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에 채색되는 파아란 물감은
빛나는 모든 것 위에로 번지어
놀란 듯한 창(窓)문 가에는
어느덧 봄이 걸렸습니다
부드러운 햇빛의 반사(反射)가
매끄러운 나무결을 따라 흐르고
기다리는 땅 위에선 야릇한 머릿털이
풀잎처럼 솟습니다
지난 겨울,
내 가슴 속 풍성하게 무르익은
새로운
침묵(沈默)
은
아마도 스스로의 사랑에 대한 증오인 듯 합니다
이제, 당신을 조금 다른 각도(角度)로 그려 보면서
세상이 봄인 동안에 졸렬했던 무언(無言)을
단순하고도 뜨거웁게 지우려 합니다
노오란 인동(忍冬)이 개나리 꽃을 피우 듯
하얗게 지워진
고독(孤獨)
을 벚꽃으로 피우렵니다
그러다, 바람이 몹시 부는 날
눈부시게 떨어져
소박한 영혼들이 손잡고 거닐었던
오솔길에
고요한 입맞춤을 하려 합니다
나 이제, 모든 소리 잠재웠던
설명하기 어려운 겨울날의 슬픈 이유를
굽이치는 봄바람에 실어 그대에게 보내오니,
떠가는 하얀 구름 읽으시거든
부디
소식 주소서
시 : 안희선 ' 봄에 쓰는 편지 '
환과고독 (鰥寡孤獨)
맹자 양혜왕 하편 (孟子 梁惠王 下篇)에 나오는 맗인데,
누구에게 의지할 곳 없이 외로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일컽는 말로서,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늙어서 아내가 없는 것이 환(鰥)
늙어서 남편이 없는 것이 과(寡)
어려서 부모 없는 것이 고(孤)
늙어서 자식이 없는 것이 독(獨)입니다.
우리는 흔히 고독하다란 말을 자주 쓰지만,
글자마다 본 뜻은 이와 같이 다르며,
단순한 외로움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고독이라는 말을 그저 홀로 있다는 의미의
시어(詩語)정도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혼자 있는 것 자체는 아무것도 아니다.
홀로 있는 것은 고독(Solitude)의 토대가 될 수도 있고
외로움(Loneliness)의 토대가 될 수도 있다.
고독은, 외로움과는 정반대 되는 평온한 상태이다.
빈방에 앉아서 주변이 텅 비었음을 인식하는 게 외로움이다.
이것은 격리된 상태이다.
고독은 나를 둘러싼 공간과 내가 하나가 되는 것이다.
즉 '하나된' 상태이다.
외로움은 작고, 고독은 크다.
외로움은 자기 주변으로 좁혀 들어오고,
고독은 무한을 향해 뻗어나간다.
외로움은 언어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 내면의 대화이다.
하지만 고독은 영원이라는 거대한 침묵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사람들은 홀로 있기를 겁낸다. 외로움만 알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으로부터 세상을 이해하기 시작하고,
자신이 이해의 중심에 서 있을 때 편안해 한다.
고독은 자신을 내 사고의 중심에서 빼내어
삶의 다른 부분을 온전히 경험할 수 있게 한다.
그것은 이해의 초점을 자기에게 두지 않고
자기를 우주의 흐름에 맡기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신비롭고 추상적으로 들리겠지만
우주에는 개인의 생사를 초월한 영원의 소리 같은 게 있다.
시끄럽고 번잡한 일상 생활 속에서는 이 소리를 듣기 어렵다.
모든 것을 초월해서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현실과
화해하게 해주는 것이 바로 이 소리와의 하나됨이다.
이것은 우리를 더 큰 것의 일부로 만들어준다.
고독에 잠기면 이 위대한 영원의 소리의 일부가 될 수 있다.
Loneliness and Solitude
'on Loneliness and Solitude' Page 62~67 by Kent Nerburn
<단순하게 사는 법> 공경희 옮김
Kent Nerburn이 말했듯이,
고독과 외로움에는 그 분명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요약해서 말하면,
외로움은 언어에 뿌리를 내리고 있고,
고독은 영원이라는 거대한 침묵에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이처럼 고독과 침묵은 상관관계에 있고요.
침묵에 관해 생각해볼 만한 이바구 한자락 더 곁들입니다.
한 평생을 침묵(沈默)으로 일관한 도조라는 선승이 중국에 있었습니다.
그는 80평생을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으나,
어느날 그를 따르던 수많은 제자들과 수행인들을 한자리에 불러놓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입을 열었습니다.
" 오늘 저녁 해질 무렵에 나는 죽게될 것이다."
그러자 한 제자가 물었습니다.
" 그렇게 말씀을 하실 수도 있었으면서 한 평생을 침묵으로 보내셨습니까?"
도조는 빙그레 웃으며 답했습니다.
" 죽음 외의 모든 것은 불확실하다. 오직 죽음만이 확실할 뿐이다.
그리고 나는 확실한 것만 말하길 원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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