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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왔다

by 은빛지붕 2024. 5. 14.

아내가 서울에서 내려오면 나는 아내가 머무는 한달 동안을 긴장 속에서 산다.

한달 동안 서로가 최선을 다하기로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아내는 완전한 도시여자고 나는 두 말 필요 없는 시골촌놈이다.

그러니 근본적으로 정서가 잘 안 맞다. 그래도 아내와 나는 전쟁 같은 46년을 함께 살았다.

아내도 똑 같은 감정일진 몰라도 한달 걸러 한 번씩 만나는 요즈음의 우리 부부생활이

주변이 다 부러워해 마지 못하는 최상의 부부생활이라고 자부하며 살고 있다.

한 달 동안 영혼이 자유롭다. 내 하고 싶은 것들을 아무도 시비를 걸지 않으니 너무 편해

죽을지경이다. 때가 되어 식사 준비라도 할라치면 손톱만큼 아쉬운 점이 설핏 들기도 하지만

냉동고에 차곡차곡 쌓아 놓은 식재료들을 하나씩 빼먹는 재미는 아무도 모를거다.

혼자의 삶이 이렇게 홀가분한지 처음엔 몰랐다.

 

나이들면 남자는 삭신을 뉘이고 안주하고 싶어 안으로 안으로 파고들고 여자들은 그 동안

억눌린 남편의 시중에서 벗어나 밖으로 하늘로 훨훨 날고 싶어하는 걸 퇴임하고 반 년 쯤

지나 알았다. 완전히 정반대방향의 삶을 추구하고 있으니 서로를 존중하지 않으면 저절로

황혼이혼으로 가기 십상인 세월이다.그래서 반백년을 정서적 충돌로 살아 온 우리부부로서는

대타협의 시기가 필요했고 그 결과 아내의 시골 한 달 살기가 시행 되고 있는 것이다.

나도 어느 정도 자생력을 성취했고 아내도 봄바람에 나비처럼 잘도 날아 다닌다.

 

남색의 트렁크를 끌고 선글라스를 낀 아내가 역에서 나온다. 다 늙어가면서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트렁크를 얼른 받아 습관처럼 트렁크에 밀어 넣는다. 아이들 별일 없지? 별일 없어?

하고 동시에 안부를 묻는 것 외에 별로 할 말이 없다. 나이들면 소재마져 각질처럼 메말라 딱히

할 말이 없다. 언젠가는 대화법을 뜯어 고쳐 아기자기하게 다양한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나가야지

하지만 막상 만나면 말이 목구멍으로 쏙 들어간다. 남들은 신혼때처럼 낯 간지러운 소리도 잘도

하면서 산다는 데 우리부부는 체질상 그게 용납이 안된다. 요상한 게 남들에게는 속을 빼줄듯이

잘 하다가도 아내의 얼굴만 보면 생각이 복잡해진다.

에이아이로도 풀지 못할 복잡한 서로에 대한 감정의 회로가 얽히고 섥혀 말문이 막힌다.

 

차창에는 봄빛이 연두의 세상으로 물들고 형산강의 물줄기가 동해로 동해로 흐르고 있었다.

옆을 힐끗 보니 봄바람에 아내의 헤어스타일이 좀 달라져 있었다. 짧게 깎은 머리에 자글한 파마

였다.머리가 좀 이상하네! 너무 짧은 거 아니야! 봄바람이 침묵을 한다. 한참 있다 고개를 돌리더니

언제는 또 짧은 머리가 좋다더니! 쳇! 아풀사! 요놈의 말이 또 핀트를 이탈하고 있었다.

아니 이 번엔 파마가 아주 잘 나왔다구! 재빨리 수습의 언어가 뒤따랐으나 아내는 별말이 없다.

입가에 맴도는 아기자기한 말들이 간지럽게 노닐고 있지만 그 말이 입에서 뱉어지지는 않았다.

 

아버지가 경주파 18대 종손이었다. 완고한 성정으로 일문중을 다스리기도 하셨지만 가정에도

그 엄격한 룰이 적용되어 어머니나 우리 남매들이 독안에 든 쥐처럼 통제 받으며 살았다.

그러니 나의 성격도 지금 와서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 정서와 그 지혜와 그 통속을 벗어나지

못하고 결혼후에도 늘 독단적이고 마구 칼을 휘두르는 서툰 칼잽이처럼 아내의 앙가슴을

휘저어 왔다고 느꼈다. 지금은 후회에도 소용없지만 50여년 결혼생활에 켜켜이 쌓인 아내의

피딱지 같은 상처를 하루 아침에 녹일 수는 없었다. 그래서 늘 아내에게 속죄하는 죄인처럼

살고 있지만 굳어진 상처는 쉽게 풀릴 것 같지는 않다.

 

서울이 고향인 아내는 서울집과 시집인 경주집을 한 달 간격으로 오가며 산다. 이런 식으로

살기로 합의한 것도 일년을 싸워서 겨우 이룩한 둘의 업적이었다. 아내는 내려오면 별로 아는

사람이 없다.그래서 늘 답답하다고 한다. 집성촌이라 나가서 어울리면 10촌 안팎이 수두룩하다.

하지만 정서와 나이탓으로 체질에 맞지 않는다고 아예 접촉을 꺼린다. 그리고 이곳에는 친구도

자매도 혈연이 없다. 나야 이곳 태생이니 모든 일상이 그져 자유롭다. 어릴 때 태어난 집에서

살고 나가면 친구들이 수인사를 보내고 늙어진 숙모들을 껴안으며 위로도 할 수 있다.

아내는 시골에 내려오면 외로운 섬에서 사는 것 같아 가슴이 답답하다고 한다.

이래서 우리는 한 달 걸러 한 달씩 살기로 했다.

 

텅빈 냉동고를 보며 늙어가며 먹기는 되게 먹네하는 눈길을 보내는 아내의 눈초리에 주춤

했지만 그래도 서방을 위해 한 달 동안의 음식을 준비하고 서울에서 꾸미꾸미 가져온 재료들을

차곡차곡 정리하는 아내를 보면 그 동안의 앙금은 눈녹듯이 사라지고 그만 와락 껴안고 싶은 충동

마져 주책을 부린다. 저렇게 실낱 같은 사랑이 흐르고 있으니 지금까지 이 가문을 지키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슬그머니 뒤로 돌아 구수한 두유 한 잔을 마신다.

 

그래, 한 달 동안 최선을 다해 아내에게 사랑을 하자, 시종처럼 아내를 모시자.

부드러운 말과 최대한 인자한 얼굴로 아내를 바라보자. 3년 군대생활도 견뎠는데 한 달이야

누워서 식은 죽 먹기 아니던가. 한 달후면 또 한 달의 영혼의 자유가 찿아 올 것이 아닌가.

 

" 식사하세요 ~"

아내의 목소리가 단술처럼 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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