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질서 상황을 보면 그 누구도 현재 우리 앞에 전개되는 다양한 사건의 결말을 예측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어쩌면 이런 상황을 성경 말씀은 하늘의 질서가 흔들리기 때문으로 본다(누가복음 21장 26절).
정치, 군사, 경제, 사회, 문화, 심지어 종교조차도 혼란을 가중시키는 듯이 보인다. 이런 중에서도 한 가지
분명하게 공식화되어 가는 것은 주변의 가시적인 현상은 세상을 점점 더 오리무중으로 빠져들게 만드는
불확실한 미래가 인류의 운명을 그늘지게 만드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세 유럽의 기독교의
타락과 박해는 많은 우려스러운 사건 가운데서도 사실상 가장 관심을 끈 지울 수 없는 역사였다. 그 한 예가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의 기독교인들에 대한 화해 정책에 의해 이교도들과 크리스천들을 융화시킴으로 그간의 혹독한
박해에서 해방시키는 빌미로 삼았지만 그 결국은 기독교회의 타락을 가속화시킨 것이다. 중세 유럽의 종교 암흑기
동안 로마 가톨릭의 교권주의와 배타적인 신앙 질서는 수많은 동료 기독교도들을 종교 재판에 회부하여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한동안 폐쇄와 공포의 교권 정치로 유럽을 호령했던 가톨릭교회를 대항하여 단행한 마르틴 루터의
종교 개혁으로 인간의 이성이 해방되고 자유의 열망이 횃불처럼 활활 타올랐지만, 이후 구교와 신교도들의 타협과
타락의 가속화를 막지는 못했다. 오늘날 기독교의 가장 큰 문제는 여전한 교권주의 병리 현상이다.
사제와 성직자들만이 갖는 평신도를 향한 예전권, 강단권, 행정권, 심지어 축복권과 저주권 등은 수많은 근대
기독교도에 대한 신뢰도를 하향 평준화시키고 있다. 선량한 신자들의 순수한 구원의 열망이 물량주의, 개교회주의,
성공주의, 성장주의, 독선주의, 차별주의, 교회 세습화, 더 나아가 구식 교조주의 등의 혼합 기복 신앙의 오랜
전통으로 사실상 초기 사도 교회의 순수성을 회복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태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 추구에 기반을 둔 국민의 기본권 중 하나인 종교의 자유가 포함된 자유권과 평등권마저 스스럼없이
침해하는 이단 감별사들의 비성경적 교조주의 행동 역시 기독교 공동체를 성직권 유지를 위한 전투장으로 변질
시키고 있다.여기에다 세계 기독교의 통합 운동과 다원주의 신앙 사조와 전망은 차츰 전통적인 성경 말씀에서 떠나
마치 혼탁한 시대를 대변하는 듯, 경건한 그리스도인들의 신앙 양식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곤 한다. 성경은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혼(창세기 1장 27, 28절; 2장 18절)이 창조의 원칙이었으나, 근래에 이르러 인간의 기본권인 자유와 행복
추구권을 빙자하여 한 여자와 한 여자, 한 남자와 한 남자 사이의 결혼도 합법화시키므로 기독교 본래의 전통적인
결혼관에 혼란을 불러왔다. 진보적인 가톨릭의 보수적인 수장인 제266대 교황 프란체스코는 미국의 보수 성향의
한 추기경을 작년 전격 교체했다. 그 이유인즉 교황이 결혼은 한 남자와 여자 사이에 있는 일임을 강조할 뿐 아니라
결혼은 남자와 여자 사이에 있는 것임을 반복해서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한 발언이 교황에게 도전하는 듯 했다는 것이다.
근래에 한국에서도 남자 연예인들이 동성 결혼을 추진하고 혼인 신고를 시도하였다. 물론 한국의 법은 동성연애를 인정하
지 않지만 이미 미국의 8개 주와 유럽의 11개 나라가 동성 결혼을 합법화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동성도 가족을 구성할
권리를 법으로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 기독교가 편승하므로 하나님의 절대 사상을 신봉하고
설파하는 종교가 아니라 인간의 필요를 충족시켜 주는 하나의 가변적 문화 집단으로 비쳐지곤 한다. 많은 성직자가 성경
말씀에 근거하여 설교하고 강론하지만 정작 성경이 세속화 시대에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한
종교(디모데후서 3장 16절)강령으로 받아들여지기를 포기한 지 오래된 것 같다.
과연 인류의 불확실한 미래를 누가 밝게 하며, 길을 잃은 인류에게 누가 정도를 제시할 것인가?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많은 종교가 정치 시류에 편승하고, 세속화에 앞장서서 빗장을 열지만, 우리 주변에는 변함없이 시대의 횃불인 성경에서
인류의 운명에 대한 해답을 찾는 자들이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증거를 가진 경건한 백성들이 있다
(출애굽기 2장 3~17절; 요한계시록 12장 17절). 성경 상 제칠일 안식일을 준수하고(창세기 2장 1, 2절; 출애굽기 20장
8~11절), 철저히 정교 분리 원칙을 고수하며(누가복음 20장 25절),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만이 인간의 죄를
용서하고(갈라디아서 6장 14절; 히브리서 13장 12절), 그분의 부활만이 소망 없는 인류를 위한 진정한 소망이며
(고린도전서 15장 42절), 재림만이 인류의 참희망으로 받아들이면서(요한계시록 22장 20절), 그분을 만나기 위해
자신들의 육체마저 정결하고 거룩하게 유지하고자 음식물도 가려 취하며(레위기 11장, 민수기 12장; 고린도전서
6장 19절; 10장 31절) 성경 말씀을 높이는 경건한 그리스도인들이 있다. 사실상 그들이 불확실한 미래를 밝게 하는
마지막 시대에 본받을 만한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이며, 그들이 믿는 종교가 어쩌면 혼탁한 근대 종교 질서의 한 대안과
모델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성경은 시대마다 이런 자들을 두었으며, 그들을 일컬어 좁은길로 가는 남은 자들이라고
말한다(마태복음 7장 13, 14절; 로마서 9장 27절). 희망은 큰 무리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작은 신실한
무리들에게 있다. 내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있는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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