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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 모음

너무 애쓰지 않기로 하자

by 은빛지붕 2025. 5. 24.

글쓰기는 내가 나를 온전히 믿는 연습과 같다. 일단 한 문장만 써 보면 된다. 그다음 문장부터는 술술까지는 아니어도 뭐라도 써진다. 잘 쓸 걱정도 못난 글이 나올 걱정도 굳이 할 필요가 없다. 결국 써내게 될 나를 믿으면 되는 것이다.

한 편의 글을 써내기까지 장애물들이 여럿 존재한다. 필력에 대한 두려움, 소재의 고갈, 내 글을 바라볼 타인의 시선 등등. 이런 생각들은 글을 써낼 용기를 앗아가곤 한다.

글을 써보기 시작한 지 어느덧 만 5년이 되었다. 직장 생활로 한창 지쳐있던 시절. SNS을 보는데 글쓰기 수업 광고에 눈이 갔다. 원래 글쓰기에 1도 관심이 없던 나였는데, 그땐 무엇에 홀린 듯 신청하고 말았다.

 


그리고 현재. 그때 우연히 시작한 글쓰기가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이다. 물론, 그동안 매일 글을 쓴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완전히 손을 놓지 않으려 힘쓴 덕분에 간신히 이어오고 있다. 글쓰기를 취미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는 된 것 같다.

 

햇수로 여러 해 되었지만 여전히 쓰는 것은 어렵다. 아니 쓰면 쓸수록 더 어려워진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일 듯하다. 나의 마음을 가장 어렵게 만드는 부분은 바로 소재의 고갈이다. 주로 일상에서 글감을 찾아 쓰는 편인데 어지간한 이야기는 다 써낸 것 같기 때문이다.

도무지 쓸거리가 떠오르지 않을 때 슬럼프가 찾아오곤 한다. 글감이 떠오르지 않을 때가 가장 괴롭다. 나의 한계를 절실히 느끼게 된다. 물론 슬럼프라는 게 노력과 시간으로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기는 하다. 그리고 그 과정 가운데 조금씩 성장하게 된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얼마 전, 다시 한번 슬럼프가 찾아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제법 '쎈놈'이었다. 한 문장도 꺼내어 쓰지 못할 만큼 강하게 나를 압박했다. 예전에 겪었던 것들보다 유독 더 힘들게 느껴졌다. 아무리 쥐어짜 내려고 해도 소재의 부재는 나를 더욱더 쓰기 힘든 삶으로 밀어 넣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즘 나의 하루는 지나치게 단순하다. 평일과 휴일의 개념은 흐릿하고, 사람들과의 만남도 잦지 않다. 변화가 없는 삶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소재는 무척 한정적이었다. 매일 똑같이 흘러가는 하루.  어지간한 이야기들은 쓸 만큼 쓴 것 같다.

늦은 오전 일어나 요가를 하고, 집안일을 한다. 카페에 나가 커피를 마신 뒤 다시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맞는다. 그동안 내가 써낸 일상의 이야기들은 대부분 이 범주 안에 속하고 있다. 더 쓸게 없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다. 일주일에 한 번 병원 가서 상담을 받기는 하지만 어제와 오늘이 크게 다르지 않고, 다가올 내일도 오늘과 같을 가능성이 99.9%다.

머리 싸매고 억지로 글감을 짜내서 써본 적도 있었다. 나름의 노력을 해보았으나 기시감이 드는 글만 써질 뿐. 그 말이 그 말이었고, 그 글이 그 글이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질문 하나가 떠올랐다. 아무리 변화가 적은 삶이라지만 왜 이렇게 삶의 이야기가 잘 안 써지는 걸까?

정확히 5일 전이다. 반갑지 않은 손님 슬럼프는 아주 우연한 기회로 해소되기 시작했다. 어김없이 늦은 오전에 눈을 떴던 그날. 숨 한번 크게 들이켜고 평소대로 요가 매트를 펼친 날이었다.

요가 매트 위에서 들린 음성... 내가 왜 글 쓰는지 다시 생각해봤다

매트 위에서 가볍게 스트레칭 후 심호흡을 하면서 잠시 명상을 했다. 불현듯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건네왔다.

