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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 모음

유치한 사랑

by 은빛지붕 2024. 1. 20.

 대학 때 만난 남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이벤트를 열어 그녀를 행복하게 해 주었다.

그러나 결혼 후 불과 4년 만에 다른 여자와 불 같은 사랑을 나누며 그녀를 헌신짝처럼 버렸다.
“기다려 봐. 그러면 남자는 돌아와. 지금은 죽고 못 살지만 얼마나 가겠냐고?”

더러 그녀의 이혼을 말렸지만 그녀는 단호했다. 사랑은 꽃과 같았다. 남편의 배신으로 그녀

가슴 속은 꽁꽁 얼어붙었고 두 번 다시 꽃은 피어날 수 없었다. 그 뒤, 그녀는 어떤 남자도

사랑할 수 없었다. 그런 그녀에게 한 남자가 다가왔다. 전자 부품 공장에 다니는 평범한 사람

이었다. 아내와 사별하고 다섯 살 아들은 시골 부모님이 맡아 기른다고 했다.
“포기는 맨 나중에 하는 거예요. 만나다가 아니다 싶으면 그때 포기해도 늦지 않아요.”

그 남자는 도무지 마음을 열지 않는 그녀를 그런 말로 달랬다. 그는 가끔씩 커다란 상자 하나를

고 왔다. “아버지 일감이에요. 직장 다니다가 퇴직하셨는데 소일거리가 없어서 힘들어 하셔서요.”

그는 퍽 자랑스러워했다. 그러니까 그는 2주에 한 번씩 전자 부품 조립 물건을 선물처럼 챙겨들고

고향을 찾아가는 것이었다. 그를 고속버스 터미널까지 태워 주고 돌아올 때마다 그녀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정말 유치한 남자야. 얼마나 자랑할 것이 없으면 그깟 일을 자랑할까.” 그러다

우연찮게 그의 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오늘은 상자가 무거워서 버스 타고 못 가겠어요.

좀 태워다 줄래요?”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그는 상자를 뒷자리에 내려놓았다. 처음 만났는데

그의 부모님은 그녀를 오래전에 알던 사람처럼 격 없이 대했다.

그의 아들도 붙임성이 좋았다. “워리가 내 말 잘 들어요. 볼래요?” 개 이름이 워리였다.

‘아무리 똥개라지만 워리가 뭐람.’ 그녀는 속으로 웃었다. 그러다 배꼽을 잡고 웃을 일이 생겼다.

“앉으랑게! 후딱 앉으랑게! 인자 서랑게! 팔딱 서부러!”아이는 작은 회초리로 바닥을 탁탁 때리며

똥개를 훈련시켰다. 그리고 개가 똥을 싸자 인상을 찡그리며 소리쳤다. “아따, 또 싸분냐?”

아이의 똥개 훈련 방법이 어찌나 재미있던지 한참을 웃었다. “정말 웃음소리가 듣기 좋네요.

듣는 사람까지 기분 좋게 해 주는 웃음소리예요.” 언제 서 있었는지 뒤에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그의 표정이 심각했다. “아버지가 부품조립하느라 밤잠을 설치신대요. 오늘 보니까 많이

마르신 것 같아요.” “그럼 못 하시게 하면 되죠. 아니면 천천히 하시라고 하든가.” 그녀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그는 그녀가 시킨 대로 했다.“아버지, 그렇게 일 빨리 하실 필요 없어요. 천천히 놀면서

하세요.” “뭔 소리여? 내가 더 열심히 해야 네가 다니는 회사가 잘 돌아갈 것 아녀?”

그의 아버지는 퍽 행복한 표정으로 덧붙였다.“삯 안 받아도 괜찮으니까 염려 말고 일 보내.

부모가 되설랑 이런 일도 못 도와주겠어.”그녀는 서울로 돌아오면서 모든 사실을 알았다.

그는 그동안 아버지의 일 값을 봉급에서 떼어 보냈던 것이다. “사실은 일거리가 없어요. 그래서

부품 조립하는 분한테 사정해서 일 얻어다 드렸어요.” 평생을 5시에 일어나 일터로 향했던 아버지는

일손을 놓자 두 달을 앓아 누우셨단다. “일거리 생긴 뒤부터 다시 건강해지셔서 좋아했더니….”

그는 심각했다. 그녀는 그를 웃게 해 주고 싶었다. 그래서 장식품으로 놓아둔 강아지 인형을 향해

손가락을 겨누며 크게 외쳤다. “앉으랑게! 긍게 서부러! 아따, 또 싸분냐?” 그녀가 아이의 말투를

흉내 내자 이번에는 그가 큰소리로 웃었다. “웃는 표정이 꽁꽁 언 마음까지 봄눈처럼 녹일 만큼 

편안하다는 것 알아요?” 그녀는 진심으로 말했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아주 오랜만에, 몇 년 만에 처음으로 꽁꽁 얼었던 마음봄눈처럼 녹아 있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 마음속에 꽃 한송이가 활짝 피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유치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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