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이 멀다하고 카톡에 노종친들의 부고가 뜬다. 요즈음은 죽음의 소식도 간단하여 폰에서 깨톡하면 하나씩 귀한 죽음이 떨어진다. 예전에는 사람이 죽으면 누런 한지에 붓글씨로 본향과 관칭을 쓴 부고문을 대문에 끼어 놓았다. 새벽잠이 없으시던 아버지가 그 것을 펼쳐 보시고 안방으로 가지고 들어오시지 않고 항상 처마 밑에 꽂아 두셨다. 죽음의 소식을 현세의 가족의 삶이 있는 방으로 가져오시지 않고 죽음은 항상 밖에서 두는 모습을 어릴 때 많이 보았던 기억이 있다. 미신 같은 것일 수도 있겠으나 산 사람과 이승을 떠난 사람들의 구분이 현격히 분리 되고 있는 것이었다.
청송어른은 참 무던한 노인이었다. 초등을 졸업하고 나서부터 남의 집 머슴생활로 세경을 받아가며 산 세월이 30 여년이 지난 후 즈음에 드디어 한 간짜리 다 무너져 가는 초가집 하나를 얻어 자리를 잡았다. 동네에 사는 순실이를 어떻게 채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듬해에 아이가 태어나고 가족이 불어나더니 소작하던 논밭 뙈기를 사들여 해가 바뀌어 갈 수록 늘어가기 시작했다. 부부가 저리도 순실한데다 하는 짓이 밉지 않아서 동네에서도 하나 같이 임의로와 이구동성으로 칭찬해 마지않는 그런 모범 가정을 이루며 살았었다.
허연 머리칼을 날리며 오늘도 일터인 경작지로 자가용인 경운기를 몰고 들판을 나섰다. 청송어른의 유일한 즐거움은 자기가 그 동안 피땀흘려 사들인 땅뙈기에 나가 하루종일 머물면서 토지와의 대화를 하는 것이었다. 햇살이 내리쬐는 한낮에도 그늘 하나 없는 논둑에 앉아 경운기에 출렁거리며 가져온 막걸리 주전자를 기울이며 논밭 뙈기를 바라보며 하루를 보내는 것이 지상최대의 낙이었던 것이었다. 얼큰한 하루가 기울어지고 해가 늬엿늬엿 느린 그림자를 드리울 때 청송어른의 얼큰해진 경운기도 덜덜거리며 집으로 향했다. 늘 다니던 논둑길이라도 술 한잔에 아른거리고 위태위태한 논둑길이 望九를 바라보는 노인에게는 저승길처럼 어른거렸다. 커브길이 나오자 예의 그 능숙한 운전대가 각을 잘 못 읽었는지 순간 뒤켠의 짐칸이 무게중심을 잃더니 운전대가 하늘로 치솟고 경운기는 허공을 빙글돌아 흐르는 도랑으로 굴러 떨어졌다. 찰라에 세상이 몇 바퀴를 돌아 버렸다. 행복했던 삶이 순간에서 영원으로 사라져 버린듯 차가운 도랑 바닥을 찾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후로도 병원을 들락거리며 휠체어를 타고 동네를 미친듯이 돌아다녔다. 아내의 잔소리에도 아랑곳 없이 동네를 돌아다니다 몇 번이나 언덕에 굴러 떨어지고 병원을 오 가고 하더니 아예 입원을 하고 말았다. 그 놈의 땅뙈기에 무슨 미련이 그리 많은지 병원에 누웠어도 땅뙈기 얘기만 하고 있다고 청송아지매의 전갈이 소문처럼 들렸다. 뙁뙈기는 청송어른의 인생이고 목숨이었다. 어떻게 이룬 땅뙈기인데 내 뼛골 같은 땅뙈기인데 누가 떼어갈 수도 없는 땅뙈기를 청송어른은 일생 가슴에 품고 살았다.
메마른 웃음을 안고 자신의 삶을 아는지 모르는지 영정사진 속에 청송어른은 허공을 웃고 있었다. 참 고생 많이 했심데이! 아이들이 울고 있었다. 까만 옷에 청송아지매는 하얀 웃음을 웃고 있었다. 평생을 고생만 했던 남편이 이제는 편히 쉴 수 있다고 안도하는 웃음이 내 뒤통수에 따라오고 있었다. 지금 만나는 모든이가 언젠가 헤어진다는 會者定離의 아침이 슬프다. 사람이 떠나는 계절은 언제나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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