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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 모음

자세를 고쳐 앉으며

by 은빛지붕 2023. 6. 25.

 

 

 

 차(茶)로 유명한 전남 보성에서 옹기를 만드는 친구가 있다. 수 대(代)를 이어오면서 오직 옹기만 만들었기 때문에

그의 선친과 숙부는 함께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될 만큼 정말 옹기를 잘 만드는 집안이다. 요즈음도 인사동이나

경복궁의 기념품점에 가면 그의 옹기들이 한창 잘 나가고 있다. 그의 설명으로는 옹기는 플라스틱이나 스테인리스

그릇과는 달리 숨을 쉬기 때문에 선조들이 김치나 된장, 간장 등 발효식품을 만드는 데는 이 옹기가 아니면 안 되었고

그래서 이 옹기야말로 우리 민족의 피와 살을 담아 온 그릇이라는 것이다. 그는 한결같이 현대의 화공약품으로 된

유약을 거들떠보지 않고 집에서 직접 콩깍지를 태워 그 잿물로 유약을 삼는 전통 방식을 고집한다.

그의 집에 가면 옹기도 정말 가지가지이다. 밥상에 오르는 간장종지 같은 작은 그릇부터 주발이나 막사발, 된장찌개

끓이는 뚝배기, 김치 항아리 등 생활도자기로 없는 것이 없다. 그가 만든 양념통은 주먹 만한 그릇 네 개를 사각으로

이어 붙여 전체를 한꺼번에 들 수 있는 손잡이를 달고 각 그릇에 뚜껑을 한 것으로 수년 전 전국 도자기 전에서 큰 상을 

받았다고 들었다. 어떤 때는 그 집 마당에 초벌 구웠거나 완성된 제품들이 수백 개씩 줄지어 쌓여 있다. 큰 그릇 작은

그릇이 남도의 햇빛과 비바람에 그슬린 그곳 사람들의 얼굴색과 별로 다를 바 없다. 마당과 처마 밑에 가지런히 쌓여

있는 그릇들을 보면 삼대나 사대가 모여 사는 그곳 어느 대가족 식구들처럼 오순도순 속삭이는 소리가 들릴 듯도 하다.

이렇게 마당에 가지런히 정리해 놓은 것 말고도 그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마당 앞을 가리고 있는 대밭 속

수두룩이 버려져 있다.


질그릇도 자세가 바르지 않으면 물을 제대로 담을 수 없어
어느 핸가 태풍이 불고 홍수가 났던 여름에 이 집에 들른 적이 있다. 옹기야 홍수에 떠내려가지만 않으면 비가 왔다고

해도 아무 피해가 없는 게 옹기장사의 장점이라고 그 친구는 껄껄 웃었다. 비가 갠 하늘에 조금씩 남은 구름이 한가로이

떠가는 무척 시원한 오후에 그 집에는 수백 개의 하늘이 마당에 널려 있었다. 뚜껑이 없는 것에는 그릇 아귀까지 가득 

물이 고여 있었고 조금이라도 물이 고일 만한 그릇은 모조리 작고 둥근 하늘을 하나씩 안고 있었다. 가득 담긴 물속에

거꾸로 떠가는 구름을 보면서 문득 그릇도 서 있는 자세에 따라 물이 담기는 양이 다르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곳에 무수히 쌓인 그릇이지만 자세히 보면 거기 담긴 물의 모양은 하나도 같은 게 없다. 바닥이 고르지 않은 마당에

세워 놓은 그릇들이어서 약간씩은 기우뚱한 것들도 있고 뚜껑이 제대로 덮인 것이 있는가 하면 뒤집어 덮인 것도

있어아주 둥근 하늘이 있고, 약간은 기울어 조금은 원이 이지러진 것들도 있다. 더구나 대밭에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는 들은 말해 무엇하랴. 옆으로 누운 것, 아예 뒤집어진 것 등 물이 거의 담기지 않은 것들도 있다. 그러나 그중에

그야말로 조금도 비뚤어지지 않고 똑바로 서 있는 그릇에만 꼭대기까지 물이 가득 차 있는 것이다.

