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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을 춤추게 하라!

by 은빛지붕 2023. 11. 20.

 눈을 뜬 그는 거실로 나가 음악부터 틀었다. 몸이 절로 들썩여 지는 신나는 음악이었다.
“자, 모두 일어나 춤을 춥시다! 춤을 춰요!”
그는 음악에 맞춰 요란하게 몸을 흔들며, 이 방 저 방 두들겼다.
“아이고, 저 녀석 때문에 아침잠도 제대로 잘 수가 없으니.”
아버지와 어머니는 졸리는 눈을 비비며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새벽 5시, 예전 같으면 아직 잠자리에 있을 시각이었다. 아버지의 사업실패와 어머니의 암 수술로 집안은

수습하기 힘겨울 정도로 암흑천지였다. 당시 그는 고 3이었고, 어두운 집안 분위기가 싫어서 자꾸만 겉돌았다.

학교에 가지 않고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고, 수업하다가도 몰래 빠져나오고…. 중 3인 여동생도 가족보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더 길었다. 학교 측에서는 연신 말썽만 부리는 그가 다른 학교로 옮겨 가기를 원했다.
“사람은 넘어진 자리에서 못 일어서면 다시 뛸 수 없습니다. 이 애한테 기회를 주십시오.” 아버지는 끝내 전학만은

갈 수 없다고 버텼고, 가까스로 졸업장을 받을 수 있었다. 졸업 후, 다른 친구들은 대학에 진학했지만 그는 군에 입대했다. 군대를 다녀와야 뭐든 새로이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버지 말대로 새로 일어나 뛰려면 넘어진 자리에서 먼저 일어나는 것이 우선이었다. 군대에 있는 동안 성격을 바꾸기 위해 춤을 배웠다. 그런데 워낙 몸치인 탓에 남들은 식은 죽 먹기인 허리 돌리기 한 번에도 내무반이 들썩거렸다. “야, 인마! 너처럼 춤 못 추는 놈은 처음이다.”
“그 실력으로 장기 자랑 나가면 인기상은 따 놓은 당상이다.” 오히려 그의 형편없는 춤은 인기를 독차지했다.

그러다 보니 집에 있을 때는 하루 종일 입 한 번 안 열던 그가 ‘떠버리’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성격이 바뀌었다.
그리고 제대 후, 그는 아침마다 온 집안이 떠나갈 듯 음악을 틀었다. 그가 가족을 위해, 잃어버린 활기를 되찾기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노력이었다. 표정이 어두운 아버지 앞에서 손과 발을 흔들며 춤을 추고, 무거운 몸을 간신히

일으키는 어머니는 손을 붙잡고 함께 깡충깡충 춤을 추었다. 여동생이 그를 도와주었다.
“아빠, 엄마, 춤 춰 보세요. 처음에는 어색하지만 추다 보면 정말 재미있어요.”
 아버지, 어머니는 처음에는 어안이 벙벙해했고, 얼마 후에는 어이없어 하시더니 나중에는 마지못해 손과 다리를 흔들며

춤추는 시늉을 했다. 가족 모두 지독한 몸치였다. 뻣뻣한 몸을 흔드는 모습을 서로 바라보다 웃음보를 터뜨리고는 했다.

그렇게 집안에는 촛불 같은 활기가 서서히 되살아나고 있었다.
오늘 아침이었다. 그는 다른 날보다 늦게 눈을 떴다. 어젯밤에 늦게까지 아르바이트를 한 탓에 늦잠을 잔 것이다.

그런데 안방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슬그머니 문을 열고 방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터지려는 웃음을 간신히 참았다. 아버지가 싫다고 버티는 어머니 손을 붙잡고 춤을 추고 있질 않은가. 나무토막처럼 뻣뻣한 춤이었다.
“아이고, 왜 싫다는 사람 붙잡고 춤을 추는 거야?”
 어머니는 싫다면서도 아버지가 이끄는 대로 손과 발을 움직이며 몸까지 들썩였다.

나무토막 두 개가 음악에 맞춰 춤추는 것 같았다. “아, 조용히 해요. 저 녀석 늦게 자서 더 잘 텐데 우리라도 숙제를 해

할 것 아니오.” 아버지는 늦게 잠든 아들 대신에 음악을 틀어 놓고 어머니를 붙잡고 춤을 추고 있었다.

아들 대신 꼭 해야 하는 숙제를 하듯이. 그는 보았다. 아버지와 손을 잡고 춤을 추는 어머니 얼굴에 피어오르는 환한

미소를. 그리고 아버지도 웃는 어머니 얼굴이 보기 좋은지 더 우스꽝스러운 몸짓으로 춤을 추었다. 엉성해서 더 웃음이

터지게 하는 춤이었다. 크게 웃는 어머니의 웃음소리. 참으로 오랜만에 듣는 종소리 같은 소리였다.
“성공이다!” 그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아버지 말대로 다시 뛰기 위해 넘어진 자리에서 일어서야 할 사람은 그만이

아니었다. 가족 모두였다. 넘어진 자리에서 일어서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새로 시작하겠다는 결심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아버지, 어머니를 방해하지 않으려고 다시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누운 채로 몸을 흔들며 흥겹게 춤을 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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