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마을에서 보면 평리길은 그리 가까운 길이 아니다.
적어도 초등 2,3학년 짜리가 걸어 가기엔 좀 부치는 길이다. 할아버지의 여동생이 거기 사셔서
왕고모님집이라고 불리었는 데 유년에는 별의미도 모르고 오리나 되는 길을 참 열심히 다녔다.
마침 왕고종 4촌형들이 중3 고3 이렇게 있어서 밤이 늦도록 새로운 정보와 문화에 대한 이야기
로 호롱불에 콧구멍이 새카맣도록 밤을 세웠다.
밤이 이윽하면 먹을거리가 궁해진다. 무우를 깎아 먹기도 하고 덜 익은 홍시를 먹다가 떫어서
뱉기도 하고 고구마를 깎아 먹다가 입이 싱거워 지면 궁리는 더욱 세밀해 진다. 자정이 넘어가
면 사방이 쥐 죽은 듯 고요하고 초가집 처마 속에 둥지를 튼 참새사냥이 일감으로 떠오른다.
형이 호야불을 들고 앞서면 동생이 사다리를 잽싸게 찾아 세우고 나는 이리저리 두 형의 그림자
만 따라다닌다. 호야불을 든 형이 살그머니 처마 속 둥지에 손을 넣으면 단잠에 빠져 있던 참새
들이 순순히 손아귀에 잡혀 나온다. 자루에 넣을 때 까지 그 긴장이란 고요보다 더 적막하여
심장이 터질 지경이다. 금방 자루는 파닥이는 참새들로 들썩이고 만면의 미소를 지으며 정지를
향하고, 부엌에 앉아 불씨를 일궈 구워 낸 참새구이, 그 고소함이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허기진 아이들의 뱃속이 육미로 아릿할 때 달도 서산으로 기우는 새벽이 온다.
아이들이 기척도 없이 진행된 일사분란한 완전범죄는 쥐도 새도 몰랐다.
이튿날 밥상머리에 앉으면 입술이 새까만 아이들을 보고 어른들은 그져 빙그레 미소만 띄울뿐
가타부타 말씀들이 없으셨고 특히 구순이 넘은 왕고모할머님은 밤사이 일어난 사건을 꿰차고나
있는듯이 너무나 대견해 하시고 그렇게 어린 고종손의 손목을 잡고 즐거워 하셨다. 늘 웃음이
얼굴에 미소처럼 자글해 있고 작은 것도 큰 감동으로 손자의 얼굴을 부비며 즐거워 하셨다.
내 기억에는 초등 6학년 때까지도 왕고모 할머니가 살아계셨던 걸로 남아 있다. 겨울밤이 깊어질
수록 그 해 겨울밤의 추억은 더욱 선명해지고 문천강 비니루 스케이트가 꿈처럼 미끄러져 간다.
소문엔 그 때 고3이었던 창수형이 고인이 됐고 중3이었던 봉수형도 술 때문에 세상을 하직했다는
소문이다. 건강이 남달라서 참 오래오래 살 줄 알았는데 허무하다.요즘에야 남남처럼 얼굴도 모르고
살 촌수이지만 그 때는 5촌 6촌까지는 다 형제처럼 가족처럼 살았다. 많이 비틀어진 세상이 되었다.
통일전에서 은행잎 자욱히 뒹구는 평리길을 늘 자동차로 지나 다닌다. 60년도 넘은 그 해 겨울밤이
생각나서 미소를 지며 그 길을 지나간다.
겨울비 촉촉한 포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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