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에서 웰 다잉(Well dying)의 선구자는 미국의 경제학자이자 사회 운동가였던 스콧 니어링 (Scott Nearing, 1883~1983)이다.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의 부인 헬렌 니어링(Helen Nearing, 1904~1995)은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에서 남편의 유언을 전했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이 오면 나는 자연스럽게 죽게 되기를 원한다. 나는 병원이 아니고 집에 있기를 바란다. 어떤 의사도 곁에 없기를 바란다.
의학은 삶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이며, 죽음에 대해서도 무지하다고 생각한다. 가능하면 나는 죽음이 가까이 왔을 무렵 지붕이 없는 열린 곳에 있기를 바란다. 나는 곡기를 끊고 단식하다 죽고 싶다. 나는 죽는 과정을 예민하게 느끼고 싶다. 그러므로 내 몸에 어떤 진정제나 진통제, 마취제도 투약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회한에 젖거나 슬픔에 잠길 까닭이 없다.
임종 자리를 함께하는 사람은 조용함, 위엄, 이해와 감사, 기쁨과 평화로움을 갖춰 죽음의 경험을 함께 나누기 원한다. 죽음은 광대한 우주적인 경험의 영역이다. 나는 힘이 닿는 한 열심히, 충만하게 살아왔으므로 기쁘고 희망에 차서 새로운 길을 간다. 죽음은 옮겨감이나 깨어남에 불과하다. 나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존중 받으면서 가고 싶다."
그는 필요 이상의 치료를 거부했다. 의사 친구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 ‘다달이 소변을 받아다 자네에게 갖다 주고 필요한 처방이나 치료를 받기를 권하지만, 그렇게 한다면 내 삶의 남은 기간을 의사의 감독 아래 수명을 늘리려고 애쓰는 셈이 되는 걸 세. 올바른 식사와 절제된 생활로도 잘 지낼 수 없다면, 될 수 있는 한 빨리 죽는 것이 나와 내가 속해 있는 사회를 위해서 좋을 것이라 생각하네’. 그는 몸에 이상이 생기자 스스로 곡기를 끊고 딱 100세가 되던 해 세상을 떠났다. 그는 시신에 작업복을 입힌 후 침낭 속에 넣어 화장해 달라고 부탁했다. 남은 재는 자신이 살던 집 근처의 나무 밑에 뿌려 달라는 말을 남긴다.
나도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존중 받으면서 가고 싶다.
우리나라에서는 법정(1932~2010) 스님이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때가 되면 생을 마감한다"며 연명치료를 거부했다. 그는 소탈하게 피안(彼岸)으로 갔다. 스님은 “관을 짜지 말고 승복이면 족하니 수의를 입히지도 말고, 삼일장도 하지 말고 지체 없이 화장하라”고 했다. 그는 또 “사리를 찾지 말고, 탑도 비도 세우지 말라. 내 것이라고 하는 것이 남아 있다면 모두 맑고 향기로운 사회 구현 활동에 사용해 달라. 일절 장례의식을 행하지 말고 관과 수의를 마련하지 말라”고 했다.
우리가 죽음을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의미는 바로 삶이 진짜 귀중하다는 가치를 깨우쳐 주는 것이다. 삶은 우리가 '드물게' 누릴 수 있는 자원이다. 그러나 더욱 더 다정한 언어로 채워야 하는 귀한 시간이다. 죽음이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생각애서 얻는 가장 큰 의미는 우리에게 두 번째 기회는 없다는 깨달음일 것이다. 자기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낭비하고 있지는 않는가? 멍청한 일에 기웃거리고, 세상이 주입한 생각에 휩쓸리면서 말이다. 죽음을 대면하는 일은 지금 나는 가장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는가, 정말로 나의 유한한 시간을 쓸 만한 일인가를 스스로 묻게 한다.
죽음이 없다면 삶은 무의미 해진다. 죽음이 받쳐주고 있기 때문에 삶이 빛날 수 있는 거다. 몇 백년 살아야 한다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살 만큼 살았으면 교체되어야 한다. 웰 다잉(Well-dying) 하면 그리스 로마 신화 속의 영웅 헤라클레스 (Ήρακλης, Hercules)가 '맞이하는' 죽음이 소환된다. 그가 죽게 된 배경은 다음과 같다.
헤라클레스의 아내 데이라네이나는 트라키스에 도착하는 즉시 '네소스의 피'가 묻은 옷자락을 잘라 청동 솥에다 보관해 두었다. "의심이 마음의 젤로스(질투)를 튀겨낸다"는 말이 있다. 반면, 헤라클레스는 활쏘기 시합의 상으로 내걸렸던 아름다운 이올레를 잊지 못하고, 오이칼리아를 쳐들어가 활쏘기 시합에서 패배했음에도 불구하고 승리자의 상품으로 내걸렸던 이올레를 넘겨주기를 거절한 에우리토스를 격파하고, 전리품으로 공주 이올레를 데리고 오다 가, 제우스 신전에 들러 제사를 올리게 된다. 그 때 헤라클레스는 아내 데이아네이라에게 자신의 예복을 부탁한다. 사자 가죽을 걸치고 제사를 올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헤라클레스의 아내는 이올레를 질투하여, ‘네소스의 피’가 묻은 옷 조각을 헤라클레스의 예복 안에 꿰매어 넣었다.
