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감기 한 번 안 걸려본 사람과 어찌 인생을 이야기할 수 있겠느냐는 어느 분의 말이 생각난다.
몸이 아픈 것은 가끔씩 뜰에 내리는 비와 같아서 비를 맞으면 채소나 화초가 자라듯 우리도 삶의 크고 작은
아픔들을 겪고 나면 작게나마 삶에 대한 고마움과 가족과 이웃에 대한 고마움이 커진다. 나도 이제 함부로
살 수 있는 나이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딴에 여간 조심해서 산다고 하지만 이번에 또 병원 신세를 지고
이웃과 가족에게 폐를 많이 끼쳤다. 큰 병을 앓은 것은 아니지만 넘어져 뼈를 다쳤다. 우리 집 식구들의 병간호는
제각각이다. 막내는 대개 하루 종일 어디를 돌아다니다가 초저녁쯤 병실에 들른다. 막내는 어디서 익혔는지
모르지만 주무르는 것 하나는 공짜로 하기에는 좀 미안한 정도이다. 다리를 주무르고 발가락도 주무르다가
아홉시 뉴스가 시작하기 전에 집에 간다. 타고난 잠꾸러기여서 이 애의 잠자는 것은 누구도 못 말린다. 그래서
밤새 곁에 있어야 하는 보호자로서는 별로 점수를 많이 줄수가 없다. 만일 밤에 자다가 도움이 필요해서 막내를
깨우려면 아마 병원 전체를 다 깨우고도 한참 있다가 일어날 것이다. 큰 딸은 대단히 바빠서 낮에는 얼굴을 볼 수가
없지만 그래도 여간한 일이 아니면 밤늦게라도 와서 곁에서 잔다. 잠귀가 아주 밝은 것은 아니지만 한두 번쯤
자다가 뒤척이는 소리에 일어나서는 내 손가락을 한참씩 만지작거리다 잔다. 아이가 밤중에 일어나서 내 손가락을
만지작 거릴 때는 마음이 무척 평화로워진다. 이 아이가 아주 어렸을 때 무척 서두르며 다니느라고 작은 사고를
한두 번 당한 게 아니었다. 그때마다 밤에 신열이 나서 통증으로 잠 못 이루는 아이를 눕혀 놓고 제 엄마와 내가
꼼지락거리는 예쁜 손가락을 많이 만져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밤에 곁에 두고 자기에 제일 든든한 게 아들이다. 잠귀가 아주 밝아서 부스럭거리기만 해도“일어나실 거예요?
”“화장실 가시게요?”하고 묻는다. 손가락을 만져 주는 자상함은 없어도 침대라도 통째로 들어올릴 만큼 힘이 좋아서
몸을 일으키고 눕히는 일을 거뜬히 해내기 때문에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든든하다. 제 엄마가 있지만 하루
종일 지쳐 있는 엄마를 꼭 집으로 보내고 밤 간호를 맡는다. 그냥 아들과 단 둘이 있는 것만으로도 밤이 외롭지 않다.
어머니는 가끔 오시지만 병실에 오면 내가 잠들어 있을 때에라도 내내 손을 주무르신다. 붕대를 매거나 깁스를 한
아들을 오래 보시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일 것이다. 그래서 잠시지만 그 시간 내내 손을 주무르면서 기도를 드리고는
가신다. 병실에 오시지 않아도 가장 많이 마음 아파하면서 기도를 제일 많이 하는 사람이 어머니라는 것을 나는 눈을
감고 있어도 환히 볼 수 있다. 누구보다도 알뜰하게 내 손발처럼 보살펴 주는 것은 아내다. 목욕을하거나 화장실을
가거나 반찬을 챙겨 식사를 준비하거나 옷을 갈아입히는 일, 가슴이 결려 숨도 크게 못 쉬는 때 등 이렇게 아내의 손이
많이 필요한 줄 정말 몰랐다. 하나님은 이 세상 남자들이 나이가 들고 몸이 아플 때 이제 늙어 더 이상 돌볼 힘이 없는
어머니들을 대신해서 돌보아 주라고 아내를 주셨나보다. 병원에서 퇴원하여 집에 온 첫날밤이었다.
아직 혼자서는 눕고 일어날 수 없기 때문에 밤에 자다가 소변을 보는 일이 가장 겁나고 어렵다.
곤히 자는 아내를 깨우기가 미안해서 커다란 플라스틱 물병을 잘라 임시 요강을 만들었다. 그러나 밤중에 혼자 일을
보다가 그만 잠옷이 다젖고 말았다. 그동안 간호에 지쳐 곤히 자는 아내를 깨우기가 미안해서 어둠 속에서 서랍을
더듬어 옷을 찾아 입는다. 새벽 두시쯤 되었나보다. 어디서 급하게 달려가는 구급차의 경적소리가 어둠 속의 정적을
가르고 날카롭게도 달려간다. 누군가 위급한 사람이 생겼나보다. 비록 불러 깨우지는 않아도 가족이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밤이 따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