 여인들, 중국 도용을 통해 본 미인과 복식> 미술문화사 간, 참고).
여인이 정말 아름답다는 것은
세상에 남자들만 나오는 드라마가 없듯이 역사도 절반은 여성들에 의해서 이루어졌다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빼어나게 아름다운 여인들 때문에 역사의 방향이 달라진 경우도 부지기수로 많다. 고대 이집트를
대제국으로 이끌어 태양의 딸이라는 별명을 가졌고, 성경의 모세의 양어머니로 알려진 핫셉수트로부터 클레오파트라,
중국의 서태후,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 같은 정치가가 있는가 하면 맨발의 무용가 이사도라 덩컨, 노래에 살고 사랑에
죽은 마리아 칼라스, 20세기 대중문화의 상징 마릴린 먼로 같은 대중의 우상도 있고, 가난한 자들의 천사 나이팅게일,
병들고 가난한 자들의 영원한 어머니 마더 테레사도 있다. 시대를 풍미한 경국지색 양귀비와 서시 그리고 퍼스트레이디의 영원한 대명사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도 있다. 이런 여인들 때문에 세상은 그만큼 더 고통을 겪기도 하고 더 아름답기도 했으며 더 부드럽고 사랑스러워지기도 했다(김정미, <역사를 이끈 아름다운 여인들>, 눈과 마음 간, 참고).
성경에도 수많은 미인이 나온다. 신의 손길로 갓 빚어낸 완벽한 미인 하와로부터, 심히 아리따웠던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 리브가, 라헬 등은 뛰어난 미녀였던 게 분명하다. 다윗 왕가에 비극을 몰고 온 밧세바, 다윗의 세 번째 아내 아비가일 역시 보통 수준을 넘는 미녀였음을 추측할 수 있다. 솔로몬이 그토록 사랑해서 사모의 노래 아가를 남겼던 술람미 여인이나 민족을 전멸(全滅)의 위기에서 구해 낸 에스더 역시 빼어난 미녀였다. 그런 숱한 미녀들이 성경 역사에 등장하지만 세상에
누구 못지않게 아름다운 여인들에 묻혀 긴 세월을 보낸 솔로몬은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잠언 31장 30절)는 결론을 남긴다.
외모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그들이 갖춘 지혜와 덕성, 재치와 용기 등이 여성을 진정으로 아름답게 하는 요소들이라는
것이 성경의 결론이다.
예전에 미스 코리아 출신의 한 탤런트가 절도 혐의로 세간의 화제가 되었다. 아름다운 사람은 행동과 마음 씀씀이
까지 아름다워야 한다는 사회의 요구일 것이다. 그래서 미스 코리아나 미스 유니버스를 선발하는 기준도 대개
용모에 40~50퍼센트, 품성에 30~40퍼센트, 재질에 10~20퍼센트 정도의 기준으로 심사한다고 하지 않던가.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말이 있듯이 오래 아름다운 것은 꽃처럼 쉽게 시드는 얼굴이나 몸매가 아니라 마음씨
라는 것을 더 말해 무엇하랴! 참으로 아름답고 싶다면 1953년 영화 ‘로마의 휴일’로 혜성처럼 나타났던 세기의 미녀
오드리 햅번은 한순간에 그 영화를 본 세상 남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었다. 바라보는 사람을 한없이 빠져들게 하는
맑은 호수같은 눈, 군더더기 없이 짧고 단정한 머리 그리고 가늘고 날씬한 다리와 가냘픈 몸매 때문에, 삽시간에 전
세계에 그녀의 헤어스타일이 유행하고 다이어트 열풍이 불기도 했다. 그런 그도 어린 시절이 그리 순탄한 편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여섯 살이 되었을 때 나치 추종자였던 그의 아버지가 떠난 후로 그야말로 죽을 고생을 했다.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 죽기 직전에 국제구호기구에서 베풀어 준 따뜻한 한 끼의 음식이 얼마나 고마웠던지 그녀도
꽤 많은 세월을 줄기차게 유니세프의 홍보 대사로 아프리카를 누비다가 병을 얻어 63세에 세상을 떠났다.
생애의 마지막에 아들에게 썼다는 편지는 오래 가슴을 울리는 내용이다.
그녀는 영원히 아름답게 남는 법을 터득했던 진정으로 아름다운 여인이었던 것 같다.
매력적인 입술을 가지고 싶다면
친절하게 말하라.
사랑스러운 눈을 가지고 싶다면
사람 속의 좋은 점만을 찾아내라.
날씬한 몸매를 가지고 싶다면
자신의 음식을 배고픈 사람과 나누라.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가지고 싶다면
어린아이가 하루에 한 번
손가락으로 너의 머리를 쓰다듬게 하라.
아름다운 자세로 걷고 싶다면
결코 너 혼자 걷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라.
사람들은 상처로부터 치료되어야 하며
질병으로부터 회복되어야 하고,
무지함으로부터 교화되어야 하고
고통으로부터 구원받아야 한다.
결코 그 어떤 사람도 버려져서는 안 된다.
우리는 언제나 기억해야 한다.
만약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 있다면
너의 팔 끝에 있는 손을 쓰면 된다.
네가 더 나이가 들면 네 손이 두 개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한 손은 자신을 위한 손이며,
다른 하나는 남을 돕기 위한 손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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