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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본질을 상실한 젊은 부자 관원

by 은빛지붕 2024. 5. 29.


성경에는 유명인이면서 그 실명(實名)을 밝히지 않은 경우가 있
는데 그 한 예가 젊은 부자 관원이다.

그는 일찍 청년 시절에 부와 권력을 쥐고 위풍당당하게 출세의 가도를 걷고 있는 성공 사례에 

사람이었다. 그러나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그 나이의 사람들이 흔히 가진 심리적·정신적 번민을

그도 고 있었다. 그것은 인생이란 무엇이며, 그 궁극 목적은 또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가치있는

삶을 살 것인가라는 인생론이었다. 그의 번민은 인생의 근본 문제, 나아가 영원한 생명이란 무엇이

어떻하면 그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까지 진전해 있었다.어느 날 그는 길에서 예수를 만나자

꿇어앉아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묻는다. 예수는 별반 성의

없이 “어찌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

하지 말라,도적질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신다.

그 청년은 “이 모든 것을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사오니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라고

되묻는다.그에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유대인에게 있어서 극히 평범한 상식적인 교훈들이었다.

그 청년의 말 그대로 그것들은 어려서부터 암기하고 지켜 온 너무도 낮은 차원의 상식들이었다.

자신의 진지한 질문에 대해서 이렇게 기초 상식 차원의 답이 주어진 것은 너무도 예상 밖이었다.

영생 문제가 유대인의 생활훈(生活訓)의 실천 정도로 해결된다는 안이한 마음을 갖게 된 그 청년

에게“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는 말씀이 다시 주어지자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는 서글픈 결론으로 그들의 만남은 끝난다.


그 청년은 믿음, 곧 종교의 본질을 상실한 ‘부족’을 드러냈고 예수님은 “온전”이라는 말로 그

본질을 찾아야 한다는 뜻을 그에게 전하셨다. 그 본질이란 참종교의 세 가지 요소를 말하는데,

첫째는 참종교의 기본 정신이다. 그것은 그 종교 신봉자들의 삶의 근저를 이루는 정신이다.

이 청년의 경우 기독교의 근본 정신은 사랑인데 예수님이 열거한 생활훈을 지켰다는 그의 공언은

외형적 준수였음이 드러났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는” 사랑의 실천이 현실 문제로 대두

되자 그는 그 벽을 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둘째는 참종교의 궁극 목표이다. 기독교의 경우는 영생

다.그것은 원시적(遠視的)인 눈으로만 볼 수 있는 현실 저편에 있는 피안(彼岸)의 세계로까지

연장되는 명이다. 현실에 대한 집착이 강하면 영생에 대한 소망은 결코 실현될 수 없다.

그 집착이 재물이든 명성이든 지위이든 간에…. 그리고 분명한 사실은 영생이란 반드시 내세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영원을 통하여 지속되는 삶은 현세에서도 여전히 가치 있는 삶이기

때문이다.영생을 소유한 자의 삶이 현실 세계에서도 타(他)와 구별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끝으로 참종교의 (主)가 가진 능력이다. 기독교의 주는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기독교는 창조의

종교이므로 그 경전(성경)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허두로 시작된다.
무(無)에서 유(有)를 존재케 한 창조주는 믿는 자에게 가능의 힘을 주신다. 젊은 부자 관원이 자신의

집착을 버리지 못해 예수님을 좇지 않고 떠나가자 제자들은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라고

스승에게 질문한다. 예수님은 즉시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할 수 있느니라”고

대답하신다. 참종교는 전능의 하나님을 믿는 종교라는 사실을 천명한 말씀이다.
젊은 부자 관원은 유대인의 삶의 본질인 세 요소를 하나도 갖추지 못했던 것이다. 결국 출세의

가도를 달린 그의 성공은 사람의 평생이라는 한순간에 불과한 것이기에 그가 진지하게 바라던 

영생과는 비교할 가치조차 없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