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자 대니엘 길버트는 사람들의 그릇된 통념이 오히려 사회 전체에 유익을 가져오기도 한다고 지적하고
두 가지 실례를 들고 있다(Daniel Gilbert, Stumbling on Happiness, 2007). 그 하나는 결혼하면 애를 갖는 것이
더 행복해질 것이라는 믿음이다. 그러나 한 조사에 따르면 아이가 없는 신혼 초나 아이들이 다 출가한 후인
노년기에 결혼 생활이 더 행복하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통념 때문에 애를 갖게 되고 세대가 대를 이어 간다.
또 다른 예로는 부(富)에 관한 통념이다. 우리가 어떤 재화를 소비할 때 소비하면 할수록 이로부터 얻는 만족도가
점점 낮아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소위 한계 효용 체감의 법칙이 작용한다.
예컨대 사과를 먹을 때 한 개씩 더 먹을수록 마지막 한 개로부터 얻는 만족도가 그전에 비해 감소하는 것을 누구나
경험할 것이다. 그런데 돈의 경우는 위의 사과와 달리 많이 벌면 벌수록 돈에 대한 욕심이 수그러지지 않고 오히려
커진다는 것이다. 부자들이 더 짜다는 말을 흔히들 하는데 일리가 없지 않다.
사상 유례없이 갑부였던 록펠러도 그의 마지막 소원이 돈이 좀 더 많았으면 했다지 않은가?
그러고 보면 성경에 나오는 가난한 과부가 아마도 그녀의 전 재산이었을지 모를 몇 푼의 동전을 성전에 바친 것이
부자들이 십일조를 내는 것보다 덜 부담스러웠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돈을 살만큼 벌면 그만 벌어야겠다는 것이 아니라 재산이 불면 불수록 더 벌고자 하는 욕심 때문에 사회
전체가 유익을 얻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욕심 때문에 기업들은 질 좋은 상품을 더 싸게 팔 궁리를 하고,
소비자들이 좋아할 신상품을 개발코자 밤낮을 가리지 않고 땀을 흘리는 것이 아닌가?
그 결과로 일자리가 늘고 소득이 늘어나 우리는 더 풍요로운 삶을 누리게 된다.
오늘날 대부분의 상품과 서비스가 시장을 통해 거래되는 시장 경제의 운영이 이와 같은 부에 대한 다다익선
(多多益善)의 태도에 힘입고 있다고 하겠다.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부자나 대기업들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일부 젊은이들은 특히 재벌들에 대해 지나치게 부정적이지만 내심으로는 대기업에 취업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이런 부에 대한 네거티브 반응은 주변의 상당수의 부자가 돈을 모으게 된 과정이 다소 구린(?) 탓에
기인할 것이다. 그간의 고도 성장 과정에서 정경 유착에 의한 특혜나 부동산 투기 등으로 단기간에 졸부가 된 경우가
흔치 않았던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재벌들이 탈세, 배임, 재산 유출, 불법 상속 혐의 등으로 지상에 회자하는 것을
보아도 알 일이다. 옛 시골 부자들은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 저녁 늦게까지 땡볕에 일하기 일쑤였고,
어떤 이는 출타 중에도 자기 집에 돌아와서야 소변을 보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니, 이런 사람들이 잘 사는 데 대하여
배가 아파할 자가 없었을 것이다.
미국 제일의 억만장자 빌 게이츠만 하더라도 자신이 좋아했던 일에 몰두하고 그 열심이 일반 소비자들의 욕구에
부응하면서 기대하지 않았던 부를 축적했고, 지금은 매년 40억 달러 규모의 거액을 세계적인 보건 및 교육 사업에
기부하고 있다. 앞장서서 상속세를 오히려 올려야 한다고 외치는 오늘날 미국의 부자들에 비해 아직 기어 다니는 손자를
위해 막대한 재산을 상속하느라 추태를 벌이는 우리 사회의 일부 부자들에게 눈살을 찌푸리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뒷골목 식당을 하더라도 어찌하면 이익을 더 남길까 하고 반찬을 짜게 한다든가, 부정 식품을 쓴다든가, 음식 양을 줄이는 등 ‘잔머리’를 굴리고 있다면 결코 존경받는 부자가 될 수 없을 것이다. 반면에 배고픈 사람들에게 듬뿍듬뿍 퍼 주며 맛있게 먹는 손님들을 보는 것이 낙이라는 욕쟁이(?) 할머니 식당은 기대 이상으로 성업 중이지 않은가?
미국의 911 사태 때 불타는 건물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뛰어나오는 사람들에게 이때야말로 한몫 잡을 때라고 생각했는지 생수 값을 배나 올려 받은 어떤 한국 가게에 대하여 '추한 한국인’이라고 쓴 신문 기사가 있었다는데,
돈이 그렇게도 좋았던가 묻고 싶다. 단적으로 설이나 추석 대목 때만 되면 기어오르는 물가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미국의 경우 쇼핑하기 제일 좋은 때가 크리스마스 때라고 하던데…. 결국 돈을 목적으로 삼아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추구하기 보다는 자신이 하는 사업에 열중함으로써 소비자들이 유익을 얻게 될 때, 즉 봉사를 통해서 ‘저항 없이’
얻게 되는 재산이 진정으로 선하다고 할 것이다.
돈을 사랑하는 것과 돈이 봉사의 대가로 얻어진다는 것을 아는 것은 크게 다르다.
우리 사회에도 더 많은 부자가 존경받는 때가 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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