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30년이 다 되어 가지만 아내가 처음 자동차 운전을 배우겠다고 나섰을 때 어머니는 기겁을 하며 반대하셨다.
“여자가 무슨 심으로 자동차를 끌고 댕기며, 사고나 나면 누구 속을 태우려고 그러느냐.”하셨다. 자동차는 힘으로
끌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운전을 하면 저절로 가는 것이라고 설명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지만 겨우 집안 합의가 되었다.
필기 시험을 두 번이나 치르고서야 합격했고 기능 시험은 그야말로 증지 붙일 자리가 없을 만큼 많이 쳐야 했다.
이 아줌마가 열성은 대단해서 한번 시작한 일은 끝장을 보는 성격이라 보통 열심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운전도 2종
정도 했으면 될 텐데 기어이 1종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처음 기능 시험보는 날 그렇게 응원을 했는데도 보기 좋게
떨어졌다. 풀이 잔뜩 죽어 있는 아내에게“여보, 운전면허 너무 쉽게 따는 거 좋은 일 아니야. 어렵게 딸수록 좋은 거래.
”하며 위로했다. 딱 한번에 면허를 땄다는 내 자랑을 이때는 차마 할 수가 없었다.
한 달을 기다려 두 번째 시험을 치르는 날은 벌써 원주 치악산에 낙엽이 다 지고 가을바람이 스산할 때였다.
또 떨어질까봐 달달 떨고 가는 게 안쓰러워 시험장에 따라갔는데 거의 다 마쳐갈 즈음에 부웅 하고 라인 밟는 신호가
들렸다. “아이쿠”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집에 돌아와서 아내는 밤에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 “다 된 건데.”를 연발하는 게
너무 분한 모양이다. 다음 시험은 하얀 서리가 내릴 때였다. “여보 긴장하지 마, 마음을 푹 놓고 연습할 때처럼만 해.”
하며 위로했지만 화장실을 자주 가는 게 날씨 탓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세 번째에서 기능 시험에 합격했을 때 아내는
아이처럼 좋아했다. 이 에리사 선수가 세계 탁구대회에서 우승했을 때 표정만큼이나 감동적이었다. 그러나 아직도
운전면허의 길은 멀고 멀었다. 이제 주행 시험을 쳐야 했다. “언덕을 올라갈 때 정지 신호가 나면 확실하게 멈춰야 돼.
어물쩡 넘어가려고 하면 낙제야, 알겠지?”그러나 주행시험에서도 떨어졌다. “아이구, 또 떨어졌어! 여보 당신 대학
나온 거 정말 맞아?”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나왔다. 그 말 때문에 토라져 아마 이틀은 말도 안하고 지냈을 거다.
다시 주행 시험을 보러 가는 날은 벌써 겨울이 지나고 치악산에 연두색 빛이 완연한 봄날이었다. “오오, 하나님,
아내에게 힘을 주소서.”기도가 저절로 나왔다. 그동안 얼마나 절치부심했던가! 그날 아침 면허 시험장을 향해 떠나는
아내는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 진군하는 잔 다르크만큼이나 비장한 각오로 기도를 드리고 떠났다. 오늘도 합격 못하면
다시는 집에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언뜻 들었다. 그리고 드디어 그날“32번 지원자 주행시험 합격했습니다. 축하합니다. 다음 33번 지원자 차에 타세요.”라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아내는 1톤 트럭에서 내리자마자 쏜살같이 내게
달려왔다. 누가 보건 말건 운전면허 시험장 구석에서 긴 포옹이 있었다. 아내의 눈에는 눈물까지 반짝였다.
합격했다는 말에 어머니는 축하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어정쩡한 표정이었다. 어떻게 받은 면허증인가! 아내는 한동안
그 면허증을 지갑에 넣지 않고 성경책 속에 끼워 두었던 것 같다. 하나님의 은총과 복으로 면허증을 딴 것이라고 믿었을
것이다.물론 그것으로 다 된 것은 아니었다. 그 뒤로 운전 연수시키느라고 심각한 가정 문제가 생길 뻔한 일도 있다.
아내를 운전석에 두고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시내를 나서면 간 떨어지는 일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이마로 앞 유리창을
들이받고 나서 삿대질을 하고 고함도 지르고 했지만 그런 수모를 무릅쓰고 아내는 기어이 운전을 해냈다. 그러나 그것은
아내에게는 고생길의 시작이다. 운전을, 더구나 1종 운전면허라는 것 때문에 그동안 교회에서나 동료들에게 불려간 적이 얼마나 많았으랴! 그런데 정말 희한한 것은 단 한 번 시험으로 면허증을 받은 나는 그동안 딱지 떼고 벌금 낸 게 얼만데
아내는 20여 년 동안 딱지 한 번 안 뗐다는 게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요새는 어머니가“너도 에미처럼 운전 좀 얌전하게
해라.”하시며 나를 나무라신다. 친정에 가는 날에는 꼭 자기가 운전을 하겠단다. 꽤 괜찮은 여 기사를 데리고 편안한
맘으로 눈 지그시 감고 처가에 가는 것은 여간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