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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 모음

​사랑하는 며느리

by 은빛지붕 2025. 2. 17.

 

 

요사이 젊은이들은 결혼을 해도 임신을 아예 포기하기도 하고 임신을 게획하여 신혼생활을 만끽한 다음에야 아이를 낳기도 한다. 그래도 결혼을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그것은 자연의 섭리이기 때문이다. 그런 반면에 이 집에 들어 온 며느리는 시집을 오자마자 남매를 턱 낳아 시애비의 입이 귀에 걸리게 하더니 아이가 초등을 다니는 현시점에 느닷없이 셋째를 갖겠다고 애비와 논쟁을 하고 있는 모양인데 시애비야 손이 귀한 집이니 입이 빙긋빙긋 하더라도 크게 기뻐하지는 못하였다. 맞벌이를 하는 절박한 세월을 뻔히 아는 지경이라 며늘애기가   아무리 아이를 좋아한다 해도 선뜻 나서지는 못하여서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저희들이 알아서 하여야할 일이니 언감생심 요즘시절이야 꿈도 못 꿀 일이 아니던가.

 

시집을 들어 오면서 시집을 어느 정도 파악을 하고 시집을 왔겠지마는 애기가 들어오면서 핏기 없던 집안이 피돌기가 돌듯이 좀 늦은 결혼으로 애비와 각을 세우던 아들의 얼굴에도 붉은 미소가 번졌으니 명랑한 며느리 하나로 집안이 삽시간에 꽃이 피기 시작했다. 더우기 시애비가 뒤안간에서 혼자 덩실덩실 춤을 추고 싶은 것은 요즘 시대에 들어와서 희미하게 사라져가는 기제사나 차례를 흥미롭게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시애미가 가르친대로 몇 년을 제수준비를 하더니 요즈음은 아예 어머니 제가 알아서 할 게요 하며 주장을 하고 나섰다. 이 번 설에도 제수 진설을 끝내고 제주가 검수를 하는데 아열대지방에서나 나올 법한 이름 모를 과일들이 즐비하고 조율이시는 율이시만 살아 남았고 홍동백서는 울긋불긋이고 맑은 술과 떡국만 살아 남았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결국 며느리가 아들과 함께 제사를 이어 받을텐데 술 한 잔이라도 얻어 먹을려면 그들의 의지에 맡길 수 밖에 없는 것이어서 조금은 황망하지만 시절정서가 변하긴 변하나보다 하고 자포자기의 심정이 되어 선조님에게 있는 몸을 다하여 땅바닥에 낮게낮게 구부렸다.

 

며느리는 이런 설날 행사를 가족이 모처럼 모여서 이벤트처럼 하는 재미로운 행사정도로 알고 있는 건 아닌지 싶어 한 편으로는 수긍이 가지만 한 편으로는 섭섭한 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최소한 내가 누구에게 술잔을 올리고 저 분이 나와 어떤 관계인 정도는 알고 절을 하는 것이 맞지 않나 싶다.그래서 나는 언제나 제가 끝나고 지방을 분축할 때 늘 지방에 쓰여있는 관칭과 휘자를 며눌에 설명을 하고 지방을 태운다. 그러면 한참을 듣다가 흥미로워 하는 며눌의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러워 꼭 안아 주고 싶은 마음이다. 시집온지 8년이 넘어가지만 별 말썽이 없다.

 

며느리에게서 구구절절 카톡이 왔다. 며느리는 늘 고맙고 감사하다는 말을 먼저해서 이쁘다. 이번 시가를 방문한 아빠엄마의 안부를 전하며 그동안 투병때문에 우울했던 가정의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고 아빠도 말씀이 많아졌다고 너무 고마워 하신다고 카톡에 또박또박 인사가 또렷하다. 아빠를 아주 오랜 후에 보내드리더라도 이번 시댁방문의 추억으로 자기는 외롭지 않게 잘 견뎌낼 수 있을 것 같다는 며눌의 말에 그만 늙은 눈에 눈물이 맺혔다. 저것이 벌써 애비를 떠나보낼 준비를 하는구나하고 생각하니 가슴이 무너져 한참을 울었다.

 

어차피 한 번은 떠나야 할 세상, 우리 모두 죽음의 난간에 서서 내일을 기다린다. 속 깊은 사랑하는 내 며눌아! 이 가문에 큰 대들보가 되어 오래오래 복을 누리며 살기를 기원하마. 열선조가 너를 위해 기도하리라! 사랑한다 며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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