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곁을 떠나 본 적이 별로 없는 큰아이가 군에 입대하던 날, 훈련소에 데려다 주고 훌쩍거리는 아내를 달래며 돌아
나오던 내 심정은 참으로 형언하기 어려웠다. 늘 어린아이로만 보이던 것이 이제 국가의 부름을 받아 군인이 된다는
뿌듯함과, 조금만 힘들어도 엄살이 심한 철없는 것이 어떻게 고된 훈련을 견뎌낼지 걱정이 되는 안쓰러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머리를 짧게 깎고 입술을 깨문 채 제 엄마와 오랫동안 포옹을 하고“엄마, 잘 할게.”그리고는 쇳소리처럼 카랑카랑
한 훈련소 스피커에서 토막토막 떨어져 내리는 명령에 따라 집합 장소로 달려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따라가던 시선이
눈물로 흐려져 보이지 않을 때까지 아내는 내 손을 유별나게 힘을 주어 움켜잡고 있었다. 언제까지나 품안에만 있을 것
같던 자식이 떠나 버리는 것 같은 허전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비죽비죽 눈물을 훔치며 지내다가 100일이 지나
첫 휴가를 왔을 때,“엄마”하고 부르며 문에 들어섰을 때도 역시 오랜 포옹이 있었다. 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갔을 때,
예쁜 이름표를 가슴에 달고 엄마 앞에 자랑스럽게 섰을 때, 모두 붉은 동그라미가 그려진 시험지를 들고 자랑스럽게
엄마를 부르며 들어섰을 때, 길을 가다가 넘어져 살갗이 벗겨진 무릎을 들여다 보며 눈물 범벅이 되어 있을때,
복잡한 광주 시내 한복판에서 아이를 잃어버리고 애를 태우다 세 시간 만에 한참 멀리 떨어진 파출소에 가서 찾아 왔때,
마닐라에서 70킬로미터나 떨어진 비냥 시내의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시장 골목에서 딸아이를 잃어버려 노란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어지럼증을 참는데 아이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방긋 웃으며 나타났을 때,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의
그 허구한 발표회와 졸업식에서 사진을 찍었을 때, 그동안 얼마나 수도 없이 자식을 가슴에 안았던가!
우리 집에서는 식구들이 서로 포옹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다. 딸들은 밖에 나갔다 들어오면 할머니로부터 시작해서
엄마 그리고 나에게까지 한바퀴 돌아야 제 방으로 갈 수 있다. 요놈들이 커가면서 좀 형식적으로 하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다. 우리 집에서 포옹을 제일 좋아하는 사람은 누구보다도 어머니이시다. 내가 어디 출장이라도
가려고 나서면 무거운 가방을 들어 주시면서“이렇게 가방이 무거워 어찌 들고 간다냐, 내가 요 앞 사거리까지 이어다
주랴?”하시고 머리에 일 태세이시다. “괜찮아요, 어머니. 아들도 이제 많이 컸어요.”그리고 어머니를 안아드린다.
키가 아주 작은 어머니는 당신의 팔 길이보다 훨씬 더 뚱뚱하고 키가 큰 아들이 안아드리면“고맙네, 내가 기도 열심히
헐게, 잘 다녀오소.”하시며 당신도 아들을 꼬옥 안으신다. 막내가 어렸을 때라고 기억 된다. 한번은 제 엄마와 내 구두를
약칠해서 잘 닦아 놓았길래 엄마가 꼬옥 안아주며“막내야, 난 너 같은 딸 하나 더 있으면 참 좋겠다.”라고 하니까 저도
엄마를 빤히 쳐다보다가 눈을 반짝거리며“엄마, 나도 엄마 같은 엄마가 하나 더 있으면 좋겠어.”그리고는 자기도 엄마를
꼬옥 안고 있었다. 아이들을 안아주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일이다. 어머니는 당신처럼 손자들이 키가 작을까봐
아이들 머리 쓰다듬는 것도 주저하셨다. 머리에 손을 얹으면 키가 작아질까봐 그러셨단다.
대신 아이들을 많이 안아주셨다. 그래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세 아이 다 제 또래에 비해 작은 키는 아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조금 더 클 수 있다면 더 많이 안아 주고 싶다.
정이 드는 지름길, 신체적 접촉
정이란 사람이 함께 살아가면서 얼키고 설킨 정서의 축적 같은 것이다. 그래서 미워도 고와도 함께 살아오며 함께
부대낀 정서의 교감이 서로를 끌어안고 붙잡아 매서 떨어질 수 없게 하는 것이 정이다. 그것이 미운 정도 되고 고운 정도
되는 것이다. 정이 드는 지름길은 신체적 접촉이라고 말한다. 그중에서도 팔을 벌리고 심장이 뛰는 가슴과 가슴을 마주
대고 포옹하는 것이야말로 한아름 가득한 정이 서로의 가슴에 남는 것 아니랴. 크건 작건 자식을 품에 안는다는 것만큼
행복한 순간이 어디 있으랴! 아마 이 세상에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소중한 보배를 안고 있다는 만족감이기도
할 것이다. 가끔 아기 엄마들이 아기를 안고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무엇과 견주랴! 무엇과 바꾸랴!
'좋은글 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보여주기를 넘어서. (0) | 2023.08.14 |
---|---|
“찹싸알 떠억, 메미일 무욱”. (0) | 2023.08.13 |
함께 보내는 시간. (1) | 2023.08.11 |
짝 (1) | 2023.08.10 |
붕대는 언제나 상처보다 크다. (0) | 2023.08.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