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자의 아내
예전에 한 대통령 후보가 ‘증자의 돼지’ 이야기를 자주 인용해서 회자(膾炙)된 적이 있다.
어려서부터 여러 번 들은 이야기지만 언제 들어도 감동이 되는 내용이다.
어느 날 공자(孔子)의 제자인 증자(曾子)의 아내가 시장 나들이를 가려고 했던가 보다.
그러자 아이가 엄마를 따라가겠다고 보채는 것이었다. 날씨는 덥고 할 일은 많은데 그 복잡한 시장 바닥에서
아이를 챙기기도 어렵고 행여 잃어버리기라도 하면 낭패라는 생각이 들어 아이를 집에 있으라고 달랬다.
그러나 이렇게 달래고 저렇게 얼러도 아이가 영 받아들일 기색이 없는 것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엄마를 따라가겠다고 나서는 자식을 떼어 놓는 일은 여간 난감한 일이 아니다.
급기야 홧김에 그랬는지 엄마가 이런 약속을 했겠다.
“애야, 울지 않고 잘 놀면 내가 돌아와서 돼지를 잡아 삼겹살을 구워 주마.”
어찌 됐는지 아이는 그 말을 듣고 울음을 그치고 잘 놀았다.
그리고 그 아이의 엄마는 일을 마치고 유쾌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들어서자 아이의 아빠인 증자는 돼지를 묶어 놓고 잡을 채비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증자의 아내가 남편에게 물었다. “아니, 무슨 잔치할 날도 아닌데 돼지는 왜 잡는 거요?”
“당신이 아이에게 집에 오면 돼지를 잡아 주겠다고 약속을 하지 않았소! 약속을 했으니 지켜야지요.”
“아니 그거야 그냥 아이가 하도 울어서 해 본 소리지 어떻게 아이를 달래느라고 한 말을 곧이곧대로 지킨다는 말이오!”
“아이는 장난으로 들은 게 아니오. 아이란 본래 어른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그대로 믿는 것이오.
이제 당신이 아이를 속이면 아이는 엄마를 믿지 않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어찌 아이를 가르칠 수 있겠소?”
그러고는 돼지를 잡아 아이에게 먹였다.
부모와 자식 사이를 비롯하여 부부, 친구, 거래처 등, 사람 사는 세상에 서로 간의 신의(信義)를 지키는 것만큼 중요한
덕목도 따로 없다. 신의를 지키지 않는 사람은 금방 사람들 사이에서 따돌림을 받아 외톨이가 되고 만다.
시간 약속을 하면 번번이 지키지 않아서 몇 시간씩 기다리게 하고, 목이 마르게 빌려 간 돈을 갚을 때가 되면 내 배 째라
하고, 무덤까지 가져갈 줄 알고 속에 든 말 했더니 상대 쪽에 가서 고해바치고, 착실하다고 생각하고 중역(重役)을
시켰더니 회사의 기밀을 빼돌려 달아나고,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되도록 변치 말자고 서약을 하고는 얼마 안 가서 딴짓을
하고, 후보 때는 철석같이 공약을 떠벌리고는 당선된 후에는 딴소리하는 이런 사람들하고 다시 상종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신의란 거울과 같아서 한 번 깨져 버리면 아무리 강한 접착제를 사용해서 때운다 해도 본래의 상태를
회복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현자는 이런 말을 했을 것이다.
“공중에 돌을 던지면 자기 머리 위에 떨어지듯이 남을 배신하여 치는 자는 자기가 맞는다”(구약 외경 집회서 27장 25절).
위대한 실패
1914년 8월 영국의 탐험가 어니스트 섀클턴은 27명의 대원과 함께 남극 횡단의 길을 떠났다. 그러나 목적지를 코앞에
두고 갑자기 밀려오는 수백만 톤의 부빙(浮氷) 때문에 배는 산산조각이 나고 이때부터 목숨을 건 사투가 시작된다.
얼음덩이 위에서 펭귄을 잡아먹고 썰매를 끌던 개도 잡아먹으며 일 년을 버틴 끝에 엘레펀트라는 작은 섬에 도착한다.
