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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 모음

괜찮다 괜찮아!

by 은빛지붕 2023. 11. 17.

 삼 남매 중 막내로 곱게 자란 나는 사 남매 맏이인 남편에게 시집을 갔다.

우리 부부는 동갑내기지만 막내라 그런지 나이보다 조금은 어려보이는 나에 비해 남편은 전형적인 맏이의 모습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우리를 보고 남편이 서너 살 더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모자람이 많은 나를 미치도록 사랑한다며

당당하게 자신의 부모에게 데려가는 남편에게서 부성애를 느꼈다. 그런 그와 살아온 날이 벌써 23년이 지나고 있다.
 '시집’이라는 미지의 세계를 향해 들여놓았던 행보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서로 다른 문화를 조율해 가며 걷는 길은

리 간단치 않다. 그럼에도 함께 살맛을 느끼는 것은 조심스레 걸음마를 시작한 때부터 잘 달릴 수 있는 지금까지

힘이 되어 준 시댁 식구들의 한마디‘괜찮다, 괜찮아!’이다. 신혼여행을 마치고 시어른들께 문안을 드리던 날이다.

행지에서 사 온 선물을 드리고 다과상을 냈다. 그런데 시부모님께서 잠시 찻잔을 내려 보시다가 서로 눈을

마주치며 빙그레 웃으시는 것이 아닌가! 그런 후 두 분이 약속이나 한 듯이 단숨에 찻잔을 다 비우셨다.

그 당시만 해도 녹차 티백이 흔치 않은 때라 어떻게 차를 타야 하는지 고민하다 그만 티백을 가위로 잘라 알갱이를

찻잔에 둥둥 띄운 채 드렸던 것이다. 어린 며느리 당황스럽지 않게 아무 말씀 없이 인사를 받아 주신 것이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안 나는 “어머니 제가 실수했어요. 죄송해요.”했더니“괜찮다, 괜찮아!”하시며 어깨를 도닥이셨다.

그런 것도 모르냐며 핀잔을 줄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렇게 처음 들은‘괜찮다, 괜찮아!’는 지금까지 수도 없이

듣고 산다.


유난히 병치레가 많던 아들 때문에 응급실에 갈 때도 걱정하는 우리 부부에게 아버님은“괜찮다, 괜찮아!

아이들은 이러면서 크는 거다.”하시면서 기도해 주신다. 얼마나 마음에 위로가 되는지! “괜찮다, 괜찮아!

아이들 아프고 나면 재주 하나 더 는다더라.”오히려 어머님은 빙그르 웃어 주신다. 얼마나 마음이 따뜻해 오는지!

정말 아이들은 그렇게 괜찮게 잘 커 주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외할머님은 끼니마다 밥상을 들여놓아야 했다.

“할머니 오늘 밥이 좀 되게 된 것 같아요. 된장국은 간이 잘 맞을지 모르겠어요.”하면“괜찮다, 괜찮아!”하시며 

수저를 드신다. 때론 앉혀 놓고 야단도 치셨지만 괜찮다는 그 한마디에 모든 것이 보상되곤 했다.
따뜻함이 묻어나는‘괜찮다.’는 말 한마디는 우리 가족 모두에겐 서로에 대한 배려와 관심이다.

간혹 피곤함에 집안일이 소홀해져 때를 놓칠 때“여보, 괜찮아. 오늘 저녁은 오랜만에 외식할까?”“엄마, 괜찮아요.

우리가 알아서 할게요. 푹 쉬세요.”“괜찮아요! 형수님, 오늘은 제가 한턱내죠.”얼마나 정겨움이 느껴지는지!

나 또한 이런저런 일로 힘들어하는 아이들에게“괜찮아, 잘될 거야.”라며 손잡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나는 자주 어머님과 함께 목욕하러 간다. 해마다 몸이 달라지신다는 어머님 말씀이 이젠 나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며칠 전 목욕탕에 가서“어머니, 저도 몸매가 예전 같지 않죠?”했더니 어머님은“괜찮다, 괜찮아!

어미야, 예전보다 살이 올랐어도 너만 하면 딱 보기 좋다. 나이 들어 너무 말라도 보기 안 좋다.”하신다.

이젠 나도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중년이 되었다. 딱히 가슴 뜨거울 일도 없는 나이,

허망함이나 고독, 우울이라는 단어를 입에 물고 사는 그런 나이 말이다.

그런데도 내 모습이 괜찮다고 해 주시는 어머님의 한마디에 내 가슴 한켠이 따뜻해지니 감사한 일이다.
‘뒤돌아볼 수 없는 불혹을 넘어 괜찮은 중년의 아줌마로 살아가야지.’다짐하며 힘찬 발걸음을 내디뎌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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