헤라클레스는 아내가 보낸 그 예복을 입자마자, 정체모를 고통을 느꼈다. 고통이 어찌나 격심한지 난생처음으로 신전 바닥에 쓰러지기까지 했다. 제우스 신관들은 이 영웅의 고통을 함께 아파하면서 그를 배에 태워 트라키스로 모셨다. 헤라클레스가 트라키스로 돌아오자, 아내 데이아네이라는 자신이 오해를 하여 남편을 죽게 한 양심의 가책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한다.
그러나 헤라클레스는 그냥 죽음을 기다리지 않았다. 자신의 죽음을 맞이하였다.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웰-다잉(Well-dying)의 모습을 보여준다. 헤라클레스는 장작더미에 올라 불타 죽는 것으로 '떠밀리는' 죽음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죽음을 준비한다. 즉, 산 채로 자신을 화장시키는 것이다.
헤라클레스는 장작을 쌓게 하고는 몸소 직접 그 위로 올라가서 이렇게 말한다. “이 장작 더미 밑에는 내가 쌓아놓은 불쏘시개가 있다. 그러나 내가 그대들에게 불질러줄 것을 청하여도, 그대들은 불을 지르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나를 모르는 사람이 이곳을 지나게 되면, 내가 쓰던 이 활을 주고, 그 대가로 불을 질러달라고 부탁해라.” 아들 힐라스에게는 이올레를 아내로 삼으라고 유언했다. 한 이방인이 나타나자, 신관들이 헤라클레스의 뜻을 전하자, 헤라클레스가 누구인지 모르니까, 별 어려움 없이 불방망이를 장작더미 밑에 던지고, 헤라클레스의 활을 받아가지고 사라졌다.
올림포스의 신들은 헤라클레스가 땅 위의 삶을 마감하는 광경을 슬프게 내려다 보고 있었다. 그 때, 제우스는 헤라클레스를 올림포스로 불러들인다. 그래서 헤라클레스는 반드시 죽어야 하는 인간의 몸에서 태어났지만, 죽지 않는 신이 되어 올림포스로 올라 간 영웅이 된다. 그리고 헤라와도 화해하고, 헤라의 딸 헤베와 결혼을 허락한다. 독일 시인 쉴러의 시 한 대목을 인용한다.
(..)
지상에서 어둡고 무거운 고통을 죽음에다 버리고,
천상의 빛을 향하여 비상했다.
(...)
우리가 경험하는 죽음은 크게 다음과 같이 세 가지이다.
- 자신에 대한 통제력을 잃는 순간
- 육체가 실제로 소멸하는 순간
- 어느 누구도 더 이상 우리 자신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 순간
세 번째 경험하는 죽음을 위해 최근에 'e-죽음 산업'이 생겨났다. 고인이 인간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는 순간을 막기 위해, 고인의 개인적 데이터를 수집하여, 그가 사라진 뒤에 그를 대신하는 아바타를 만든다. 'e-죽음 산업'의 등장은 인간의 데이터를 실리콘 속에 영구히 보존함으로써 인간성의 일부를 구해낼 방법을 찾고 있다. '특이점' 신봉자들은 인류 모두가 나중에 클라우드 속에서 살 것이라고 민든다. '특이점' 이야기는 레이 커즈와일 (Raymond "Ray" Kurzweil)이 한 이야기이다. 인간이 터덜터덜 걸어가면서 거의 조금도 발전하지 못하는 동안 컴퓨터는 기하급수적인 속도로 발전한다는 거다. 그런 성장은 거의 틀림없이 '특이점'을 요구한다. 즉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인간을 밀고 당기면서 더 높은 존재 수준으로 끌어올릴 가까운 장래의 어느 시점 말이다. 그 '특이점'이 오면, 그러니까 우리를 지금의 우리로 만든 거대한 고립인 죽음이 살해될 수 있다는 거다.
그러나 남겨진 사람들이 가진 고인에 대한 기억은 컴퓨터가 제공하는 소위 추억이라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컴퓨터는 기억 능력이 전혀 없다. 그것이 할 수 있는 것은 단지 불러오는 것 뿐이다. 실제 우리의 뇌가 하는 기억은 나뉘고 변형된다. 우리는 지금 알고 있는 것에 비추어 과거를 편집한다. 하지만 우리가 그것을 바꾸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기억은 정지된 파일이 아니다. 우리는 사람들을 그들 자체의 모습으로 기억하지 않는다. 우리들 나름의 방식으로 그들을 기억한다. 이 이야기를 하다 보니, 박찬일 시인의 詩가 생각난다.
죽음에 대한 한 연구/박찬일
죽은 지 1년이 되었는데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죽은 지 2년이 되었는데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죽은 지 3년이 되었는데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죽은 지 4년이 되었는데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죽은 지 5년이 되었는데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죽은 지 6년이 되었는데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죽은 지 7년이 되었는데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죽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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