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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도덕과 성적 타락

by 은빛지붕 2024. 11. 29.

 

 

 

오늘날 인간 사회에 만연한 풍조 중 하나는 절대 선과 절대 악의 기준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그 기준을 명확하게 선으로 긋기가 쉬운 일은 아니지만, 사람에게는 양심이라는 것이 있고 그 양심이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옳은 일을 할 때에는 마음이 편안하고 기분이 좋지만, 잘못된 일을 할 때에는 마음이 두근거리고 가책이 오고 불편한 것이 정상이다. 맹자 사상의 근간이기도 한 사단칠정(四端七情)론 중, 사단은 측은지심(惻隱之心),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이다. ‘시비지심’이란 옳고 그름을 가릴 줄 아는 마음을 말하는 것인데, 성경에도 이와 관련된 성경절이 있다.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로마서 2장 14, 15절).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은 그 ‘양심’이 매우 무디어진 것 같고 심지어는 마비 증상이 오는 것 같다. 이전에는 부도덕한 일이라고 생각되던 많은 일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공공연히 수많은 사람에 의하여 이루어지기 때문에 부끄럽거나 가책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그런 일을 반복하다 보면 양심이 점점 무뎌져서 선과 악을 구분하지 못하고 말이나 행동을 자기 편한 대로 자기 기분대로 하기 때문에 그것으로 인한 사회적 부작용과 부조리와 각종 범죄가 범람하게 되는 것이다. 이전에 선이라고 생각되는 것이 악처럼 되기도 하고, 악이라고 판단되던 가치가 선처럼 평가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가정이 무너지고 있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이 있다. ‘인간(人間)’이란 사람과 사람 사이를 말한다. 사람은 누구나 홀로 살아갈 수 없는, 다른 사람과 어울려 함께 의지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그 최초의 사회가 바로 가정이다. 그런데 오늘날 수많은 가정이 부도덕과 폭력 때문에 무너져 내리고 있다.한 부부가 결혼하여 서울에서 생활을 시작하였다. 얼마 후 여자가 바람이 났고 외박과 가출이 잦았다. 쉽게 해결될 일이 아니라 지방으로 이사를 내려갔고 여자는 과거를 청산하기로 하였다.
아이를 갖게 되었는데 쌍둥이였다. 상태가 좋지 못하여 임신 4개월부터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남편은 병원비 때문에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고된 일을 하며 하루하루 피곤하고 힘든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이 남자도 다른 여자들을 알게 되었고 바람이 났다. 아내가 알게 되었고 이혼하려고 했으나 그때는 이미 쌍둥이가 태어난 후라 아이들 때문에라도 쉽게 헤어질 수가 없었다. 사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다. 구타가 자주 있었고 경찰을 부르기도 하며, 이 가정은 지옥 같은 장소가 되었다. 결국 아이들을 양육할 수가 없어 입양을 시키고 말았다. 부부간의 문제도 심각해져 가고 있지만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에서도 비윤리적이고 반인륜적이고 부도덕한 일이 비일비재하다. 살인, 강간, 폭력 등이 가족 간에도 일어나고 있다. 가정의 질서가 깨지고 가족 간의 관계가 허물어지면 인간 자체가 파괴되어 그러한 사람들이 증가하면 결국 사회나 국가는 망하는 것이다.


 폭력과 극악한 범죄가 난무하는 세상
초등학생들이 특정한 학생을 왕따 시킨 다음 집단으로 폭력을 가한다. 중학교에서도 이러한 폭행은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다.학교 폭력은 초등학교 고학년(5~6학년)이나 중학교에서 발생 빈도가 높다고 한다. 2007년 4월 16일 오전 7시 15분에 미국 버지니아 공대 캠퍼스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있었다. 교내의 웨스트 앰블러 존스턴 기숙사와 노리스 홀에서 한 학생이 두 차례에 걸쳐 총기를 난사하여 32명이 사망하고 29명이 부상을 입었다. 범인은 그 대학에서 영어를 전공하던 4학년 한국인 학생이었다. 그는 사건 직후 총기로 자신의 얼굴을 쏴 자살하였다. 어떤 마음으로 무슨 동기에서 그런 끔찍한 살인 사건을 감행할 수 있었을까? 2013년 7월 8일 경기도 용인의 한 모텔에서 19세 청년이 17세의 한 여성을 성폭행한 다음 목을 졸라 죽였다. 그리고 시체를 쉽게 옮기기 위하여 화장실에서 공업용 커터칼로 시신을 토막 내어 김장용 비닐 봉투에 넣어서 모텔을 빠져나왔다. 그는 맨 정신으로 범행을 저질렀으며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다.”는 내용의 글을 올리기도 했다. 사람의 포악성과 잔인성이 극도에 달하고 있다. 양심은 점점 마비되어 어느 판사의 표현대로 “인간이기를 포기한 사람”들이 늘어 가고 있다. 이러한 인간의 죄악상이 과연 개선되고 순화되어 더 나은 사회로 환원될 수 있을 것인가? 아마도 불가능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디까지 갈 것인가?


