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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의 법’이 작용하는 사회

by 은빛지붕 2024. 10. 23.

 

 


돌이켜 생각해 보니 우리는 타인에 대한 배려를 거의 할 줄 모르는 어른들 밑에서 자라났다. 신체적 약점이나 장애를 안고 있는 사람들을 천대하고, 아이들이 싫어하는 별명들을 굳이 만들어 부르면서 약을 올리는 고약한 폐습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커 왔다. 아이들의 신체적 특성이나 발육 상태에 따라 붙여지는 별호(別號)가 수도 없이 많았다.


예컨대 난쟁이, 키다리, 검둥이, 애꾸, 절름발이, 벌렁코, 말코, 곰보,곱사등이, 울보, 사팔뜨기, 꺼벙이, 대머리 등등. 이 밖에도 아이들의 품행이 조금 불량하다 싶으면 ‘아비없는 자식’, ‘호래자식’, ‘후레자식’, '바보 같은 녀석’, ‘멍청한 자식’과 같은 욕설까지 거리낌 없이 퍼부어지는 환경에서 우리는 그런 것이 야비한 욕설인 줄도 모르면서 성장기를 보냈다.

 

이 중에서 앞의 세 가지는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아이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것을 좋게 말하면 편모슬하(偏母膝下)에서 성장한 자녀이고, 요즘 말로 하면 ‘한 부모 자녀’이다.나와 나의 동생들은 6·25사변으로 아버지를 잃고,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나도 말하자면 ‘아비 없는 자식’이었고 일종의 ‘호래자식’이었다. 이제 생각하니 그것은 너무나 잔인한 욕설인데, 그때는 그것을 느끼지도 못하며 지내온 것이 다행으로 생각된다. 약자에 대한 배려가 없는 사회는 삭막하고 살벌한 겨울 황야와도 같다.


몇 해 전에 미국 테네시 주의 한 초등학교에서 일어난 일이다. 모스리라는 5학년 남학생이 암에 걸려 항암 치료를 받느라고 머리카락이 다 빠졌다. 그의 급우들이 모스리의 치료비를 마련해 주고자 모금 운동을 벌이니까 교장 선생님은 삭발을 하겠다고 나섰다.머리카락이 다 빠져 버린 모스리에게 용기를 주고 모금 운동을 북돋우기 위함이었다. 백발의 교장 선생님이 단상에 올라 머리를 밀기 시작하자 남선생님들은 물론이고 여선생님들까지 모두 머리를 깎기 위해 단상으로 올라갔다. 선생님들이 머리를 미는 광경을 지켜보던 학생들은 모두 눈물을 흘리면서 모스리가 암에서 회복되기를 기도했다. 그 학교 아이들이 모금함에 고깃고깃 갖다 넣은 돈은 모금 목표를 훌쩍 넘어 15,000달러에 달했다.


서울의 신설동에서 봉천동으로 이사를 가는 사람이 그가 살던 집의 복(福)이 자기를 따라오게 하려고 방마다 문의 창호지를 북북 찢었고 청소도 거의 하지 않았다. 그의 의도는 복이 그 지저분한 집에 머물기 싫어서 자기를 따라 봉천동으로 가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러고 나서 그가 이삿짐과 함께 봉천동 집에 도착해 빈집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 집은 깨끗이 청소되어 있었고 창호지도 모두 멀쩡했다. 그리고 그는 눈에 잘 띄는 곳에 종이 한 장이 붙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이사하시느라고 수고하셨습니다. 이 집에 오셔서 부디 행복하게 사세요. 방마다 연탄불을 피워 놓았습니다. 방 하나에 연탄 두 장씩이면 온종일 따뜻합니다. 저는 다음 주소로 이사를 갑니다. 혹시 필요한 것이 있으면 연락해 주십시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배려는 향기와도 같아서 그 향긋한 냄새를 맡는 사람들은 종일 또는 여러 날 행복하고 살맛이 난다. 신체적 또는 지적 장애를 가진 자들에 대한 너그러운 배려, 경쟁에서 패배한 약자들에 대한 따뜻한 배려, 덜 배우고 덜 가진 자들에 대한 섬세한 배려, 뜻밖의 사고를 당하여 당황해할 사람들을 예상한 계획적 배려, 생활 현장의 도처에 도사린 위험과 재난에 빠질 사람들을 위한 제도적 배려. 이러한 배려 속에서 살아가는 국민은 행복한 국민이다.배려가 일상화되고 제도화된 사회라야 사람들은 안전감을 느끼면서 살 수 있고, 가치와 품격이 있는 생활을 할 수가 있다. 이른바 양질(良質)의 삶과 행복한 세상은 인간의 생활 영역 전반에 다양하고 세부적인 ‘배려의 법’이 작용하는 사회에서만 온전히 이루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