마당에 있는 질그릇 하나도 자세가 바르지 못하면 물이 제대로 담기지 않는다는 것이 그날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만병은 자세가 바르지 못한 데서 생겨난다
바른 자세를 가지라는 말은 어려서부터 정말 귀가 아프게 들어온 말이다.

그러나 컴퓨터가 생기고 텔레비전이 안방을 차지하고 여가의 대부분을 바르지 못한 자세로 텔레비전과 컴퓨터

앞에서 보내는 것이 습관이 된 현대인에게 여러 가지 질병이 생긴다는 것은 전문가가 아니라도 다 아는 상식일

이다. 고개를 앞으로 구부정하게 숙이고 하루 여덟, 아홉 시간씩 그리고 어떤 사람은 밤을 낮 삼아 날 새우는 줄

모르고 앉아서만 살면 호흡이 제대로 되며, 혈액순환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거기다 소화는 무슨 수로 잘 될 수

있겠는가? 런 자세와 그런 생활에 어떻게 활기 넘치는 건강이 담길 수 있겠는가? 그래서 생긴 말이지만 

“테헤란밸리 증후군”이라는 것이 있다. 아직은 젊은 이삼십 대에도 오랫동안 잘못된 자세로 컴퓨터 앞에 앉아

있어서 목과 어깨 통증, 만성피로, 눈의 피로, 긴장성 두통, 목 디스크, 팔이나 어깨 결림 등 온몸이 아프고 결리고

저린 증상이 나타나고, 나아가서는 신경성 위장 장애, 간장 장애, 우울증, 불면증까지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컴퓨터로 날이 새고 저무는 사람들에게 생기는 이런 병을“테헤란밸리 증후군”이라고 이름을 붙였을 것이다.

그래서 요새 한참 각광을 받는 것 중 하나로 자세의학이라는 것이 있다. 만병이 자세가 바르지 못한 데서 생겨나기

때문에 자세를 바르게 교정해 주면 질병의 대부분은 자연히 치료된다는 것이다.


자세의학 전문가인 김창규 박사는 바른 자세에 대해 이렇게 당부하고 있다.


􄤃서 있을 때는 가슴을 활짝 펴고 고개를 세우고 턱을 약간 들어라.
􄤃걸을 때는 물결치듯 리듬을 타고 십일 자로 사뿐사뿐 걸으라.
􄤃머리를 감을 때는 샤워기 쪽으로 등을 돌리고 고개를 뒤로 젖히고 샤워를 하라.
􄤃오랫동안 컴퓨터를 사용할 때는 상체를 세워서 앉도록 신경을 쓰고 틈틈이 몸을 뒤로 젖혀라.
􄤃잠잘 때는 목 베개를 베고 반듯하게 누워서 자라.
􄤃운전할 때는 등받이에 몸을 비스듬히 기댄 상태에서 목은 뒤로 젖혀 뒷머리를 목 받침대에 대고 운전하라.
􄤃물건을 들 때는 최대한 몸쪽으로 밀착시킨 뒤, 허벅지 근육의 힘으로 일어나고 이때 허리와 상체를 곧게 펴 주라.
􄤃운동할 때는 몸을 전후좌우 고르게 움직일 수 있는 종목을 택하라.
􄤃옷을 입을 때 넥타이는 가능하면 느슨하게 매고, 윗도리를 바지에 넣어 입으려면 목이 당기지 않게 조금 빼 주라.
􄤃가구를 고를 때도 자신의 건강상태나 체형에 따라 꼼꼼히 따져서 고르라.

 

 거실 벽이나 주방 냉장고 위에 붙여 놓고 한 가지라도 당장 실천해 볼 만한 충고이다. 그러면 건강은 곧 다시

항아리에 물이 고이듯 고이게 될 것이다. 기울어진 그릇에 물이 가득 고이지 않듯, 구부러지고 찌그러진 파이프로는

물이 원활하게 소통될 수 없듯, 잘못된 자세로 건강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바른 자세가 어디 옹기그릇이나 몸에만

닿는 이야기이겠는가?


