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황혼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것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희망이지만 막상 그렇게 하려면 그것을 위한 실제적인 계획과 노력이 필요하다. 이스라엘의 저 유명한 왕 다윗은 자신의 말년을 위해 “나를 늙은 때에 버리지 마시며 내 힘이 쇠약한 때에 떠나지 마소서”(시편 71편 9절)라고 기도하였다. 그는 그의 참모들이 늙어가면서 자제력을 잃고 점점 더 편협하고 탐욕스러워 가며 불행을 자초하는 것들을 보며 그렇게 기도했던 것이다.
나는 정년을 맞아 은퇴하면서 다음과 같이 결심했다.
1) 남에게 대접받기를 기대하지 말라. 나는 꽤 오랫동안 교회의 지도자로서 특별한 대접을 받았다. 이제 그런 대우를 받지 못한다고 해서 서운해하지 말아야 한다.
2) 후배들이 정식으로 초대하지 않는 곳에 가지 말라. 피차에 거북한 일이 생기기 쉽다.
3) 자문을 구하지 않는 일에 나서지 말라. 꼭 자문이 필요한 때도 없지 않으나 현직에서 일하고 있는 후배들이 요청하기 전에 먼저 나서면 자칫 지나친 참견으로 받아들여지고 피차에 기분 상할 일이 생기기 쉽다.
4) 경제적으로 너무 욕심을 내지 말라. 성경 말씀과 같이 너무 부유하고 풍족하면 교만하여져서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그분을 모른다고 부인할까 염려되며, 반대로 너무 가난하면 하나님을 욕되게 할까 걱정된다(잠언 30장 9절 참조).
5) 말년에 너무 오래 살아서 추하게 되거나 너무 아프거나 병상에서 오래 고생하지 않고 적당한 때에 잠들 듯 죽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아내가 나보다 오래 살았으면 좋겠다. 임종 시에 가장 필요한 동반자는 아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나는 이렇게 살고 있다.
1) 우리 집은 매일 조석으로 가정 예배를 드린다. 나는 지금 큰아들 가족과 함께 살고 있는데 아침에는 어른이 예배를 인도하고 저녁에는 손주들이 인도한다. 각자 바쁜 생활을 하고 있지만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할 때에 온 가족이 함께 찬미하고 기도하며 성경 말씀으로 매일의 양식을 삼는다.
2) 매일 성경을 통독하고, 종교 서적, 교양 서적, 신문, 잡지 등을 읽는다. 기타 오락 등으로 여가 시간을 보낸다.
3) 매일 1시간 반 정도 아내와 함께 집 근처를 산책하고 간단한 운동을 한다. 은퇴한 직후에는 가까이 있는 산을 오르다가 지금은 너무 무리한 운동은 피하라는 의사의 지시를 따라서 평지를 걷는 운동을 주로 하고 있다. 내가 사는 동네에는 넓은 대학교 교정이 있어서 산책하기에 아주 좋다. 저녁에는 실내에서 자전거 타기 운동을 1시간쯤 한다.
4) 아침 식사는 6시 반, 점심은 12시, 저녁식사는 6시에 한다. 아침과 저녁에는 현미와 잡곡밥을 채소, 과일, 견과와 함께 먹으며, 점심에는 현미 떡과 과일을 먹는다. 안식일인 토요일 아침 식사는 밥 대신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빵을 주식으로 하고 각종 풍성한 과일로 상을 차린다. 이러한 식사 습관은 은퇴 이후 거의 20년 동안 변함없이 지키고 있다.
5) 매달 병원에 가서 검진을 하고 약을 처방받아 온다. 그리고 의사의 지시대로 실행한다. 꽤 여러 가지 약을 시간과 용량을 정확하게 맞추어 복용하는 것이 번거롭고 어려운 일이지만 아내의 도움으로 잘하고 있다.
6) 한 달에 한 번 정도 평생 함께 일한 네 친구 부부가 모여서 회식을 하면서 우정을 나눈다. 우리 모임은 매달 소박하면서도 채식으로 요리를 맛있게 하는 음식점을 찾아서 식사를 하고 한 집씩 순서대로 비용을 부담한다. 은퇴를 하고 난 후에도 이렇게 좋은 친구들과 자주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고 과거를 회상하며 대화와 음식을 나눌 수 있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다.
7) 가족의 생일이나 기념일에는 온 가족이 외식을 하고 주말에는 자녀들과 함께 마음껏 웃고 대화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나는 반찬이 너무 여러 가지 나오는 한식보다는 단순한 메뉴를 더 좋아하기 때문에 우리 가족이 모일 때는 피자, 스파게티나 샐러드 같은 음식을 차리는 식당에 자주 가는 편이다. 그래서 우리 손주들이 친구들에게 할아버지 생신에 식구들이 피자집에 간다고 하면 다들 의아해하고 너희 할아버지는 신식이라고 말한다고 한다. 매주 금요일 저녁이면 딸과 둘째 아들까지 온 가족이 모인다. 금요일 저녁은 교회에 갔다 오면 다른 약속이 없기 때문에 긴 시간은 아니지만 오히려 토요일이나 일요일보다 온 가족이 모이기에 좋다.따로 사는 자녀들까지 일주일 만에 다 함께 모여서 즐거운 대화를 나누고, 특별히 말을 재미있게 하는 큰손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웃다 보면 어느새 밤이 깊어지고는 한다.
8) 매 안식일에는 교회에서 내가 맡은 반의 교인들에게 성경을 가르친다. 은퇴하기 전처럼 매주 설교를 하지는 못하지만 성경 교과를 잘 준비해 가서 성경에 대하여 토론하고 대화를 나누며 가르치는 것은 매우 보람 있고 즐거운 일이다.
9) 매일 시간을 내서 개인적으로 기도한다. 특히 영혼 구원에 대한 부담이 크다. 나는 평생 목회자로서 설교하고 전도회의 강사로 활동하고 많은 사람에게 침례를 주기도 하였지만 이제 은퇴 후에는 한 개인으로서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여 예수께로 인도해야겠다는 부담을 많이 느낀다. 그래서 내가 가진 여러 가지 기도의 주제 중에 특별히 하나님께서 나에게 개인적인 영혼 구원의 기회를 주시기를 기도한다. 그 밖에도 나의 생활에 대하여 언급하고 싶은 것들이 있으나 지면상 다 쓸 수가 없다.
죽음을 위한 준비
나는 65세가 넘어가면서부터 당뇨가 생기고 그 후 합병증으로 종합 병원과 같은 몸이 되었다. 그러나 건강의 법칙을 잘 지킨 탓인지 큰 고통이나 불편은 없다.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한 번은 심장에 크게 통증이 오고 의식까지 잃게 되어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갔다. 그리고 이제 죽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죽음에 대한 공포는 별로 없었다. 사람들은 흔히 죽으면 지옥에 가거나 저승사자에게 끌려간다는 염려를 하며 죽음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성경에는 죽음은 깊은 잠을 자는 것 같아서 아무것도 모르며, 하나님을 잘 믿은 사람은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부활해서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살고, 그 반대로 그분을 끝까지 거절한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지구를 불로 깨끗이 소멸하고 새롭게 준비하실 때 함께 소멸한다고 하였다(데살로니가전서 4장 13~18절; 전도서 9장 5절; 이사야 57장 1, 2절; 요한계시록 20장 4~8, 14절; 21장 1~4절 참조).이제 나의 마지막 소원은 사도 바울처럼 인생을 마무리 짓고 싶은 것이다.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디모데후서 4장 6~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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