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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 선택

by 은빛지붕 2024. 10. 22.

 

 

 

지난 세기 초 미국의 한 철도 노동자가 침목에 못을 박다가 못이 튕겨 이마를 관통하는 큰 사고를 당했다. 그러나 병원에서 못을 빼내자 기적같이 살아났는데 그 후에 그 사람은 마치 동물처럼 본능적으로 활동할 뿐 어떤 일을 미리 계획한다든가 선택하는 능력이 없어졌다고 한다. 즉 고민이라곤 전혀 모르는 ‘신간(身幹) 편한’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당시에 심한 우울증 환자는 전두엽을 빼내는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만물의 영장으로서 사람은 유난히 잘 발달된 전두엽을 갖고 있는데, 이 부분의 뇌가 정보를 처리 분석하고 계획하는 일을 맡고 있다 한다. 어떤 심리학자에 따르면 사람이 일상적으로 하는 오만가지 생각 중 약 12퍼센트가 앞으로 오지도 않은 미래에 대해서 걱정하고 계획하는 것이라고 한다.


경제학에서는 합리적인 사람들은 편익(금전적이건 질적 효용이건)은 되도록 늘리되 이를 위해 투입하는 제반 비용은 되도록 줄이려고 노력한다고 규정한다. 가령 어떤 사람이 좋다는 사업들을 골라 투자 결정을 하는 경우, 각 사업으로부터 나올 앞으로의 수입과 지금 투입하는 원금을 대비하고 그 차액, 즉 예상 이윤이 되도록 큰 쪽을 택하여 투자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실제 미래의 수입은 장기에 걸쳐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예측이 불확실하고 이것을 현재의 가치로 환산하는 일도 쉽지 않다. 이에 비해 현재 지급할 자원은 비교적 확실하고 계산이 용이하다. 이렇듯 합리적 선택의 과정에서 복잡한 고등 수학을 요하는 경우가 많지만, 일상생활에서 사람들은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여러 대안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기 위해 각각의 득과 실을 비교하는 작업을 거치고 있다고 하겠다.


여기서 사람들이 간과하기 쉬운 두 가지 비용에 관한 개념을 소개할까 한다. 첫째는 어떤 선택을 결정하게 되면 다른 기회를 잃어버리기 때문에 다른 기회로부터 얻을지 모르는 편익을 포기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이른바 기회비용(opportunity cost)의 개념이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연봉 6천만 원을 받고 있는 직장을 그만두고 작은 편의점을 개업할 계획이 있다고 하자. 그 나름대로 수입과 비용을 계산하는 과정을 거쳐서 매상 수입이 연 1억 원 그리고 비용은 가게세, 종업원 인건비 등 총 5천만 원 정도가 될 것으로 추정하였다. 그 결과 회계상으로 연 5천만 원 정도의 소득이 예상되었다고 하자. 독자들도 동의하겠지만 이 결정은 잘못된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새 사업을 위해 그만두게 될 현 직장에서 얻는 연봉이 소위 기회비용으로서 비용에 더해져야 옳은 판단을 하게 된다. 그렇게 하면 지금보다 연 1천만 원의 손실이 발생하니 새 사업 계획을 재고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대학 진학을 계획하는 한 청년의 예를 더 들어 보자. 단순하게 대학 졸업 후 예상되는 급여 소득과 비용으로서 등록금, 책값 기숙사비 정도만 계산할지 모르겠으나, 대학 진학으로 인해 상실할 기회, 즉 고졸자로 취업해서 4년간 얻을 수 있을 소득도 기회비용으로 합산해야 합리적인 결정을 할 수 있다. (이렇게 따지면 대학 진학이 꼭 모든 경우에 옳은 선택은 아닐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의 어떤 선택은 흔히 간과하기 쉽지만 암묵적인 비용을 동시에 발생시키고 있다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합리적 의사 결정을 위해서 주의해야 할 또 다른 개념은 매몰 비용이다. 매몰 비용(sunk cost)이라 함은 일단 지출하면 다시는 회수할 수 없는 성격의 비용으로서 의사 결정에 전혀 고려해서는 안 되는 부분이다. 쉬운 예를 들어 보자. 어떤 청년이 친구들의 모처럼의 모임을 뿌리치고 여자 친구와 영화를 보러 갔다고 하자. 그런데 영화가 점점 지루해서 차라리 지금이라도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 커플은 ‘본전 생각’이 들어서 참고 끝까지 보기로 하였다. 이런 경우 이들의 판단은 과연 합리적이었을까? 답은 비합리적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영화표 값은 아깝더라도 상영 중에 되돌려 받을 수 없는 매몰 비용이기 때문에 고려할 가치가 없었던 것이다.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재미없는 영화를 끝까지 참고 볼 것인가 아니면 지금이라도 더 의미있는 시간을 보낼 것인가의 사이에서 판단하는 것이다. 이처럼 본전 생각 때문에 의사 결정을 그르치는 예가 적지 않다.간혹 대형 국책 사업에 있어서도 이 점을 잊고 있는 듯하다. 처음에 예상 못했던 문제가 지금에야 불거졌지만 지금까지 투입한 비용 때문에 사업을 끝까지 밀고 나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경우이다. 우물을 파서 물이 나오지 않으면 지금까지 판 노력이 아까워서 지구 끝까지 뚫어야 할 것인가? 어느 정도 지나면 멈추고 다른 곳을 뚫어야 할 것이다. 선택은 본질적으로 오늘과 내일을 위한 문제이다. 우리는 종종 되돌릴 수 없는 지나간 일로 새로운 출발을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