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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 모음

새들의 노래를 듣다

by 은빛지붕 2024. 12. 22.

 

 

 

 

단음 끝에 긴 여운으로 휘파람 소리와도 같은 겨울 손님 멋쟁이 소리가 잦아들자 개울가 저편에서 귓바퀴를 흔들 기운으로 멧비둘기 한 쌍이 장단이라도 주고받는 모양으로 힘껏 소리를 높인다. 찬 기운과 더운 기운이 힘겨루기를 하는 동안 새들의 소리는 더욱 우렁차고 그 어느 때보다도 아름답다.둥지를 찾느라 연못과 바위틈, 과학관 건물 주변을 이리저리 살피며 큰 소리로 지저귀며 분주하던 한 쌍의 노랑할미새가 잔디밭 한 켠의 나뭇가지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하는 모습은 누가 보아도 아름다운 평화이다. 누구에게도 그러하겠지만 요즘의 삶이란 복잡하고 혼란하고 답답하다. 그러한 속에서라도 새들의 아름다운 소리를 듣고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과학관 주변의 새들이 새로이 자리를 잡고 둥지 찾는 일로 분주하다는 것은 장소를 달리하면 좀 더 다양한 새를 만날 수 있는 시기가 되었다는 힌트이다. 그래서 오늘은 과학관 주변 노목 새들을 뒤로하고 또 다른 새들을 만나러 갈까 한다.(살아가는 일들이 힘들고 어려울 때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다양한 새를 만나러 가는 길은) 새로운 새를 찾아가는 길은 설레는 일이다.


아름다운 새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기대
차를 몰아 먼 길을 힘이 드는 줄도 모르고 갈 수 있는 것은 설렘의 힘이다. 긴 시간 여행 끝에 다리를 건너고 굽은 길을 돌아가니 갯벌이다. 저 멀리 이리저리 분주히 움직이며 먹이를 찾는 도요의 모습이 보인다. 해가 아래로 아래로 수평선으로 내려올수록 밀물을 따라 도요들의 모습이 조금씩 조금씩 가까워진다. 익숙하지 않은 도요의 모습이 보이면 도감으로 확인하며 하나둘 눈에 담는다.곧은 부리에 붉은 다리를 가진 붉은발도요, 부리가 살짝 올라가고 녹색 다리를 가진 청다리도요, 분홍색에 끝이 검고 부리가 위로 올라간 큰뒷부리도요, 큰 몸집에 긴 부리가 아래로 휘어진 마도요. 도요 사이에 물떼새들이 섞여 있다. 검은 머리에 반듯한 붉고 긴 부리 검은머리물떼새, 노란색의 눈테가 선명하고 귀여운 꼬마물떼새. 다양한 새들을, 이 장관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은 복이다.도요새는 대체로 부리가 길고, 단정한 움직임에 경쾌한 소리를 내는 것이 특징이다. 보통은 바닷가에 서식하며 무리를 지어 썰물을 따라 갯벌로 먹이를 찾아 나간다. 도요새는 먼거리를 이동하며 생활하는데 가장 북쪽 시베리아에서 번식하는 무리가 남쪽으로 가장 멀리 이동하여 호주와 뉴질랜드 섬에서 월동한다. 도요가 먼 길을 떠나는 이유는 안전하기 위해서이다. 추위로부터 안전하기 위하여 남쪽으로, 가장 적절한 시기에 새끼들을 안전하게 키우기 위해 위험이 적은 북쪽 시베리아로 간다. 떠나기 전 철저히 준비한다. 충분히 먹음으로 에너지를 축적하고 체내 호르몬과 생체리듬을 조절하여 장기간 날 수 있도록 한다. 그러고는 목적지를 향하여 열심히 이동하는 중간에 에너지가 떨어지고 몸이 지칠 때 만나는 곳이 우리나라이다.먼 길을 오고 가는 중에 요긴한 휴식처와 먹이처로 우리나라에 잘 발달되어 있는 갯벌을 찾는 것이다.

 

이 새들에겐 우리나라의 갯벌이 에너지를 보충하고 피곤한 몸을 쉴 수 있는 주유소이자 휴게소 같은 곳이다. 철새에게 한반도는 얼마만큼의 가치가 있을까? 그것은 휴식과 에너지이다. 적어도 한반도를 거쳐 가는 새들에겐 그러하다. 자동차를 운전하는 우리에게 주유소와 휴게소가 필요하듯 말이다.해가 석양빛을 드리우면 갯벌에서 배를 채우던 도요들은 종종걸음으로 밀물에 밀려 나와 방죽 아래 모래 언덕에 자리를 잡고 이리저리 날개를 다듬으며 하루를 정리한다. 한눈에다 담기에도 벅찬 새들이 각기 다른 표정으로 저 부드러운 백사장에 모여 있다. 번뜩 집에 가서 이불속에 잠을 청할 생각에 갑자기 마음이 바쁘다. 차에 몸을 싣고 갈 길을 서두르다 백미러 저 멀리 어둠 속에 작아지는 새들의 모습이 자꾸만 눈에 밟힌다. 먼 길에 지친 몸, 허기진 배를 채우느라 하루 동안 분주했던 몸, 이제 날개 사이에 머리를 묻고 단잠을 잘 것이다.그러고는 다시 길을 떠나겠지. ‘저 예쁜 녀석들을 다시 보려면 다시 한참을 기다려야 할 텐데.’ 아쉬움에 “잘 자라.”는 말이 툭 튀어나온다. 철 따라 번식지로, 다시 월동지로 이동하는 새들이 나에게 “여행자여 떠나라.”고, “연료를 부지런히 채우고 몸과 마음을 정비하여 때가 되면 안식처로 떠나라.”고 말한다. “이 땅은 그곳에 가기 위해 잠깐 동안 준비하는 곳”이라고 이야기해 준다. 새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빌려 하나님께서 들려주는 이야기를 올 가을엔 손주들과 아내와 사랑하는 이들과 같이 듣고 싶다.길 떠나는 새들을 통해 창조주께서 들려주시는 이야기를 같이 듣고 싶다. 동감하고 싶다. 새를 만나고 집에 오는 길 또한 설레는 길이다. 그곳에는 날 기다리는 가족이 있으니 말이다. 주유소에 들러 기름을 가득채운다.어두운 세상 속 나의 마음이 온전히 하나님께로 갈 수 있는 에너지. 사랑하는 이들과 같이. 평안의 항구에 도착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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