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와 펀드매니저의 대결
TV, 신문 등을 보면 ‘일만 열심히 해서는 돈을 모으기 힘들다.’, ‘돈을 잘 굴려야 한다.’, ‘능력 있는 전문가에게 돈을 맡겨야 한다.’라면서 자신의 회사나 상품을 광고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과연 시장을 능가하는 능력 있는 금융 전문가는 존재하는 것인가? 이는 재무학계에서 수십 년간 치열하게 대립하고 있는 논쟁거리다.
월스트리트에서는 2000년에 ‘원숭이와 펀드매니저의 대결’이라는 재미있는 실험이 있었다. 원숭이는 주식 종목이 적힌 다트판에 다트를 던져 주식을 고르고, 펀드매니저는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총동원해 주식을 골랐으나 10개월 후에 수익을 측정한 결과 펀드매니저의 성과가 원숭이보다 10퍼센트나 뒤졌다.
2013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유진 파마 교수는 효율적 시장 이론의 창시자이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주가는 모든 이용 가능한 정보를 이미 신속하게 모두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전문가라고 하더라도 시장의 정보를 분석해 시장을 초과하는 수익은 달성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파마 교수는 2010년 ‘Luck versus Skill in the Cross-Section of Mutual Fund Returns’라는 ‘운과 기량에 대한 논문’에서 우리 눈에 우수한 수익률을 올린 것처럼 보일지라도 운(Luck)이라는 요소를 빼면 시장을 능가하는 기량(Skill) 있는 펀드는 거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동전 던지기
1990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윌리엄 샤프 교수는 다음과 같은 좀 더 쉽고 재미있는 비유를 사용하였고 이 비유는 MBA코스에서 단골 강의 주제로 다루어졌다고 한다. “금융 전문가들의 주가 예측은 동전 던지기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에 많은 사람을 모아 놓고 동전 던지기를 시켜 보자. 연속해서 앞면이 2번 나오는 사람도 있고, 앞면이 연속해서 10번 나오는 사람도 있다.” 이 비유를 금융 시장에 연관 지어 보면 우리가 누군가에게 돈을 맡기면 운이 별로 없어 평범한 성과를 내는 사람들도 있는가 하면 운이 좋아 우수한 성과를 내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들이 게임을 하건 가장 바보 같은 사람들이 게임을 하건 간에 언제나 게임의 승자와 패자가 있는 것이 게임의 속성이라는 것이다. 결국 논쟁의 핵심은 운(Luck)이 좋아 우수한 성과를 내는지 기량(Skill)이 좋아 우수한 성과를 내는지를 분리해 낼 수 있는가인데 이는 만만한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사회 과학 분야에서는 모든 요인을 통제한 반복 실험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펀드를 운용하는 능력이 있는지 제대로 검증하고자 한다면 운이 좋아 잘하는 것인지 기량이 좋아 잘하는 것인지 알아보기 위해 아주 오랜 검증 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파마 교수와 샤프 교수의 주장에 따른다면 누군가 우리에게 돈을 많이 벌어 줄 수 있는 능력 있는 전문가가 있다고 투자를 권유할 때 현혹될 필요는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투자를 통해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는 영 오지 않는 것인가? 정말로 실력 있는 펀드매니저는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워렌 버핏의 비유
투자의 귀재로 알려진 워렌 버핏은 위의 이야기를 반박하는 재미난 비유를 들었다. 이 비유는 우리나라에 <죽은 경제학자들의 만찬(The Myth of the Rational Market)>이라는 책에 소개되어 있다. “온 국민이 동전 던기기 게임에 1달러씩 들고 참여한다면 200회 던지기 후에 215명이 살아남아 백만장자가 될 것이다.
효율적 시장 이론을 믿는 교수들은 동전 던지기 게임을 오랑우탄에게 시켜도 똑같은 결과가 날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215마리의 승자 중 특정 동물원에 살고 있는 오랑우탄이 40마리라는 사실을 발견했다면 당신은 뭔가 비밀이 있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바로 그 동물원에 가서 오랑우탄이 뭘 먹고 무슨 운동을 하며 무슨 책을 읽는지 알아보려고 할 것이다.” 워렌 버핏의 말은 상당히 그럴싸하다. 효율적 시장 이론을 강하게 지지하던 마이클 젠센이라는 저명한 교수도 워렌 버핏의 영리한 비유에 도무지 반론을 펼 수 없었다고 한다. 버핏은 비유를 통해 능력 있는 펀드매니저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또한 평범한 시선으로 바라보면 우연처럼 보이는 것들도 좀 더 주의 깊게 바라본다면 필연의 결과임을 알아챌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워렌 버핏의 비유에 반론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투자를 시작하기 전에 기량 있는 펀드매니저를 골라야 돈을 벌 수 있는 것이지 사후적으로 누가 승자였는지를 인식하는 것은 돈을 버는 데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반론이 가능하다. 기량 있는 40마리의 오랑우탄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한들 평범한 사람들이 동전 던지기 게임이 시작되기 전에 수백, 수천만 마리의 오랑우탄 중에서 기량있는 오랑우탄을 찾아낼 확률은 0에 가깝기 때문이다.
필자는 ‘운과 기량’ 논쟁이 영원히 결론이 나기 힘든 거대한 주제이기에 어느 한쪽을 지지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좀 더 열린 마음으로 유연한 사고를 해야겠다는 교훈을 배운다. 어렸을 적 초등학교 산수 시간에 선생님이 어둠상자 놀이를 통해 덧셈을 가르쳐 주셨다. ‘어둠상자에 2를 집어넣었더니 4가 튀어나왔습니다. 어둠상자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요?’
그 당시 답은 ‘+2’였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답이 하나 더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다름 아닌 ‘×2’이다. 인간에게 어둠상자를 볼 수 있는 능력이 없는 한 그 속에 ‘+2’가 들어 있는지 ‘×2’가 들어 있는지 논쟁하는 것은 참 어리석은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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