"너무 애쓰지 마요."


선명하고 또렷한 음성. 나의 내면 깊은 곳에서 들려온 소리인지 명상을 위해 틀어 놓은 영상 속 내레이션인지 헷갈렸다. 예전에 한창 요가원을 다닐 때 강사님이 자주 해주었던 말 같기도 했다.

분명한 건, 이 한마디가 내게 용기를 주었다는 점이다. 애쓰지 않는다는 게 무엇일까. 다시 깊게 호흡하면서 곱씹어 보았다. 나에게는 이 말이 '의식하지 말라'는 뜻으로 다가왔다.

의식하지 말라? 난해하고 추상적인 말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무의식의 나를 믿어보라는 말처럼 들려왔다.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동안에도 내면 깊은 곳 어디선가 의식적으로 성찰하고 있을 '내 안의 나'를 믿으라는 말로 다가왔다.

 


그제야 글쓰기가 그동안 상당 부분 무의식의 도움을 받고 있었다는 사실을 새삼 자각하게 됐다. 나의 의식이라 부를 수 있을만한 것들. 얕은 지식이나 경험, 하물며 쓰고자 하는 노력과 의지까지. 글을 쓰는 행위란 이런 것들로만 채워지는 것이 아님을 잊고 있었다.

그렇다. 적어도 내가 쓰는 글들은 나도 인지 못하는 무의식의 영역에서 도움을 얻을 때가 더 많았다. 이미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고 여겼던 부분들이 영감처럼 떠올라 주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과거 읽었던 어떤 책의 내용, 언젠가 보았던 영화 속 대사, 어딘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특정 장소에서 나눴던 누군가와의 대화까지.

평상시에는 기억 저편에 퍼져있어서 의식조차 못했던 것들이 글을 쓰고자 마음을 먹는 순간 갑자기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경험. 억지로 떠올린 것도 아닌데 생각의 파편들이 순식간에 조합되더니 단어나 문장의 형태가 되어 선물처럼 내게 찾아오는 것이다. 누군가의 표현처럼 글을 쓰는 것은 분명 나인데, 글이 나를 써내는 것 같은 그런 감각 말이다.

아주 가끔이지만 어떤 때는 영적인 경험처럼 다가오기도 했다. 전에 썼던 글들은 주로 그렇게 쓰인 것들이었다. 겉으로만 보면 무척 서툴고 어색한 문장들이지만 오히려 지금의 내 글에는 담겨 있지 않은 통찰들이 담겨 있었다.

그러고 보니 글은 쓴다는 건, 능동보다는 수동에 가까웠다. 시작은 내가 써도, 과정은 쓰다보면 쓰여지는 것이었다. 생각해 보니 직장 생활 유무만 제외하면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직장을 다닐 때도 특별한 삶의 이벤트가 넘쳐나지는 않았으니까.

일상을 어떻게든 새롭게 바라보려는 나. 일상을 사는이야기와 기사로, 글로 옮겨보려 애쓰는 나, 그리고 그러한 날 돕는 무의식까지 힘을 합쳐야 글을 써낼 수 있다. 너무 중요한 걸 잊고 살았다. 글을 쓰는 일이 나에게는 무의식 속 솔직하고 진솔한 내 자아와 만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일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오로지 써내기 위해 애쓰는 삶, 쓰기 위해 사는 삶. 그런 삶은 최대한 살지 않으려고 한다. 그런데 이 모순적인 말이 나에게는 다시 쓸 수 있다는 믿음을 주고 있다. 무의식에 의식을 맡기자. 누구보다 나를 잘 알고 있는 '내 안의 너'에게 나를 보내야 한다. 삶의 이야기를 가장 많이 간직하고 있는 내 안의 나를 믿어보자.

글쓰기를 더 이상 부담이나 해야 할 숙제처럼 여기지 않으려 한다. 오늘, 여기에서 숨 쉬고 있는 나를 의식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의식하지 말아야겠다.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 내가 나를 믿어준다면 전에 알지 못했던 새로운 감각들은 끊임없이 깨어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나를 온전히 믿는 연습을 계속 이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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