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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Blues Mobile Band - I Live You Baby

by 은빛지붕 2024. 1. 28.

 

예수님의 침묵
예수님의 친구 나사로가 병들었다. 누이들의 지성스런 간병에도 불구하고 건강이 급속히 기울더니

죽음이 그의 손목을 잡아 끌고 있었다. 삶에 마침표를 찍기엔 너무 젊은 그였기에 더욱 안타까울

이었다.그러나 아직은 희망이 남아 있었다. 예수님만 오신다면 그만한 병쯤이야 문제가 될 게 없었다. 

문제는 나사로의 와병 소식을 접한 예수의 이상한 무관심에 있었다. 생명의 불꽃이 거의 꺼져 가고

있는데도 청을 부리시는 것만 같았다.“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 그 후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유대로 다시 가자 하시니” (요한복음 11장 5~7절).

왜 사랑하는 자의 고통에 대하여 그토록 수수방관하고 계셨던 것일까? 

위 성경절의 영어 본문에는‘그러므로(therefore)’라는 단어가 강조되어 사용되고 있다.

이는“예수께서‘사랑하시므로’이틀을 더 지체하셨다”는 말이다. 예수께서 찾아 가셨을 때는 이미

장례식도 끝나고 나사로가 죽음의 침상에 누운 지 나흘이나 지난 뒤였다. 아직도 마리아와 마르다는

오열하고 있었다. 예수께서 문병객이 아닌 조문객으로 그 집을 찾았을 때 그들은“주여,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요한복음 11장 21절)라고 부르짖었다.
“주님, 오라비는 이미 무덤에 있는데 이제 오시면 무엇합니까?

주님의 늑장 때문에 오라비가 죽었으니 주님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이유 있는 항변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주께서 예비하신 황홀한 이적을 바라볼 생각도 못하고 슬픔에 눌려 떨고있는

자매를 나무라지 않고 조용히 무덤으로 가셨다. 그리고는 마치 단잠에 빠진 친구를 깨우듯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죽은 나사로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일어나 나왔다”

(요한복음 11장 43절). 예수의 명령에, 죽음의 문에 버티고 있던 돌이 가만히 자리를 비켜서자

썩어 냄새나던 시체가 음습한 무덤을 조롱이나 하듯이 생명의 몸짓으로 일어섰다.

나사로를 찬찬히 두른 베 조각들은 이제 한낱 죽음의 껍데기에 불과했다.

죽은 나사로가 살아나다니! 졸지에 초상집은 잔칫집으로 바뀌었다. 울음소리는 그쳤고,

탄식 대신 놀람과 기쁨의 탄성 소리가 온 집안을 흔들었다. 슬픔과 실망이 그랬던 만큼 기쁨

또한 더욱 컸다.헌화하던 소리꾼들이 어색하게 물러간 후 예수님은 마리아와 마르다에게 이렇게

묻고 싶었을 것이다. “이래도 내가 너희 집에 너무 늦게 왔느냐?” 하나님의 시계는 우리의 것과

다르다 “하나님의 경륜은 조급하거나 지체하는 법이 없다”(시대의 소망, 32).

그러므로 우리의 간절한 열망이 지연될 때“사랑하므로 지체하셨다”는 말씀을 가만히 되뇌어볼

필요가 있다. 그분의“침묵”과“지체”는 지금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가장 적극적인 방법 중의 하나이다.

인간의 힘으로 극복할 수 없는 곤경은 늘 우리 곁에 있다. 

그런 와중에도 여전히 주님을 신뢰하는 자에게는‘끝까지 슬픈 일’이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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