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렸을 때 내가 굉장히 똑똑한 줄 알았다. 암기력이 좋다며 어머니는 툭하면 나를 천재라고 하셨고 아버지도 나를 기특하게 여기셨다. 초등학교 2학년 때엔 전교 일등상까지 타 보았다. 지금 생각하면 2학년 짜리가 무얼 그리 잘했다고 전교생 앞에서 상을 다 주었나 싶다. 사실 전교생이 60명 정도밖에 안 되는 대전삼육초등학교였다. 하여튼 그날 이후 나는 내 자신을 마음대로 과대평가하기 시작했고 공부라면 문제없다는 자만심까지 생겼다. 그런데 그 이후로 우등상을 한 번도 못 타 보았으니 초등학교 2학년 때 받은 상이 나의 긴 학습 시절에 있어서는 정점이 아니었나 싶다.
아직도 가까운 친지들은 내가 자만한다며 은근히 비판하는데 사실 내가 똑똑하다는 착각은 고등학교 때 확실하게 깨졌다. 나의 IQ(지능 지수)를 알게 된 것이었다. 그 수치는 천재와는 너무 거리가 멀었다. 가뜩이나 운동도 못하고 수줍어서 여학생들의 인기도 못 끌던 처지에 IQ까지 별로라는 사실은 나에게 치명적이었다. 나는 곧 우울해졌고 ‘힘든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까?’ 하고 한숨만 쉬며 낙심했다. 의사가 되려면 백인일 경우 IQ가 적어도 110은 되어야 한단다. 내가 백인이었으면 머리가 나빠서 의사도 못할 뻔했다. 다행히 동양인은 IQ가 103만 넘으면 되는데 1 그러고 보니 나는 턱걸이 지능으로 의사가 된 셈이다. 동양인은 머리가 좀 덜 좋아도 끈기와 노력으로 의사가 된다는 통계이다.
인센티브로 약발이 먹힐까?
에들런드(Edlund)라는 학자는 평균 IQ가 79밖에 안 되는 아동을 상대로 색다른 방식으로 시험 문제를 내어 보았다. 문제를 맞출 때마다 사탕을 하나씩 준 것이다. 그랬더니 평균 지수가 97로 올라 갔는데 18점이나 차이가 나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2 이 아이들의 문제는 나쁜 머리가 아니라 노력의 부족이었고 시험을 잘 쳐 보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던 것이다. 왜 어떤 아이들은 알아서 시험을 열심히 치는데 다른 아이들은 안 그럴까? 평생 그들을 따라다니며 사탕이나 다른 보상으로 자극을 줄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만일 사탕을 평생 줄 수 있다 해도 이러한 보상 시스템은 더 큰 문제를 가져다 준다는 것을 현대 심리학이 알려 준다. 보상 심리에 대한 연구 내용들을 잠시 살펴보자.
헌혈 참여를 늘리려고 돈을 조금씩 주면 기증자는 오히려 줄어든다.3 상을 주어 가며 그림을 그리게 한 아이들을 일주일 후에 살펴보면 자유 시간에 남보다 그림을 덜 그린다. 원숭이도 건포도를 주면서 문제 풀이를 유도하면 실수가 많아지고 문제를 풀려는 관심도 줄어든다. 1999년도에 대시라는 학자는 보상 심리에 대한 128개의 연구 내용을 요약해서 결론을 내렸는데, “물질적인 보상은 인간 내적 동기에 상당히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라고 주장했다.4
몇 년 전 프라이어(Fryer Jr.)라는 하버드대 학자는 7천 5백만 불이나 되는 연구 자금을 가지고 뉴욕 학교 시스템을 고쳐 보려고 달려들었다. 그는 학생부터 선생, 학부모들까지 모두 적용되는 인센티브 프로그램을 만들고 학교 실적 향상을 도모했다. 자녀를 잘 돌보는 학부모에게는 돈을 주고, 교사에게는 보너스 그과는 실패였다. 2011년도에 프라이어 교수는 이 연구를 마감하면서 이러한 인센티브나 보상 제도에는 좋은 결과가 하나도 없다고 발표했다.
보상 제도에 이러한 문제가 있다면 똑똑해야만 인생이 성공하는 것인지 한번 살펴보자. 스탠퍼드 대학의 털맨 교수는 1920년도에 IQ 140 이상의 수재 1,470명을 뽑아 그들을 평생 쫓아다니며 종단적 연구를 통해 인지 지능과 인생 성공에 대한 연관성을 알아보았다.
자신이 사망한 해인 1947년까지 이 아이들이 살아가는 과정을 자세히 연구했고 그동안 기사 수백 개와 <영재들의 유전 연구(Genetic Studies of Genius)>라는 책을 4권이나 써 냈다. 평균 IQ가 157이나 되는 이 아이들의 삶은 얼마나 화려했을까? 그런데 털맨 교수는 마지막 결론을 내리면서 “지능과 성취의 연관성은 거리가 참 멀다.”라며 씁쓸해했다. 똑똑한 영재들의 삶 역시 보통 사람들과 차이가 없었다.