 성적 타락과 동성애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부여하신 원래의 성(性)은 고귀하고 고상하고 거룩한 것이었다. 남녀가 진실한 사랑을 나누며 자손을 번성케 하는 매우 아름다운 심리적, 신체적 선물이었다. 그러나 인간 세상에 죄가 들어온 후부터 성(性)은 오용되기 시작하였고, 상당 부분 쾌락과 범죄의 도구로 전락하였다. 오늘날 성적 타락의 상태는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각종 죄악의 온상이 되고 있으며, 가정을 파괴하고 사회의 각종 문제를 유발시키며, 인류를 파멸로 몰아가고 있는 주범(主犯) 중 하나이다. 성적 타락을 조장하고 유발시키는 인터넷의 음란 사이트의 규모는 어마어마하다. 포르노 관련 웹 사이트는 3억 7,200만 페이지라고 한다. 그리고 매 초당 266개의 음란 사이트가 새롭게 만들어진다. 미국이 2006년 한 해 동안 포르노 사업으로 벌어들인 수입이 20억 8,400만 달러 1)(약 2조 원)라고 하니 고귀한 성(性)은 이미 쾌락의 노리개로 상업화되었고 그 막대한 수입을 포기할 리가 없을 것이므로, 앞으로 이 현상은 기하급수로 증가할 것이다. 세계적으로 그 거래 금액이 200억 달러에 이른다는 보고 2)가 있다.


세상의 미래는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이 성적 타락과 관련하여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동성연애이다. 이 동성애 문제는 이제 매우 민감한 사회 문제로 부각되어 있기 때문에 함부로 언급하기조차 두려운 주제가 되었다. 동성애자들의 인권 문제가 나날이 확대되고 있다. 이제는 동성애를 넘어서 동성 간의 결혼을 합법화시키는 단계까지 이르게 되었으므로 성적 타락과는 또 다른 분야의 문제로 넘어간 듯한 느낌이다. 이 동성애 문제는 성경에서도 다루어진 매우 오래된 인간사의 문제이기도 하다. 성경에 나오는 이 동성애의 대표적인 도시는 소돔과 고모라이다. 소돔이라는 곳은 죄악이 너무나도 번성하여 하나님의 즉결 불 심판을 받고 지구 역사에서 그 흔적이 사라진 도시이기도 하다. 신약 성경 3)에는 그 사실을 이렇게 언급하고 있다.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저희와 같은 모양으로 간음을 행하며 다른 색을 따라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 여기에서 ‘다른 색’이란 동성애를 말한다. 소돔(Sodom)에서 유래된 소도마이트(Sodomite)라는 단어는 ‘남색자(男色者)’ 혹은 ‘이상 성행위자’를 의미한다. 성경은 동성애를 그만큼 매우 큰 죄악으로 다루고 있다.


그러나 요즘, 동성애자들의 성적 취향의 상당 부분이 유전적으로 결정됨을 입증하는 연구 결과 4)가 나오기도 하여 우리의 가치관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미국에서는, 동성 결혼한 커플에 대한 연방 지원을 금지한 법에 대해 9명의 대법관 중 5대 4로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또한 연방 대법원은 동성 결혼을 금지한 캘리포니아 주의 법률 조항의 상고 역시 5대 4로 각하해 사실상 동성 결혼이 허용될 수 있게 했다. 5) 참 괴이한 세상이 되었다. 자연이 파괴되어 지구 환경에 온갖 이상이 발생하고 있는 터에 자연의 질서와 법칙을 거스르는 미국 대법원의 판결이 가져올 또 다른 지구 상의 이상 현상은 어떤 것이 될지 매우 염려스럽다.동성애의 이유야 어떻든지 간에 성경상으로 보면 동성애는 역사의 종말 현상이다. 예수께서 지구 역사의 마지막 사건이 될 그의 재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마태복음 24장 37~39절). 여기에서 말하는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일은 오늘날과 같이 비정상적인 상태의 식생활이나 남녀 관계를 언급하는 것이다. 안타까운 사실은, 홍수가 나서 멸망할 때까지 사람들이 돌이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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