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거리를 지나가다가 한 인상적인 장면을 보았다.
함께 달리고 있던 차들이 사거리 교차로에서 정지신호를 받아 멈추어 서 있을 때였다.
모두들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제일 앞에 서 있던 차에서 한 운전자가 내리는 것이었다.
사방에서 몰려드는 차들로 복잡하고 위험하기도 한 교차로였기에, 우리는 그의 차에 무슨 다급한 문제가 발생했는가
하고 관심 있게 지켜보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그는 자기 차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었다. ‘아니, 저 사람이 도대체 어디로 가는 거야?’우리는 호기심이 발동하여, 그가 가는 곳을 주시했다.
그리고 어렵지 않게 그의 목적지를 찾아낼 수 있었다. 그의 앞에는 좌회전을 하다가 교차로 가운데 멈춰 선 소형 트럭
한 대가 있었다. 그는 운전자에게 다가가 뭐라고 하더니, 트럭 뒤로 가서 힘을 다해 밀었다. 트럭은 서서히 움직이는가
하더니, 이내 거친 소리를 내며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그는 트럭 운전자와 손 인사를 주고받고는,
다시 자기 차로 성큼성큼 돌아오는 것이었다.
그때였다. 나는 그의 얼굴에서 피어나는 미소를 보았다. 잔잔하지만 깊이가 있는 미소였다.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도와주는 모습도 인상적이었지만, 그에 못지않게 그 미소가 나의 뇌리에 깊이 박혔다.
자기 만족의 기쁨이라고 할까, 자기 속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즐거움이라고 할까. 아무튼 그는 스스로 만족과 기쁨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사람들의 찬사나 박수 갈채도 없었지만, 그것들과는 상관없이 그는 스스로 기쁨을 누리고 있었다.
보여 주려는 치열한 노력
며칠 전에는 그와는 다른 뉴스를 하나 접했다. 신문을 넘기다가 한 여자 탤런트의 얼굴이 크게 나온 기사를 보았다.
연예계 정보가 부족한 필자 같은 사람에게도 안면이 있는 탤런트였다. 그녀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TV 시리즈
‘비버리힐즈’에서 많은 인기를 모은 미녀 배우였는데, 기사의 내용은 그녀의 인기나 미모와는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내용인즉, 그녀가 최근 인기를 잃으면서 그 상실감을 견디지 못해 알코올 중독에 빠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음주 운전으로 면허를 박탈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음주 운전을 하다가 적발되어 감옥에 갈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녀의 화려한 이력이나 외모와는 어울리지 않는 일탈된 삶을 보면서 떠오르는 단어가
하나 있었는데, 바로‘보여주기’라는 단어였다. 그리고‘보여주기의 비극’이라는 단어도 함께 생각이 났다.
우리는 종종 인기와 부를 쫓아, 자신을‘보여주기’에 몰두하는 인기인들을 볼 수 있다. 대중들의 기호에 맞추어 변신을
거듭하며, 그 무엇이라도 보여 주기 위해 혼신을 다 바치는 경우들을 흔히 본다. 그러는 동안 자신의 가슴속은 점점
더 비어가고 자기 정체성마저 잃어가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 정신없이 달려가는 안타까운 모습들을 접하곤 한다.
아마도 그들은 거기서 기쁨이나 만족 같은 것들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래도 그들이 인기를 누릴
때는 괜찮아 보일지 모른다. 그때는 대중들의 환호와 찬사 그리고 박수 갈채의 힘으로 버틸 수 있을지 몰라도, 인기마저
잃어버리고 나면 그야말로 고립무원이다. 텅 빈 가슴속으로 찾아드는 공허는, 그야말로 삶을 암흑투성이로 만들 뿐이다.
물론, 그러한 일들은 일부 사람들에게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특별히‘남들에게 보여주기’를 중요시 여기는
한국인들에게는 어느 정도 보편화된 현상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래서 교차로에서 만난 사람의 미소가 더욱 인상적으로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화려하지도 않고 박수 갈채도 없었지만 스스로 만족을 누릴 줄 아는 삶,
아마 그것은 진정 삶을 이해하는 사람들만의 몫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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