그러나 그 섬은 먹을 것 하나없는 불모지였다.섀클턴은 작은 보트에 5명의 대원을 데리고 구조를 요청하기 위해 섬을
떠났다. 남은 사람들에게는 다시 돌아올 것을 굳게 약속했다. 집어삼킬 듯 밀려오는 얼음덩이와 무서운 소리로 울부짖는
범고래 그리고 거센 소용돌이와 싸우며 17일 만에 포경 기지에 도착했다. 여기서 양식을 구한 후 숨 돌릴 사이도 없이
다시 섬에 남아 있는 22명의 대원을 구출하기 위해서 떠났다. 그러나 번번이 배가 접근할 수 없어서 돌아섰다.
세 번째 배까지 실패하고 네 번째인 옐코호를 타고 그들을 구조하게 된다. 길은 여전히 막혀서 여러 날을 기다렸지만
어느 날 기적처럼 뱃길이 트였다.이곳을 떠난 지 거의 넉 달 만이었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대원들을 구출하여
안전지대로 나온 후 대장이 물었다. “당신들은 어떻게 그 순간 내가 올 줄 알고 기다리고 있었소?”
그러자 한 대원이 대답했다. “우리는 대장이 반드시 올 줄 알고 있었소. 왜냐하면 대장은 그럴 분이니까요.
우리는 아침마다 배낭을 메고 떠날 준비를 하고 기다리고 있었소.”
섀클턴이 비록 남극 대륙 횡단에는 실패했지만 그의 대원 27명 전원이 무려 634일 만에 무사 귀환했다는 것은 그야말로
기적이었다. 실로 ‘위대한 실패’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의 출발 1년 전에 캐나다의 스테팬슨이 11명의 대원을
거느리고 북극 탐험에 나섰다가 섀클턴과 똑같은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극한 상황에서 거짓말과 속임수,
도둑질 등으로 서로 싸우다가 전원이 사망하고 말았다. 섀클턴이 어느 날 마지막 남은 비스킷 한 봉지씩을 대원들에게
나눠 준 날 밤이었다. 모두가 잠이 들었는데 대장 혼자 잠을 이룰 수가 없어서 눈을 뜨고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가
살그머니 일어나더니 자기 옆에 자는 친구의 비스킷 봉지를 끌어당기는 것이 아닌가! 친구의 것을 훔치려 들다니 이런
나쁜 놈이 있나 하고 소리를 질러 꾸짖으려고 하는 찰라 그 사람은 훔쳐 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 봉지에서 비스킷을 꺼내
친구의 봉지에 넣고 있었다. 그날 밤 섀클턴은 밤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흐르는 눈물 때문에….
섀클턴의 대원 중 한 명의 일기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었다. “섀클턴은 은밀히 자신의 몫인 아침 식사 비스킷을 내게
내밀며 먹으라고 강권했다. 그리고 내가 비스킷을 받으면 그는 저녁에도 내게 비스킷을 줄 것이다. 나는 도대체 이
세상에 어느 누가 이처럼 철저하게 관용과 동정을 보여 줄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나는 죽어도 섀클턴의 그러한 마음을
잊지 못할 것이다. 수천파운드의 돈으로도 결코 그 비스킷을 살 수 없을 테니까 말이다.”
신의가 있는 사람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고 신의를 배반한 사람들은 아무리 상황이 좋아도 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신앙이란 바로 하나님과의 신의를 지키는 일이다. 하나님은 수많은 약속을 하시는 분이다. “언제나 함께 있겠다.”, “ 어려운 일에서 구해 주겠다.”, “질병이나 재난이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돌봐주겠다.”는 약속과 함께 “두려워 말아라.”, “근심하지 마라.”,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마라.”라는 당부를 계속해서 하시는 것이다.
신앙이란 이런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따르는 것이다. 혹 그 약속의 성취가 더디더라도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 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베드로후서 3장 9절)는 말씀을 믿고 참고 기다리는 것이 진정한 기독교 신앙의 정수(精髓)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섀클턴 대장보다 더 확실하게 신의를 지키실 분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