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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Audiophile Jazz

by 은빛지붕 2023. 8. 20.

 

 밤새 비가 내린 뒷날 아침의 풀벌레와 새 소리가 맑은 물처럼 귀에서 마음으로 흘러든다.

범사에 감사하라든가, 늘 감사하며 살라는 말이 귀에 못이 되어 박혔다.

오래 전에는 바이올린을 켜주거나 피아노를 쳐주거나 기타를 쳐주기도 하고 노래를 불러주는

식당이나 까페들이 있었다. 기름을 넣으러 온 트럭처럼 허겁지겁 배만 채우던 식사 시간에 리듬이 생기고

선율이 생기고, 오래 지긋이 고기나 야채를 씹는 중에도, 오래 지긋이 시선이 음악을 따라 바깥 풍경속으로

스며들곤 했었다. 그냥 뚝딱 차려낸 한끼의 식사같은 아침이 와도 고마운데,하나님은 단 하루, 단 한번의 아침에도,

저 물리지 않는 음악을 걸러지 않으신다. 행여나 같은 음악에 질릴까봐 계절을 따라 악사를 바꾸고 음악도 바꾸신다.

그럴땐 허겁지겁 배가 고팠다가도, 선생님이나 아버지의 헛기침 소리를 듣는 아이처럼 허기를 꿀꺽 삼키며 숟가락과

젓가락의 속도를 음악에 맞추게 된다. 밥 먹고 눈만 뜨면 살아왔는데 이제는 후닥닥, 허겁지겁 살지 않아도 살 수 있지

않은가? 음악은 흘러가는 모든 시간을 아름다운 선율로 세공한다. 슬픔도 기쁨도 낙담도,격분도 절망도, 죽음 마저도

음악 속으로 흡입 되면 기름지고 풍성한 울림이 된다. 음악이 흐르기 시작하면 우리는 백화점 코너를 돌거나 , 사람들의

어깨를 부딪히며 시장 바닥을 걷고, 하다못해 쇠수세미를 들고 음식물 쓰레기통을 씻을지라도 나는 음악이라는 투명하고 빛이 부서져 흐르는 길과 공간에 흡수 된다. 바람에 나부끼는 나뭇잎들도, 술렁이는 대숲과 공터의 잡초들마저 왈츠가

흐르면 왈츠를 맞추고, 람바다가 흐르면 람바다를, 단조로운 찬송가가 흐르면 찬송가를 맞추어 흔들린다.

음악은 흐르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그 음악의 영토를 가지고 시간과 공간을 지배한다. 그 영토에 있는 모든 존재는 음악을 따라 흐르고 멈추고, 달리게 된다. 어렵게 깊은 잠을 자고 잠이 깬 이른 아침, 어디론가 급히 가야한다는 내안의 소음에

휘둘리면 들리지 않게 되는 음악이 저 풀벌레 소리를 베이스로 깔고 흐르는 새들의 소리다.

음악은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라 사람이 발견하고 흉내내는 것일 뿐이다.

 

창세기에는 태초에 음악이 있었다는 말이 빠져 있다. 계곡을 따라 물이 흐르면 계곡물의 음악이 있고, 강의 음악을 지나

바다에 이르면 물결을 뜯고 파도를 연주하는 바다와 달의 음악이 있다. 어디를 가도 있는 이 음악들이 들릴 때 우리의

청력은 정상이다. 바다에 갔는데  파도 소리가 마음 속으로 밀려들지 않고, 깊은 산속에 갔는데 바람 소리와 새소리가

가슴 속에 스며들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미 귀가 먹은 것이다. 그 소리를 빼고 이 세상에 남는 소리를 우리는 소음이라고

부른다. 음악을 빼고 남은 소리들은 지옥의 소리다. 지옥의 소리를 듣는 청력만 남았다면, 차라리 귀가 다 먹어버리는

것이 나을 것이다. 남을 흉보며 속닥속닥 하는 소리, 자동차의 경적 소리, 술에 취해서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고 싸우는

소리, 기계가 치덕치덕 무엇인가 사람의 욕망이 담긴 물질들을 찍어내는 소리,마음 속에서 스물스물 기어오르는 미움과

의심과 질투의 소리... 물론 음악이라는 필터가 이 소음들을 음악으로 구원할수도 있다.

소리가 소리의 죄를 회개할수만 있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