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두어달, 월화를 쉬고 수목금토일을 나가던 식당을 문자 한 통으로 집어 치우고, 이틀도 더 쉬지 못하고 쫓기는 기분이
되어 벼룩시장과 교차로를 뒤적이다, 역시 정직원을 할 엄두가 나지 않아 가사원에 전화를 해서 오후반일을 얻었다.
내가 종일반을 가건, 오후반, 오전반을 가건, 저멀리 출퇴근에 삼십분이 넘게 걸리는 문산이나 단성, 원지로 가건 어디를
가도 데릴러 오는 수영씨가 막걸리와 소주를 한 병씩 사고 오후 서너시에 점심겸 저녁을 먹고 배가 고픈 나를 위해 고추
전도 굽고, 라면도 끓여서 술상을 봐왔다. 사실 그와 함께 있으면 시를 써야할 까닭이 없다. 늘 내게 시를 쓰게 하는
감정은 충족이나 안정감이 아니라 격렬한 결핍과 불안이였던 것 같다. 그는 씻기 싫어하는 나의 머리를 감겨주고 목욕을
시켜주고 발가락 사이에 목욕 타월을 넣어서 발을 씻겨준다.
그와 내가 함께 살기 시작한 집은 시골도 도시도 아닌 동네의 산밑에 지은 스레이트 집이다.
천정에는 고양이 일가족이 사는지 목욕을 하거나 잠을 자려고 누우면 그들의 토닥거리는 삶의 소음들이 들려온다.
집 주인 아저씨가 놓자고 한 쥐약을 놓지 못하게 한 일은 정말 잘한 일 같다. 회초밥 집 일을 마치고 온 터라 비닐 봉지에
고양이들의 밥을 잔뜩 담아와서 장독대에 놓인 그릇에 담아 주었더니 샤워를 끝내기도 전에 다 먹어 치웠다.
나는 어쩐 까닭인지 지구에 사는 모든 동물에게 인간인 사실을 미안하게 여긴다. 그들이 집과 동굴과 식량과 새끼들과
오늘과 내일을 빼앗긴 것은 모두 사람 때문이라는 자책감이 든다. 동물을 식량으로 여기지 않기 위해 노력하지만 고기가
된 동물은 늘 내 식욕을 돋구기만 한다. 동물을 먹지 않겠다는 결심은 늘 동물을 먹고 배가 부를 때 하게 되는데
뱃속에서 이전에 먹은 동물이 다 사라지면 그 공복만큼 동물에 대한 식욕도 늘어나서 나의 식탐에 나는 절망한다.
어쨌거나 수영씨는 내가 동물을 먹거나 식물을 먹거나 자상하게 내 허기를 몰아내는 일을 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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