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천 명의 배고픈 군중을 앞에 두고 육즙이 흐르는 고기 패티 두 장에,
두꺼운 치즈 한 장의 더블빅맥 햄버거와 뽀글뽀글 거품이 솟는 콜라 잔을
양손 높이 치켜드시고 축사하시는 예수님을 상상해 보십시오.
군중 사이를 오가며 남은 햄버거와 음료 캔을 모으는 베드로와 안드레를
비롯한 열두 제자들을 그려보는 건 얼마나 유쾌한 일입니까.
패스트푸드나 탄산음료를 비하하려는 얘기는 아닙니다.
사실 여름날 오후, 갈증을 씻어주는 한 잔의 시원한 음료나 늦은 점심으로 한 끼를 깔끔하게 해결할 수 있는
햄버거 하나는 영양가를 떠나 더할 수 없는 효용성과 활력을 생활에 부여해 줍니다. 어쨌거나 안심하십시오.
다행히 예수님이 축사하신 음식은 모닥불에 구운 물고기와 거친 보리떡이었죠.
또 오병이어 기적의 초점은 우리 주님의 자애로움과 능력에 있지 음식의 종류에 있지 않으니까요.
장식적인 요소를 일절 배제하고 단순함과 간결함을 추구하는 예술과 문화적인 흐름을 미니멀리즘이라 합니다.
예술적인 기교나 각색을 최소화하고 사물의 본질만을 표현했을 때 작품의 리얼리티가 달성된다는 믿음에 근거합니다.
오래 보존하기 위해 방부제를 써야 하고, 예쁘게 보이기 위해 식용색소를 뿌리고, 달콤하게 하기 위해 인공감미료를
사용하는 요즘의 음식 분야가 정작 미니멀리즘이 도입되어야 할 곳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음식에 기교나 각색을 최소화하고 식재료의 본질만을 표현했을 때
곡식은 도정하지 않은 통곡물이 될 것이고 과일은 껍질째 날로 먹는 열매일 것입니다.
채소는 갖은 향신료로 숨죽이지 않은 신선한 채소 그대로일 것이며, 튀기거나 소금에 절이지 않은 생선일 거고요.
육류는 태우지 않고 살짝 구웠거나 삶은 고기 정도일 테죠.
어릴 적 어머니께서 보리쌀을 삶아 큰 대바구니에 널어놓으시던 기억이 납니다.
그땐 입안이 깔깔해서 먹기 어렵더니 요즘은 건강식이라고들 합니다.
채소, 산나물, 고구마, 보리, 현미, 잡곡, 해조류 등을 거친 음식이라 합니다.
거친 음식은 씹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식이섬유가 풍부해 많이 먹어도 칼로리 섭취량이 적고,
쉽게 배가 부르기 때문에 체중 감소에도 도움이 됩니다.
또한 질병을 예방할 수 있는 생리 활성물질이 풍부합니다.
미네소타 대학의 슬레빈 박사는 거친 음식과 암의 관계를 연구한 논문에서 거친 음식을 먹어야
위암 췌장암 대장암 같은 소화기 계통의 암 등이 예방된다고 보고했습니다.
하지만 거칠고 딱딱한 것보다 말랑말랑하고 부드럽게 씹히는 음식이 더 좋은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지방이 많이 들어 있어 입 안에서 사르르 녹는 아이스크림이나 케이크는 거절하기 어렵습니다.
신앙에 있어서도 그러한 듯합니다. 삶의 달콤하고 부드러운 면, 사랑, 기쁨,
평안엔 거부감이 없지만 모진 질고나 거친 광야는 견디지 못해 합니다.
내 욕망대로 단숨에 이뤄지는 기적을 원하고 고난을 마주해선 신뢰로 경주하지 못합니다.
인생의 부조리함을 믿음 안에서 수용하기처럼, 노력과 인내를 요구하는 것과 내 통제 안에 들어오지 않는
상황들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는 것은 거친 음식만큼이나 받아들이고 실천하기 어렵습니다.
번영과 긍정의 신학은 솔깃하지만 ‘십자가의 도’(고전 1:18)는 회피하고 싶어 집니다.
‘생각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한다’ 던 이는 폴 발레리였나요?
제겐 딱 맞는 표현인 것 같습니다. 믿음대로 살지 않으니 사는 대로 믿게 되더군요.
선택해서 먹지 않으면 습관적으로 먹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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