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자존감이 상처를 받는가
2000년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아버지와 어머니를 토막살해한 존속살해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이 온 사회를 들끓게 한 이유는 살해범 이은석이 막가파식 깡패가 아니었고 부모가 모두 우리 사회의 엘리트였기 때문이다. 이은석은 서울의 명문 사립대 K대학 재학 중이었고 부모는 모두 최고 교육을 받은 인텔리였다.왜 그런 양가집의 우수한 지능을 가진 이은석이 막가파도 하지 못하는 천인공노할 패륜범죄를 저질렀는가? 아주 아이러니한 것은 이은석이 지능지수 130이 넘는 우수한 지적 능력을 가졌으면서도, 그는 사건을 저지르기 몇 달 전부터는 자기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한 존재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심한 무력감, 의욕상실을 겪고 있었다.그러면 이은석이 왜 열등감에 휩싸이게 되었는가?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부모가 이은석의 기를 꺾는 식으로 양육했기 때문이다. 이은석이 쓴 일기에 보면 그의 아버지는 이은석의 키가 작은 것을 보고 조롱조로 다음과 같이 말하곤 했다. “너는 키가 작아 사회에 나가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그러니까 열심히 공부해 판사나 의사가 되어야 한다.”물론 아버지는 이은석의 키가 작은 것을 조롱하려고 이 말을 한 것은 아니다. 아들이 더 열심히 공부하도록 자극하려 이렇게 말했을 따름이다.그러나 아버지의 이 말은 그의 가슴에 못을 박았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이은석은 중학교 1학년 때부터 3일에 한 번씩 수음을 했다. 그는 성적 욕구를 자제하지 못하는 자신이 미웠다. 또 그는 자신이 키가 작은 것이 잦은 수음 때문이라고 확신했다. 그래서 키가 작은 것에 대해 스스로 저주를 퍼부었다. 즉 그가 키에 불만을 갖는 것은 자신이 억제하지 못하는 수음을 비난하는 것 때문에 생긴 것이다.이렇게 이은석이 자기 키에 대해 죄책감을 갖고 있는데 그 사정을 모르는 아버지가 그를 조롱했던 것이다.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어야 한다. “은석아, 키가 작다고 절대 기 죽지 마라. 역사상 위대한 인물은 키가 다 작았느니라. 나폴레옹이 그랬고 박정희 대통령이 그랬다.”
왕따와 열등감
이은석은 학교 성적이 우수해 전교 10등 밖으로 밀려난 적이 없었지만 늘 열등감에 싸여 있었다. 그 근본적인 이유는 그가 친구로부터 왕따를 당했기 때문이다. 친구들은 그가 공부를 썩 잘 하기 때문에 질투심으로 그리고 장난삼아 그를 가지고 놀았다. 그중에 아주 못된 친구가 있었다. 그는 은석이가 중학교 1학년 때 자기와 키, 몸무게가 엇비슷했는데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보니 자기는 키가 180센티미터, 체중이 70킬로그램이나 나가는데 은석은 중학교 1학년 때나 고등학생 때나 차이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교실에서 은석을 어깨에 둘러메고 원숭이를 빌려 줄 터이니(이은석을 원숭이로 부름) 돈을 내고 사가라고 떠들고 다녔다. 이은석이 졸업하는 날 친구들이 같이 사진을 찍자고 불렀지만 그는 단걸음에 교실 밖으로 달려 나갔다. 그리고 만세를 불렀다. 이제 지옥과 같은 왕따에서 자유를 얻었기 때문이다.이은석이 명문대에 입학하여 교회 처녀들로부터 호감을 사고 그와 사귀려는 여학생들이 줄을 이었다. 일생에서 처음으로 그는 행복감을 만끽했다. 그러나 연애가 순조롭지 못했다. 문제는 어려서부터 부모에게 학대와 조롱을 받으며 자라왔기 때문에 누가 자기를 사랑한다는 것이 좋으면서도 불편하고 더구나 남을 배려하는 것이 쉽지가 않았다. 초등학교 때 여왕으로 불리던 여자 친구와 데이트를 하면서 그는 등에 찬 땀을 흘렸다. 그는 어떻게 대화를 이끌어야 할지를 그리고 어떻게 다음 데이트를 청해야 할지 몰라 애먹었다. 그녀가 혹 자기의 겨드랑이 땀 냄새를 맡을까봐 전전긍긍해야만 했다.그의 정신이 황폐하게 된 것은 군대에서도 왕따를 당했기 때문이다. 그는 군대에서 졸병이 잘못한 경우 따끔하게 야단치지 못하고 얼버무렸다. 그의 성격을 간파한 졸병들이 그를 갖고 놀기 시작했다. 그의 사물함은 깨지고 물건들은 도난당했다. 졸병, 동료로부터 왕따당한 그는 혼자 외롭게 지냈다. 일과가 끝나거나 일요일에 그가 늘 찾는 곳은 군대의 도서실뿐이었다.제대한 후 이은석의 학업생활 역시 비정상적이었다. 그는 자기 학교 정문을 통과하지 못했다. 친구를 만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는 일부러 몇 정류장 더 지나쳐 뒷문으로 들어갔다. 강의가 끝나면 그가 찾는 곳은 비디오방이었고 그의 유일한 낙은 영화감상이었다. 그는 한해에 무려 700개에 달하는 영화를 혼자서 감상했다.
가족의 사랑
물론 이은석의 예는 아주 극단적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정도의 차이가 있으되 자존감은 누구나 손쉽게 손상되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자존감은 특히 사랑하는 가족으로부터 상처받기가 아주 쉽다. 부모는 자식들을 비교하기 마련이다. 큰아들이 공부를 잘하는데 막내가 공부를 못하면 이런 식으로 말한다. “이 녀석아, 너의 형 반만 닮아라. 너는 왜 그렇게 칠칠치 못하니!”막내는 그렇지 않아도 형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데 부모가 박대를 하니 더 기가 죽는다. 죽고 싶은 마음뿐이다.물론 자식들만 열등감을 갖는 것은 아니다. 부부가 서로 자존감을 할퀼 수 있다. 우리의 아파트 문화에서 남편들은 흔히 비교의 대상이 된다. 아내가 앞집, 옆집을 가 보면, 그 집 남편들은 돈을 잘 벌어와 부인이 신나게 돈을 쓴다. 가구도 이태리제 고급가구만 들여 놓는다. 기가 죽은 아내가 남편에게 화풀이한다. “당신은 맨날 잘난 척만 하는데 내가 보건대 별 볼일 없는 남편이야. 옆집 사람은 부인 생일이라고 3백만 원을 주고 사고 싶은 것 사라고 그랬대. 당신은 30만 원이라도 내놓을 수 있어?”남편은 할 말이 없다. 옆집 남자가 미울 뿐이다. 아파트에 사는 것이 지겨울 따름이다.지금은 우리 경제가 아주 어려운 때이다. 그래서 직장을 얻지 못한 대졸자가 쏟아져 나오고, 50세가 되기 전에 직장에서 떨려나오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그러다 보니 한창 물불 안 가리고 열심히 뛰어야 할 인재들이 풀이 죽어 있다. 열등감에 싸인 사람을 회생하게 하는 사람은 바로 가족이다. 아내가, 부모가 풀 죽은 남편, 자식을 사랑으로 감싸 안으면 그의 자존감은 생기를 되찾는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웅지를 펼친다. 재능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자신감이고 자존감이다. 자존감은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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