매일 자세를 고쳐 앉는 노력이 있어야
작년 여름에 친구의 안내로 미국 요세미티 국립공원에 들른 적이 있다. 한편에는 울창한 수림이 있고, 그 반대편에는

풀 한포기 없는 바위 산이 끝도 보이지 않을 만큼 이어져 있었다. 특별히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었던 것이 삼나무였다.

나무 하나의 높이가 무려 100미터나 되고, 무게가 2천 톤이 넘는다는 것이다. 말이 그렇지 서 있는 나무가 100미터가 

된다는 것은 정말 끝이 가물가물한 것이고, 나무 밑둥에 구멍을 내고, 길을 낼 만큼 그렇게 큰 나무가 있다는 것이

정말 경이로운 일이었다. 천 년을 넘게 우뚝 서 있는 나무를 보면 마음까지 경건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떻게 삼나무가 그렇게 클 수가 있는가? 가장 중요한 이유로는 조금도 구부러지지 않고 하늘을 향해 수직으로

있기 때문이며 가지도 별로 없이 오로지 하늘로만 곧게 뻗어 있기 때문이란다. 삼나무는 구부러지지 않는다.

록 뿌리는 약하지만 곧게 선 나무들이 서로의 뿌리가 얽혀서 함께 붙들어 주기 때문에 태풍에도 넘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곧은 나무가 가장 높이 자라고 바람에 넘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가슴에 깊이 담고 돌아왔다.

 

우리는 정부의 높은 직분에 부름을 받았다가 이런저런 말썽의 소지 때문에 제대로 직분을 수행해 보지도 못하고

물러나는 분들을 보면서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만한 일꾼으로 학문이나 재능,

경력을 갖추었으면서도 몇 가지의 떳떳지 못한 행적 때문에 아까운 재능을 살리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언제

어디서나 바른 그릇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우선되어야 할 중요한 덕목인가를 새삼 실감하게 된다.

크게 쓰일 그릇은 우선  그 자세가 똑바로 되어 있어서 기울어짐이 없어야 할 것이다.

구부러진 나무로는 큰 집 기둥을 할 수 없으며, 멍든 재목으로는 대들보를 할 수 없는 게 아니겠는가!

사회나 국가가 행복과 번영을 누리는 데도 그 구성원들이 얼마나 바른 자세로 살아가느냐가 매우 중요한 관건이다.

아름다운 경치를 찾아 산골짜기나 호숫가에라도 가 보면 그저 작은 틈만 있어도 몰래 파묻고 감추어 놓고 간 쓰레기가

곳곳에 쌓여 있다. 돌멩이 하나만 들추어도 어김없이 버리고 간 쓰레기가 썩어가고 있다.

자기 집 앞에 냄새가 나고 지저분한 거 버리는 사람들이 심심치 않게 몰래카메라에 잡힌다.

지하철이나 시내버스를 타고, 건널목을 건너는 우리의 질서에 대해 실망하고 안타까워하는 외국 관광객이 적지 않다.

똑바로 서 있는 아름다움이 매우 귀한 것이다. 사람의 건강이나 사회의 질서가 그러하듯이 우리 가정의 행복도 마찬가지

이다. 자세가 똑바로 되어 있어야 건강도 고이고 행복도 고이는 것이다. 가족도 각각 제자리에서 자기 역할을 바르게

해낼 때 훈풍이 부는 봄날 꽃이 가득 핀 정원처럼 행복과 기쁨이 있다. 아버지가 한눈을 팔고, 술이나 도박에

기울어지거나, 어머니가 사치나 쾌락에 기울어지면 그 자녀들이라고 가지런히 자라기는 어려운 일이다.

태어나면서 똑바로 서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흔들리면서 자신이 얼마나 기울어져 있는가를 알고, 물이 고여 보아야

자신의 그릇이 가득 찰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매일 자세를 고쳐 앉는 노력이 있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바른 자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윤동주의 서시처럼 “하늘을 향해 한점 부끄러움 없기를” 기도하며

하늘을 향해 아침마다 자세를 고쳐 앉는 것이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마태복음 5장 8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