털맨 교수가 죽고 난 이후에도 학자 수백명이 이 사람들의 삶을 계속 관찰하며 연구하였다. 만족한 삶, 즉 성공을 좌우하는 것이 IQ와 무관하다면 과연 무엇이 진정한 성공의 비결인지 찾아내야 했다. 80년 세월 동안 수집한 자료를 분석하여 얻은 방대한 결과를 프리드먼(Friedman) 교수가 2012년도에 <The Longevity Project>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간했는데, 행복과 만족한 삶의 비결은 타고난 지능, 성격, 신체적인 조건 그리고 물질적인 환경이 아니라 단순한 성실성(conscientiousness)이라고 그는 말한다. 양심적으로 열심히 노력하며 사는 사람들이 행복하고 건강했으며 장수했다는 것이다.
다른 많은 연구 내용도 웰빙의 비결을 성실성이라고 말한다. 바릭이라는 학자는 지난 100년 동안 유능했던 비즈니스 지도자들을 분석했는데 그들은 모두 성실하였다. 로버츠, 세겐 교수들의 연구 내용도 성실성이 우리를 건강하게 해 주고 모든 면에 만족감과 성취감을 가져다준다고 말한다.
무엇을 칭찬해 줘야 할까?
성실함이란 무언가를 보상받을 가능성이 굳이 없어도 일을 열심히 하는 마음이다. 외부적인 자극 때문에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사랑, 믿음 그리고 희망이라는 내부적인 힘으로 삶을 사는 것이다. 이 중요한 내부적인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잘 알아야 성실하게 살 수 있다.
어린아이들이 무언가를 잘했을 때, “아, 너 참 똑똑하다!”라고 칭찬하는데, 이런 말은 조심해야 한다고 학자 드웩은 주장한다. ‘나는 똑똑하니까 노력은 별로 안 해도 돼.’ 하며 잘못된 생각을 가지게 된다. 나 같은 경우도 어렸을 때 듣던 그 똑똑하다는 달콤한 말 때문에 인생을 끈기 있는 노력 없이 허무하게 보낼 뻔했다. 노력을 즐거워할 줄 아는 마음은 내부 동기를 자극해 주기 때문이다.
반면 아이들이 무엇을 잘할 때, “야, 잘한다, 진짜 열심히 하네!”라고 칭찬해 준다면 아이들의 생각이 달라진다고 한다. 이 두 종류 칭찬을 가지고 드웩 교수가 뉴욕 인근 열두개 학교 5학년 아이들을 실험한 결과 “열심히 하네.”라는 칭찬을 받는 아이들은 마음 구조가 다른 것을 알게 되었다(Mindset, Dweck 2006). ‘열심히 하는 것이 중요하구나.’라고 생각하게 된 아이들은 힘들어도 덜 포기했고, 실패해도 쉽게 회복했다. 결과와 상관없이 노력의 중요성을 칭찬받는 아이들은 배우는 과정 그리고 투쟁하는 자체를 즐기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내부적인 동기를 자극하는 것이다.
“너는 똑똑해.”라는 칭찬을 들은 아이들은 노력보다 눈에 보이는 결과를 중요시했다. 힘든 문제는 풀기 싫어했고 커닝까지 하며 어떻게 해서든지 좋은 점수만 따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이었다. 자신의 지능이나 재질을 믿게 되면서 마음 구조와 사고방식이 망가지는 것을 드웩 교수는 구체적으로 관찰한 것이다.
드웩 교수만이 이러한 관찰을 한 것이 아니다. 스탠퍼드와 리드 대학 교수들이 칭찬에 관한 150개나 되는 연구 내용을 추렸는데, 재능을 칭찬해 주면 인내심이 없어지고 닫힌 마음 구조(fixed mindset)를 가지게 되는 반면, 열심히 하는 마음을 격려해 주면 성장의 마음 구조(growth mindset)를 가지게 된다고 한다. 성장하는 마음 구조를 가진 사람들은‘실패를 성공으로 바꿀 수 있다.’라는 믿음과 힘을 지니게 된다.
내부 동기, 즉 안에서 나오는 힘은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선물이다. 배우고 싶은 마음, 탐구력, 관심, 열정과 같은 근본적인 인간의 추구 시스템을 하나님이 우리 두뇌안에 프로그램 해 두셨다.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잠재력이다. 그런데 이 귀중한 잠재력을 발전시키지 않고 땅에 묻어 둔다면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라고 심한 재판을 받게 될지도 모르겠다. 우러나오는 마음에서 생기는 성실성을 발달시키지 못한다면 머리가 아무리 좋아도 바보가 되고 아무리 좋은 환경과 조건을 가지고 태어난다 해도 불행해진다. 내부 동기를 조금씩 발휘하고 잘 발전시켜야 어마어마한 힘을 가지게 되고, 꾸준히 성장하며, 하늘의 축복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것이다.
똑똑하고 뛰어난 사람이 많지만 나는 그들의 타고난 재능보다는 열심히 노력하는 성실함을 칭찬해 주고 싶다. 성실함이야말로 하나의 달란트를 열 개, 백 개로 만드는 힘이 있고 그럼으로 우리를 창조하신 분 앞에서 떳떳이 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좋은글 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척 하며 사는 세상 (0) | 2024.05.13 |
---|---|
욕망이 꽉찬 세대, 감사를 잃은 세대 (0) | 2024.05.12 |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0) | 2024.05.10 |
당나귀 사위 (0) | 2024.05.09 |
가치를 세워야 나라가 산다 (1) | 2024.05.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