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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 모음

징크스와 결혼

by 은빛지붕 2023. 11. 16.

 k 씨는 묘한 징크스가 있다. 이상하게도 낯선 곳에 가기만 하면 길을 묻는 사람들을 꼭 만나게 된다.

국내 출장이나 개인 볼일로 어느 도시를 가게 되면 반드시 1회 이상 이런 일을 당한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폭염이 덮치거나 상관없이 그는 수도 없이 길을 묻는 사람들을 만난다.

'아니 도대체 사람들이 왜 이러는 거야? 저도 처음이라고요, 어제 여기 도착했다고요.’하면서 머리를 긁으

무안해하는 자신을 수도 없이 겪었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여행이나 출장을 가면 겁부터 벌컥 났다.

한번은 영국으로 출장을 갔었다. 바쁜 출장 일정 속에 시간을 내어 시내 관광을 하고 있는데 아니 글쎄

어떤 영국인인지 외국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다가와 길을 묻는 것이 아닌가. ‘오 우 노우. 야, 이거 외국에 와서도

길을 물으러 오다니.’사실 k 씨는 길치에 가까웠다. 그런데 이런 일을 자주 당하다 보니 이제는 어느 지역에 출장을

가면 반드시 지역 정보를 연구하게 되었다. 그래서 국내는 물론 다른 나라들에 대한 정보를 꽤 축적해 놓고 이런

일을 당하면 낭패를 보기보다는 물으러 오는 사람들에게 정보를 주려고 마음을 바꾸었다.

이렇게 마음먹기로 다짐한 것은 일본 출장에서였다. 정해진 출장 일정을 다 소화해내고 저녁 시간이 되어 인근 지역 

관광을 시작하려고 막 호텔을 나가려다가‘아차, 또 누가 길을 물으면 어떡하나.’하는 생각에 대로변이 아닌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는 골목길로 다니기로 하고 지도를 자세히 살펴보고서 출발했다.


이 골목 저 골목 사이로 다니다가 이윽고 목적지에 도착하기 직전 대로변에 맞닿았다. 맞닿는 순간 거짓말이 아니라

이번에는 일본말로“쓰미마생.”하면서 길을 묻는 것이 아닌가. 뒷주머니에서 지도를 꺼내 어눌한 일본어로 길을 겨우

가르쳐 주었다. 그래서 아예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다 챙겨서 다니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자신의

길치 콤플렉스에 자신감이 생겨났고 어느 도시를 가나 당당했다. 어느 날, 국내 출장이 잡혔다.

시간에 쫓겨 정신없이 다니고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약속이나 한 듯 어느 미모의 숙녀가 길을 물어왔다.

나를 따르라. 나도 그리로 가는 길이다. 그래서 목적지까지 여행 안내원 이상의 친절과 배려로 그녀를 안내해 줬다.

그 여자는 정말 감사하다고 고개를 연신 숙이며 인사했다. k씨는 자기도 모르게 다음에 또 길을 잃거나 궁금하면

자신을 찾으라고 하면서 목에 약간의 힘을 주고 명함을 건낸 후 총총걸음으로 사라졌다. 그런 후 얼마의 시간이 흘렀다.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때 너무 고마웠었노라고 하면서 말이다.

이렇게 해서 k 씨는 그녀와 자연스럽게 만남이 이어졌다. ‘어쩜 그렇게 지리에 밝으세요?’‘어험, 전 애국자입니다.

저는 조국을 사랑하고 김정호의 그 정신을 무척 사랑합니다.’ 하면서 졸지에 국내 최고의 지리학자가 되어버렸다.

수습할 겨를도 없이 그녀는 k 씨의 치밀함과 정확성에 반하기 시작했다. 하는 수 없이 k 씨는 문화며 지리며 심지어

풍수지리까지 공부하면서 자신의 전문성을 유지했다.

서로 사귀면서 톱니바퀴처럼 부족한 면을 채워 주는 자연스러움이 있었다.

 

그녀는길치였다. k 씨는 기계치였다. 그녀는 손끝이 얼마나 매운지 원만한 기계는 능숙하게 다루었다. 

짧지 않은 연애기간 동안 서로는 서로에게 부족을 채워 주는 경험을 수없이 하게 되었다.

상대방에게 자신의 약점이 노출된다는 것은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이 일보다 더 아름다운 일은

그 약점을 강점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배려와 포용이다. k 씨와 그녀는 연애기간 동안 이러한 일들을 겪었다.

상대가 나를 만나 자신의 능력을 200퍼센트 이상 발산할 수 있다면 얼마나 멋있는 일일까?

서로가 서로에게 하나의 의미가 되고 천년 백설이 되는 것은 이 세상을 사는 힘이 아닌가! 어디 결혼이 쉬운 일인가!

운명이라는 대해를 가로질러 가면서 둘이 하나 되어 싸워야 하는 일전 아닌가!

언제 어떻게 성난 운명의 파도가 들이닥칠지 모르는데 둘은 서로에게 200퍼센트 이상의 생기를 코에 불어넣는

그러한 존재여야 한다. “여보, 이번에 가는 곳은 어디에요?”“에, 그러니까….”

k씨는 또다시 목에 힘을 주고 아내가 된  그녀는 눈웃음을 치며 그 안내원의 멘트에 자신을 맡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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